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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잎현수 Jan 01. 2021

13. '잘 견디는' 식물

어떤 식물을 어떻게 소개해야 좋을까?




도시에서, 그것도 사람이 생활하는 공간에서 함께 살기 위한 목적으로서의 식물은 우선 그 환경에서 잘 견디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겁니다. 화훼시장에서 식물을 둘러보다 보면 꼭 한 번은 "이거 잘 안 죽나요?", "잘 안 죽어요, 강해요." 식의 대화를 엿듣게 됩니다. 저도 이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관리가 까다로운 식물은 곧 작업 난도가 높은 식물이라는 뜻이고, 작업 이후 판매를 하게 된다면 화훼시장에서처럼 저 역시 같은 질문을 마주해야 할 테니까요.



사실 이 ‘잘 견디는’ 식물이라는 개념이 저에게는 좀 어렵게 다가옵니다. 예를 들어, 해가 잘 들지 않는 북서향 집과 낮에도 커튼으로 그늘을 만들어야 할 정도로 빛이 잘 드는 남향집에서 똑같이 '잘 견디는' 식물을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아침 일찍 나갔다가 저녁 늦게 들어와 식물의 동태를 살피기 어려운 관리자와 오후에서 저녁에 이르는 시간만 집을 비워 해가 드는 낮 동안 환기도 시키고 식물 상태를 점검해줄 수 있는 관리자가 같은 식물을 키운다면 둘 다 '그 아이 잘 견디더라'라고 말해줄까요? 환경과 관리자의 라이프스타일은 배제한 채 잘 견디냐 그렇지 않냐를 이야기해야 할 때는 식물에게 좀 가혹한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복잡한 생각을 뒤로하고라도, 생명력이 강해 많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 실내 식물은 분명히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금전수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돈나무'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한 이 식물은 생장 속도도 느리고 환경을 견디는 강인함을 갖고 있어 초보자도 쉽게 기를 수 있는 식물입니다. 돈을 불러오는 나무라고 하여 신장개업 선물로도 자주 소환되는데, 아마도 생명력이 강하기 때문에 환경이 다소 어수선하고 관리에 신경 쓸 여유가 적은 새로 문을 연 가게에 선물해도 괜찮다 여겨진 것이 아닌가 추측합니다. 이밖에도 열대, 아열대 출신의 관엽식물들이 이국적인 이미지와 관리가 쉬운 장점으로 많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습니다.



시장이 성숙해질수록 관리가 까다롭더라도 취향에 맞는 식물을 선택하겠다는 소비자가 늘 것입니다. 제가 처음 가드닝을 공부하기 시작한 2016년과 비교하면 관엽식물뿐만 아니라 야생 초목, 다육식물, 외국 희귀종을 선택해 기꺼이 까다로운 생육 조건을 맞춰주려는 분들이 늘었음을 실감합니다. 식물의 전체적인 생김새에서 나아가 꽃이나 잎의 무늬와 색, 출신 지역을 꼼꼼히 살피는 분들이 많아졌고 이는 곧 다양한 품종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아는 고관여 소비자층이 두텁게 형성되는 과정으로 보여 기쁘기도 합니다.  



저 역시 사계절 다른 색과 선을 보여주는 나무에 더 눈길이 가는 편이라 제가 선택한 작업 대상들도 대부분 야생 초목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관리가 어렵기는 해도 실내에서 잘 적응할 수 있는 방법을 간구해오면서 나름의 관리 숙련도도 높아지고 있다고 자부해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제 공간을 본 어머니께서 " 식물들은 아무나 들일 수는 없겠구나." 하고 가시는데 머리가 복잡해졌습니다. 습도와 통풍, 빛에 두루 신경 쓰는 저를 보고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무어라 변명을 하고 싶었지만 이런 노력들을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이날 이후 '작업 이후의 식물'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실내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는 화기나 흙을 쓰고 크는 동안 좋은 환경을 제공해 작업을 성공적으로 하면, 다른 데 가서도 잘 적응하리라고 쉽게 믿어왔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비교적 능숙한 관리자인 저에게도 이렇게 큰 노력이 들어가는 나무를 일반 소비자에게 소개하는 것이 맞는지, 그렇다면 어떤 식물을 어떻게 소개해야 좋을지 조금 다른 시각에서 고민하게 됐습니다. 더 희귀하거나 야생의 모습에 가까운 나무들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기쁘면서도 그들이 얼마나 관리하기 어려운지 알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는 작업할 소재를 다변화해봐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지금까지는 난이도와 상관없이 제 눈에 들어온 식물을 걸러 작업해보는 방식이었다면, 시중에서 많은 소비자가 찾는 '잘 견디는' 식물을 데려와 제 식대로 해석해 소개해보는 것입니다. 강인함이 최대의 무기이자 선택을 받는 이유여서 그들 고유의 아름다움이 가려졌다면 그것을 발굴하기도 하고 지금 소비되는 이미지를 벗어나는 새로운 선과 형태를 찾아보는 것도 좋은 시도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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