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잎현수 Sep 09. 2020

1. 자기 소개(의 어려움)

‘식물 디자이너’ 또는 ‘그 일’




스스로를 몇 마디 짧은 말로 표현하는 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같습니다. 회사명이나 직급을 빼고 오로지 수행하는 일이나 지향점만으로 스스로를 소개해야 한다면 당장 어떤 말이 떠오르시나요? 이 일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이 난감함을 해소하는 것이 저의 큰 숙제입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들은 가볍게 '그 일'은 잘 되어 가냐고 묻고 저는 '그 일'에 관한 안부를 전합니다. 그렇게 한참을 잘 살다가도 예기치 못한 순간 치고 나오는 팝업창처럼 '그 일'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고민됩니다.



여기서 '그 일'이란 식물을 주제로 한 어떤 일입니다. 저는 식물을 제 나름의 방식으로 다듬고 길들여 저의 시선이 담긴 결과물로 만듭니다. 그 과정에서 배우는 바를 이렇게 글로 남기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직접 알려주기도 합니다.



식물을 다듬고 길들이려면 우선 주어진 환경에서  식물이  살아야 합니다. 비실대는 아이를 아름답게 디자인할 수는 없으니까요. 때문에 식물이 실내에서도 건강하게 사는 방법을 고민합니다. 식물이 인테리어 요소로 여겨지며 식물을 들이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정확한 이름이 무엇이고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환경을 선호하는지 몰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식물이 필요로 하는 애정을 주기 위해서는 정확한 이름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식물을 가까이하려는 노력 안에 식물의 정확한 이름을 알아내려는 노력은 너무 적습니다. 조금 웃긴 비유지만 꼬마들이 길고 어려운 공룡 이름을 줄줄 꿰는 것처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나무 이름을 아는 이가 늘었으면 합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과 저의 지향점을 아우를 수 있는 말이 무엇일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하고 싶은 일의 모양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계속 변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식물 작업에 대한 용어들의 뜻은 이와 같습니다.



조경: 경치를 아름답게 꾸밈

원예: 과일, 채소, 화초 등을 재배하거나 정원을 가꾸는 일

가드닝: 정원을 가꾸고 돌봄. 또는 그런 일. ⇒ 규범 표기는 미확정이다.

분재: 화초나 나무 따위를 화분에 심어서 줄기나 가지를 보기 좋게 가꿈

gardening: 1. 원예 2. 발 디딜 곳을 확보하기 위해 식물 집단을 없애기 3. 조원술

plant: 1.(동물에 대하여) 식물, 초목; 농작물(crop); (농작물 등의) 생장 2. 모종, 묘목; 꺾꽂이 가지

planting: 1. 심기 2. 식재 3. 식수 조림



사전적 의미에 이 일을 가둘 필요는 없지만 그렇지 않아도 낯선 이 일을 새로운 말로 더 낯설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직까지는 '식물 디자이너'라는 이름에 기대고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0. 프롤로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