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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샬장 May 29. 2023

늦봄의 양철 스쿠터


근래 내 주된 이동수단은 회색의 양철 스쿠터다. '양철 스쿠터'란 단어가 주는 어감은 어쩐지 낡고 고물의 귀여운 탈 것일 것만 같지만 사실은 아스팔트 위에서 제법 날렵한 데다가 어디선가 본 듯한 호감 가는 외관을 가지고 있어 꽤 애착을 가지고 있다.


그런 양철 스쿠터 앞에 아이를 앉혀 품 안에 꼭 넣고는 엉덩이를 흔들며 나들이를 다녀오는 것이 근래 가장 즐거운 휴일의 일상 가운데 하나이다. 나들이라고 해봐야 근처 아이스크림 가게나 마트쯤을 다녀오는 것이 전부이지만, 이번엔 둘이 함께 노래를 부르는 물고기들이 잔뜩 나오는 영화를 보고는 길을 둘러둘러 숲에서 신기하게 생긴 나뭇잎과 곤충(사실은 긴 다리를 펄럭거리며 수풀 속을 기어다니는 거미따위)들을 살펴보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바람소리에 묻혀 내용이 들리진 않지만, 끊임없이 재잘거리는 소리와 어쩐지 아직 우유 냄새가 가시지 않은 아이의 머리칼이 얼굴을 때리는 느낌이 나쁘지 않다.  


아이와 둘이 시간을 보낼테니 쉬라며 선심쓰듯이 이야기해 못내 허락한 아내의 걱정과 달리 나는 이렇게 아이를 품 속에 넣고 양철 스쿠터를 함께 타며 보낼 수 있는 시간이 결국에는 한정적이며, 그리 길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 걱정이다.


아이의 머리칼에서 풍겨오는 냄새가 우유가 아닌 샴푸로 바뀌고 나면 더 이상 내 품 속에서 양철 스쿠터를 타려고 하지 않을테고, 나도 아이를 안고 운전을 하는 것이 힘들어지겠지. 그날이 되면 아이에겐 이 날들의 기억이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긴 팔과 반 팔 티셔츠의 선택을 고민하게 만드는 늦봄의 햇살과 조금은 습한 바람을 가르며 꺄르르거리던 아이의 모습이 나에겐 평생의 기억이 될 것이란 것은 어쩐지 뻔하고,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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