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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머리영 Jul 08. 2021

문어의 꿈

꿈이라도 마음대로

분명히 6월 마지막 주는 더울 것 같다고 말했다. 첫째가 태어난 13일 이후로 산후조리원은 제습과 냉방을 번갈아 틀어주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게다가 벌레도 많을 것이라고까지 덧붙였다. 차라리 벽을 보고 말하는 게 나았다.

날짜가 가까울수록 일기예보마저 불안했다. 금요일 저녁엔 어린이 독서단과 작가 강연회가 연달아 예정돼 있어서 일정을 당기는 것도 불가했다. 위약금을 내면서 취소할 수는 없는 노릇, 그러니까 6월 마지막 주말에는 캠핑을 예약하지 말았어야 했다. 내 말을 좀 들었어야 했다.

텐트를 비롯한 캠핑장비는 하나도 없다. 그래서 아이들이 어렸을 때 알아낸 곳이 모든 장비가 세팅되어있는 곳이었다. 우리가 가끔 찾아가는 곳은 충북 괴산 속리산에 있는 코오롱 캠핑파크다.

베이스캠프에서 체크인을 하고 장비를 받아 카트에 실었다. 미리 예약한 텐트는 209호. 지금까지는 세면장이 가깝거나, 반대로 조용한 외진 곳이었다. 이번에는 직원의 추천으로 이곳을 골랐다고 했다.

산 속이고 오르막이라 카트를 끌기는 쉽지 않았다. 미리 설치되어 있는 천막과 텐트라 천만다행이다. 짐만 옮겨 정리하는 것도 더워서 그런지 속도가 붙지 않았다. 그러니 짜증도 내 앞에서는 참지 않았다. 그 화를 한 귀로 흘려버리지 못했다. 얘기할 벽이 없어서 입 속으로 삼켰다. '다시는 캠핑 안 올 거야. 예약할 때부터 싫었어.'

아이들은 토끼장 앞에서 토끼들과 눈 맞춤을 하기 바빴다. 화장실을 다녀오면서도 곳곳에 설치된 그네와 줄타기를 보고만 지나칠 수는 없었다. 다녀와서는 꼭 사진으로 보여주면서 엄마도 가보라고 덧붙였다.

어두워지기 전에 주변 텐트들과 비슷하게 저녁을 준비해 먹었으니, 첫날 일정은 성공한 셈이다. 바비큐를 해 먹고 디저트로 감자와 고구마를 구웠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노래도 차례로 틀었다. 블랙핑크와 BTS에 이은 막내의 선곡은 <문어의 꿈>이었다.

점심시간에 교실에서 틀어주신다는데 처음 듣는 데다 독특한 음색이라 흉내내기도 힘들었다. 그 힘든 걸 하는 막내가 너무 귀여워서 웃었더니, 부끄럼 많은 아들은 그만 새침해지고 말았다.  

어두워진 하늘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리더니 결국 한바탕 쏟아진다. 비와 상관없이 화장실은 가고 싶고, 비에 젖었어도 물로 씻어내고 싶다. 아이들을 차례로 챙겨주고 밤새 내릴 비에 대비했다.

곳곳에 피워둔 모기향을 텐트로 들여놓았더니 연기로 자욱해서 목이 칼칼했다. 환기를 시키고 아이들 곁으로 가 누웠다. 고운 숨소리와 촘촘한 빗소리가 피곤을 녹여주었다.

비가 그친 아침은 다행히 몸이 개운했다. 4년 전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다리가 가끔 말썽을 부리는데, 어제는 비가 오려고 그랬는지, 아니면 산길을 오르내려서 그런지, 아니면 화와 짜증을 삼켜내서 그런지 다리에 통증이 심했다. 감사하게도 전날보다 확실히 낫다.

몸과 함께 마음도 상쾌했다. 걱정했던 것보다 비로 인한 어려움이 크지는 않았다. 비가 와서 그런지 산 속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덥지도 않았다.

불 피우고 먹고 치우고 다시 불을 피우는 두 번째 하루가 저물었다. 여덟 시가 되자 잔잔한 음악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온다. 한 시간 동안 캠퍼들의 사연을 카톡으로 받아서 신청곡을 들려주는 라이브 방송이 시작된 것이다.


떠올려보니 언젠가는 텐트 안에서 젖을 먹이면서 누군가의 사연이 담긴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기도 했었다. 그때도 비가 내렸다. 지금까지 우리의 캠핑에는 늘 비가 하루 일정으로 함께했다.

나오는 방송을 소극적으로 들으며, 적극적으로 먹고 있는데 막내가 나섰다. 감자를 먹고 있어서 <감자도리>를 듣고 싶다고 보냈다. 끝까지 소개되지 않아서 서운했지만, 방송이 끝나고는 여한 없이 핸드폰으로 들려주었다. 어쩌다 보니 <문어의 꿈>을 더 많이 들었다. 애니메이션 주인공 같은 목소리와 절절한 문어의 절규가 너무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핸드폰에 뜨는 가사를 보며 열창하는 아이의 모습을 자꾸 보고 싶었다.

"엄마는 내가 좋아, 문어의 꿈이 좋아?"

돌아오는 차에서 <문어의 꿈>을 좀 불러달라는 나에게 물었다. 그 노래를 엄마가 좋아하게 돼서 자꾸 불러달라는 말로 알아는 들었다. 그런데 그 노래를 좋아하게 된 나를 질투하는 듯한 질문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그 독특한 목소리를 흉내 내면서 부르는 게 귀여워서 그런 건데.

"그런 말도 안 되는 질문이 어딨어? 노래가 아무리 좋아도 정우만큼 좋을 수는 없지!"

부끄러움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열 번도 넘게 열창하다가 잠들었다.

집에 돌아와 짐을 정리하는데, 나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춥고 외롭고 차갑고 때로는 무섭기도 한 바닷속에 홀로 있는 문어. 바다를 벗어난 삶이 죽음뿐이라 할지라도 그 꿈을 응원하리라. 문어와 함께 나도 마음껏 꿈꾸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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