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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e Dec 05. 2019

유모차 끌어보니 보이는 것들

유모차를 끌고 다니니 이전에는 안보였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단적으로 "문턱"입니다. 상점의 문턱일 수도 있고, 보도블럭과 차도 사이에 있는 턱일 수도 있습니다.

출산 전 혼자 걸어다녔을 때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유모차를 끌고 나서야 낱낱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오늘은 그 경험을 소개할까 합니다.


#코앞에 코엑스를 놔두고...


출산 전에도 코엑스를 종종 갔었는데요. 지하철로 가기에 매우 편하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삼성역에서 지하통로로 바로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그런데 웬걸, 유모차를 끌고 평소대로 코엑스에 가려 했는데, 바로 당황했습니다. 코엑스 입구에 바로 계단!!! 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많이 코엑스에 갔었는데, 그 계단이 왜 안보였던 것이었을까요.

사람은 본인이 경험해보지 않으면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결국 다시 후퇴



일단 밖으로 나가는 엘리베이터 있는 곳으로 가서, 나와보니 코엑스 건너편이었습니다. 그리고 횡단보도 로 길을 건너서, 지상 코엑스(혹은 코엑스와 연결된 현대백화점)로 진입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내려가 코엑스몰에 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2호선 삼성역에서 코엑스는 분명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연결은 이동이 자유로운 사람들에 한해서였던 것이었습니다.


#누구나 환영하지 않았던 가로수길


가로수길에 갔을 때 유모차를 끌고 들어갈 수 있는 가게는 거의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가게들에 문턱이나 계단이 있었습니다. 출산 전엔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계단이 있더라도 무의식적으로 가게 문턱을 넘었을 테니까요.



유모차나 휠체어 경사로가 있던 곳은 애플스토어나 슈펜(이랜드)정도였을까요?


다른 곳은 유모차를 들어올려서 들어가지 않는 이상, 진입 자체를 할 수 없었습니다. Zara도, Mango도, H&M도, 마시모 두띠도...모두 진입불가했습니다. 아마도 이런 곳은 비단 가로수길만은 아닐 듯 합니다.  더 많겠죠.


#20년 오갔던 광화문에서 방황


저 역시도 20년 가까이 다닌 지역이지만, 유모차 끌고 왔을 때에는 엘리베이터가 어디 있는지 헤맸던 적도 있습니다. 바로 5호선 광화문역에서였습니다.


참고로 광화문역으로 진입하는 입구는 크게 두 곳입니다. 교보문고쪽, 그리고 세종문화회관쪽. 문제는 지하철타는 플랫폼까지는 엘리베이터가 그간 없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올초 광화문역에서 집으로 유모차 끌고 지하철 타려 했다가 초난감...


결국 제가 아이를 한 손에 안고 남편은 빈 유모차를 끌고 엘리베이터가 아닌 에스컬레이터를 타야 했습니다. 저는 한 손에 아이를 안고 한 손은 혹시 몰라서 에스컬레이터 벨트(손잡이)를 잡고 지하철 역사로 진입해야 했습니다. 불안불안.


다행히도 광화문역의 경우!


언론에 크게 보도되지 않았지만 올해 9월 역사로 진입하는 엘리베이터가 생겼습니다. 휠체어 끄는 장애인들이 20년 가까이 끈질기게 요구한 결과였죠.


서울 종로구 광화문역 세종문화회관쪽(1·8번 출구 쪽)에 엘리베이터가 생긴 것입니다. 그 전에도 엘리베이터는 있었지만 바깥에서 지하철 역사까지만 연결되고, 역사에서 지하철을 타는 플랫폼까지 가려면 일반 계단 위를 오가는 리프트역을 불안하게 타야 했었죠.


실제로 지하철역에서 휠체어리프트를 타다가 사망사고가 종종 발생했었습니다.


아주 오래전 일입니다. 2001년 경기도 시흥시 오이도역 2층에 설치된 휠체어리프트가 7m 아래 1층으로 떨어졌습니다. 이 사고로 3급 장애인인 70대 할머니가 숨지고…


하지만 제도적인 안전관리장치가 마련되지 않아 장애인들은 사고에 무방비인 상태에서 리프트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2002년에 장애인 이동권 운동이 일기 시작했었고, 그 결실이 이뤄진 것이었습니다.


::장애인 이동권 운동::

장애인이 일상에서 비장애인과 같은 수준의 이동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사회운동이다. 시내버스, 지하철, 고속버스 등 교통수단을 이용하여 이동할 권리를 말한다. 장애인이 사회적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인간적 권리를 보장하는 운동을 일컫는다.


장애인 이동권은 그간 "나와는 동떨어진 이야기"였지만, 실은 그게 제 이야기이기도 했던 것이었습니다. 넓은 의미에서 배리어-프리(barrier-free)가 필요한 건 휠체어나 유모차나 매한가지이니까요.


그래서인지 광화문역에 엘리베이터 설치하는 행사에는 엄마들도 함께 했습니다. 진유경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자녀를 유모차에 태우고 참석했다고 합니다. 그는 "이동권 보장은 특정 계층 배려가 아닌 모든 시민의 당연한 권리"라며 "장애인·노인·아동 등 교통약자를 위해 싸워 온 이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저는 오늘도 유모차를 끌고 동네를 어슬렁거립니다.


동네에서 횡단보도를 건널 때

다행히! 문턱은 없습니다.


지금은 당연해진, 이 모든 게 예전의 노력들이 이뤄진 결과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무명의 보행권 운동권자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어쩌면 그게 출산이 가져다 주는, 세상에 대한 넓은 시각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동권에 대해 처음 체감했으니까요.


장애인이 아니지만, 장애인과 같은 입장에 서보는 것.  더불어서 우리 사회의 약자들에게 더 신경써야겠구나란 생각도 하면서 이만 글을 마칩니다.



출근 30분 전 일기를 씁니다  
유별나지 않게, 유난하지 않게
아이를 기르고 싶습니다


일하는 엄마도 행복한 육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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