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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잎현수 Jan 17. 2021

14. 겨울 온실의 근황

북극 한파를 통과하며 알게 된 것들




영하 17도의 추위가 찾아온 새해 첫 2주. 옥상에 차린 온실 속에서 식물들이 안녕한지 살피느라 분주했습니다. 기존에는 겨울이면 모든 식물을 실내로 들여 관리해왔지만, 작년 한 해 옥상에서 생기 넘치는 일 년을 보내며 자연의 시계를 되찾은 친구들에게 겨울 역시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입춘(立春)을 약 2주 남긴 채 겨울의 끝을 향해 가는 온실의 근황과 지난 혹한기의 경험을 공유합니다.




온도


아마 미니 온실을 만들까 생각해본 분이라면 올해처럼 혹독한 추위 속에 온실이 말 그대로 '온실' 역할을 하는지 가장 궁금해하실 것 같습니다. 흙이 아닌 차가운 시멘트 바닥 위에 차려진 온실이 얼마큼 온실 효과를 낼지 저 역시 반신반의하며 시작한 야외 실험이었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일기예보를 볼 때마다 겁을 집어먹었던 것이 민망하게도 영하 17도를 기록한 최악의 날에도 영하 8도에 그치며 안전하게 혹한기를 통과했습니다. 


12월 5일 오전(최저 기온 0도) 촬영한 온습도계(8도, 습도 79%)



온실을 관리해본 분들의 후기를 찾아보니 공통적으로 “바람을  막아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구입한 그대로의 온실 상태로는 보온 효과가 거의 없고 그 위에 비닐을 덮어주는 등 조치가 필요하다는 말이었습니다. 후기를 따라 서늘한 공기를 막아주기 위해 하우스 위에 에어캡 처리된 비닐을 한번 더 덮어주었고, 영하 5도 이하로 내려가면서부터는 천과 농업용 부직포까지 둘러 최대한 바람의 영향을 막고 보온 효과를 내려했습니다. 덕분에 최근(영하 10-영하 5도 수준)에도 영하 4-0도 사이를 유지하는 수준으로 새벽을 잘 버텨내고 있습니다. 모든 조건이 같을 수 없기에 조심스럽지만, 이처럼 바람을 잘 막아준다면 바깥 온도보다 최소 5-최대 10도가량 높게 온실 내부를 관리할 수 있겠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한 가지 더 의미 있는 발견은 비교적 내한성이 약하다고 알려져 있는 식물들도 이런 조건 하에서는 밖에서 겨울을 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본 것입니다. 현재 온실 안에는 찔레꽃(Rosa multiflora Thunb.), 고광나무(Philadelphus schrenkii Rupr.)처럼 내한성이 강한 식물도 있지만 동백나무(Camellia japonica L.), 호랑가시나무(Ilex cornuta Lindl. & Paxton), 바위수국(Schizophragma hydrangeoides Siebold & Zucc.)과 같이 식물도감 상으로 내한성이 약한 식물들도 함께 있습니다. 최하 영하 8도까지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무탈한 것을 보면 바람을 차단한 효과가 단순히 온도계에 찍히는 온도를 올리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식물이 느낄 체감 온도까지 올려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환기(습도)


지난 11월 온실을 처음 설치하고 난 뒤, 한동안은 해가 내리쬐는 오후에 틈틈이 온실 문을 열어 환기를 시켜주었습니다. 밖은 5-10도 수준이어도 문을 열지 않은 온실 내부는 30도까지 온도가 치솟을 수 있기에 공기의 질뿐만 아니라 일교차 관리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조치였습니다. 낮 최고 기온도 영하인 날들이 이어지며 최근에는 환기를 시켜주기 어려웠는데, 문을 열지 않을 때 내부 습도는 90% 이상을 유지했고 건조주의보가 내렸을 때도 문을 열지 않으면 70% 이상을 기록했습니다. 환기를 위해 문을 열면 공기가 드나들며 서서히 계속 낮아졌습니다.


처음엔 화훼시장 하우스에 설치된 온습도계에서 봐왔던 70% 이상의 습도가 찍히는 게 새삼 신기하면서도 화기를 들어보면 묵직해 뿌리에 부담이 가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화기가 가진 수분량이 화기 색상으로 쉽게 파악되는 토분은 특히나 염려스러웠는데 밤낮으로 확인해보면 아침에는 화기 자체가 살짝 얼어 있는 듯하고 오후가 되면 얼었던 만큼 녹았는지 화기가 촉촉하게 젖어있었기 때문입니다. 물을 좋아하는 바위수국과 레우코토이 케이스케이(Leucothoe keiskei Miq.)는 아예 단수를 하자니 걱정스러워 따뜻한 날을 골라 1회 조심스레 물을 주었는데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혹한기가 시작돼 괜한 짓을 했나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감사하게도 레우코토이 케이스케이는 온실 안에 있는 동안 자그마한 가지를 새로 낼 정도로 건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역시 체감 온도를 잘 관리해준 것이 식물이 얼지 않게 해주는 데에 역할을 했으리라 추측합니다. 이제껏 잘 버텨준 것을 볼 때, 조금 춥더라도 공기의 질을 위해 최고 기온을 기록하는 오후에 한 번쯤은 환기를 시켜줘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위의 사진에서 볼 수 있듯 실내외 온도 차가 크게 벌어지면서 결로 현상이 자주 일어났습니다. 온실 관리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니 (비닐하우스) 시설 관리 시 결로 현상을 최대한 억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는데, 온실에 물이 맺혀 있으면 광선 투과를 방해해 광량이 감소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는 농업용 대규모 비닐하우스의 이야기이고, 재배용 식물이 없는 가로 세로 폭 2미터 수준의 작은 공간은 한파를 이겨내느라 광량에 신경 쓸 여유가 거의 없었습니다. 


사실 빛은 서향 '마에지마'(Daphne Odora 'Mae-Jima')가 없었다면 아주 무시할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겨울 이맘때가 개화기인 탓에 꽃눈을 주렁주렁 달고 온실에 들어갔고 지금도 부푼 자주색 꽃눈들이 제 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워낙 춥다 보니 자주 열어주진 못했지만, 해가 쨍한 날에 한하여 오후 1-3시 사이 불투명한 덮개들을 반만 걷어내고 일부라도 해가 들도록 했습니다. 


빛을 거의 받지 못한 상태에서도 새로운 가지나 잎을 낸 친구들이 있는 이유는 서쪽에서 오는 깊은 해가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온실은 보온을 위해 전체적으로 불투명한 천으로 덮여있는데, 길이가 짧은 세로 면은 투명한 소재로만 덮여있는 상태입니다. 마침 이 단면이 동서쪽을 향하고 있어 해질 무렵에 가보면 서쪽 방향에서 들어온 오렌지빛 석양이 온실 안에 제법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통풍도 포기할 만큼 추운 날에는 광합성마저 포기해야 하는 터라 사실상 옥상 온실에서 빛 관리는 매우 어렵다고 봐야 합니다. 하지만 위와 같은 경험으로 볼 때 실내 깊숙이 들어오는 석양이 투과될 수 있도록 서향으로 틈을 마련해준다면 빛 관리 역시도 최소한으로는 가능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 글을 쓰면서 자료*를 찾아보니 실제로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어 그대로 옮겨둡니다. (시설 = 온실)


시설재배 시 작물생육에 적합한 광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투과 광량을 증대시키고 투과 광선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시설의 설치방향에서부터 피복재, 구조 자재의 선택 및 피복재의 세척은 물론 인공광을 이용한 보광등의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우선 시설은 작물의 재배작형이나 설치장소의 바람의 방향에 따라 달라진다. 남북동보다는 동서동의 투과 광량이 훨씬 많으므로 저온, 약광기에 촉성재배를 목적으로 하는 시설은 동서동으로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연중 재배를 하는 유리온실의 경우에는 남북동으로 설치하여 고온기에 지나친 온도 상승을 억제하는 것이 좋다. 



다음 겨울, 그리고 봄 


겨울을 겨울답게 보낼 수 있게 해 주자는 생각만 갖고 추진한 일이지만, 이 글 속에서 걱정, 염려, 후회와 같은 단어들이 보여주듯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습니다. '물을 주지 않아서', '빛을 보여주지 않아서', '환기가 잘 안 돼서', 또는 '(겨울을 밖에서 나기엔) 내한성이 약해서'와 같은 수많은 죽음의 가능성들이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것만 같았습니다. 


반드시 겨울을 온전히 지내고 나서야 꽃을 피울 수 있어요. 겨울의 낮은 온도에 노출되어야 꽃의 분화가 일어나고, 그래야 봄에 꽃이 피는 거거든요. "추우면 힘들긴 하지만 춥지 않으면 만들 수 없는 것도 있어." 만화 [리틀 포레스트]에 나오는 대사예요. 이와 마찬가지로 식물도 겨울을 났기 때문에 비로소 봄에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이소영, 식물의 책) 


풍성한 봄은 추운 겨울을 통과한 뒤에야 온다는 이 말이 생각을 실행에 옮기는 데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죽음의 가능성들을 잘 잠재웠다고 생각하니 앞으로의 봄이 무척 기대되고, 다시 이런 겨울이 온다 해도 충분히 관리 가능할 거란 자신감도 조금씩 자라나는 것 같습니다. 





*출처: 스마트 온실환경관리 가이드라인(2018), 농촌진흥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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