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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기획자의 러너스하이

한 번은 턱에 찰 때까지. 그래야 더 나아갈 수 있다.

by Yoo

앞선 글에서 이야기했듯이 기획은 파도타기입니다. 생각할 거리가 많아지고 머리가 복잡해지는 발산과 결국 방법을 찾아 복잡함이 정리되는 수렴의 반복입니다. 발산과 수렴의 사이클은 자연스럽게 반복되지 않습니다. 복잡함이 간결함으로 가기 직전 깊은 골짜기 존재합니다. 골짜기를 힘겹게 올라와야 비로소 수렴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동이 트기 전 가장 어둡다는 말과 일맥상통 합니다. 특히 수렴과 발산을 반복하면서 우리가 만나는 골짜기는 더욱 깊어집니다.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아이러니하게도 고려해야 할 것은 더 많아지고 한걸음 내딛기가 어려워집니다. 골짜기에서 올라오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기획자가 깊은 골짜기에 빠지는 과정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봅시다. 기획자는 얕은 골짜기를 반복적으로 넘으며 경험과 지식이라는 양날의 검을 얻게 됩니다. 축적된 경험과 지식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는 힘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역량이라고 부릅니다. 한편 축적된 경험과 지식은 문제를 더욱 어렵게 하기도 합니다. 기존에는 몰라서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을 신경 쓰게 만듭니다. 우리는 이것을 이해관계자 또는 변수라고 부릅니다. 때로는 오지랖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까지 요청이 없더라도 고려를 하니까요. 때로는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도 걱정하고 준비하게 만드니까요.


골짜기의 가장 깊은 곳에 빠졌다가 힘겹게 탈출하기 직전은 가장 힘든 순간입니다. 머릿속에 100피스의 퍼즐이 있는데 그것을 한 번에 머리로 맞추는 것 같은 복잡성으로 머리가 아픕니다. 체력도 한계에 다다라 포기하고 싶은 생각 조금 쉬운 길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시에 몇 개 조각만 맞추면 될 것 같다는 거의 퍼즐을 다 맞춰낸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우리가 맞추는 퍼즐은 머릿속으로 맞추고 있기 때문에 저장을 해놨다가 다시 맞출 수 없고 그 기억을 힘겹게 부여잡고 있습니다. 될 것 같은 생각과 복잡성에 파묻혀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팽팽이 맞서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이 기획을 한 계단 올라가게 만드는 역치에 다다른 시점입니다.


턱끝까지 숨이 올라와 더는 달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한 발자국 더 나아가면 어느 순간 모든 퍼즐이 들어맞으며 그동안의 복잡했던 고민과 생각이 일순간에 선명하게 정리되는 감각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장시간 달리기를 할 때 극심한 피로와 고통을 지나면 갑자기 몸이 가벼워지고 기분이 좋아지는 상태인 러너스 하이(Runner’s High)의 느낌입니다. 플래너스 하이(Planner's High)라고 부를 수 있겠네요.


대나무는 성장할 때마다 마디를 만듭니다. 마디는 대나무 성장 과정에서 조직이 치밀하게 뭉쳐져 강도를 높이며, 내부의 수분과 영양분 흐름을 조절하는 역할을 합니다. 마디가 없으면 대나무는 길게 뻗지 못하고 쓰러집니다. 기획 과정에서 대나무 마디의 역할을 하는 것이 깊은 골짜기에 빠졌다가 탈출하며 느끼는 기획자의 러너스하이, 플래너스하이입니다. 머리가 한없이 복잡하고 될 듯 말듯한 발산과 수렴이 가장 팽팽한 줄다리기를 할 때, 밖에서 볼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스스로 볼 때로 아무런 진전이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러나 이 순간이 성장의 마디를 만들고 있는 가장 중요한 순간입니다. 멈춤이 아니라, 더 멀리 뻗기 위한 과정입니다.


머리가 너무 복잡해서 포기하고 싶으신가요? 성장의 마디를 만드는 과정이고 곧 플래너스하이가 찾아올 것을 믿고 한걸음만 더 함께 내디뎌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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