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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샬장 May 30. 2023

아름다운 벚나무의 곁은 떠나지만,


지금 사는 동네 어귀에는 꽤 커다란 벚나무 몇 그루들이 줄지어 서있다. 다만 이름난 장소들처럼 그 모습이 길게 이어지는 것은 아니어서 길가에 차를 세워두곤 가련한 미어캣마냥 두리번거리며 서둘러 사진을 찍고 가는 몇 명을 제외하면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


집을 나서고, 들어올 때마다 그 벚나무길을 지나다닐 수 있다는 것은 꽤 행운인데, 여러 벚나무들 가운데서도 우리 가족이 유독 좋아하는 벚나무가 한 그루 있다. 높이 솟은 덩치에도 땅에 맞닿을 듯 흐드러진 가지가 멋져 봄이면 그 아래서 사진을 한 장씩 남겨두는데, 그럼 그 해의 벚꽃 구경에 미련은 없다.


다만 이런 아름다운 곳이 주위에 있는 것과 달리 지금 지내고 있는 집은 다소 문제들이 있어 골치를 썪는 중이다. 특히 지층에 위치한 내 작업실 공간은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을 양동이에 받아 비우는 것을 게을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침수에 가까운 누수에 시달리며 피해와 함께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했다.


아내와 아이의 불가침 영역인 맨 케이브(man cave)가 생겼다며 좋아하며, 크게 음악을 틀어놓고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던 즐거움은 아쉽게도 짧은 찰나였다. 다행히 작업실이 위치한 지층에 문제가 몰렸던지라 가족이 생활하는 공간에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한동안은 진짜 동굴에서나 들릴 법한 청명하게 찰랑하고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구석기 시대인이 된 듯한 느낌을 받으며 꾸역꾸역 작업을 해야만 했다.


우리의 시골, 그리고 섬생활은 처음부터 장기적인 계획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언젠가부터 평생을 지내온 도시가 지겹게 느껴졌고, 술에 취해 밤거리를 거니는 일상보다는 가족과 조잘거리는 일상을 소중하게 느껴보겠다며 택한 선택이었다. 다만 여전히 내게 주어지는 일의 거점지는 떠나온 도시인지라 동굴처럼 되어버린 집을 떠나 이사를 결정하는 시점에서 도시로 돌아갈 것인지와 시골 생활을 이어나갈 것인가를 고민해야만 했다.


고민을 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이 시골 생활을 그만두고 떠나 생활한다는 것을 도저히 머릿속에 그려낼 수가 없어서 발을 걸친 이방인이 아닌 최소 아이의 유년기는 모두 이곳에서 보낼 제대로 된 이주를 해보기로 했다. 일을 좀 더 캐주얼한 부분까지로 영역을 넓히고 어쩌구 저쩌구 블라블라블라. (제대로 해낼 수 있겠지?)


그렇게 아름다운 벚나무가 있는 동네는 떠나지만, 우리는 시골 섬살이의 새로운 시즌을 시작해보려고 한다. 벚나무야, 다음 봄에도 만나러 올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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