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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샬장 Feb 12. 2024

엘리엇 스미스를 들으며 나는 기타를 친다.


마주칠 때마다 한참을 붙들고는 이런저런 것을 물어보는 학생이 한 명이 있다. 혼자서 작곡을 해보며 음악인으로서 데뷔하는 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 아이인지라 조금이라도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입에서 나오는 한 마디가 아이에게는 소중하다.


개인적으로 대성하지 '못'하기에 충분할 만큼 어설픈 음악과 철학을 내세우며 음악인으로 지내던 시절이 있다. 그 시절의 이야기들은 술자리 안주거리로 전락되어 버린지 옛날이지만, 대신 그만큼 기억 속에서 미화되어 으스대며 목소리 높여 떠들면서 주인공 행세를 하기에 아주 좋다.


그런지라 학생이 음악에 관해 물어올 때면 그 음악은 어떻느니, 어떤 배경이 있었느니, 그걸 연주한 경험이 있다느니 신나게 떠들면 학생의 눈에 존경심이 맺히는 것을 보는 것이 썩 기분이 나쁘지 않다. 그러다 하루는 학생이 질문을 했다.


"그렇다면 선생님은 현재의 저에게 어떤 누구의 음악을 들어보라고 하실 건가요?" 하고 물어왔다. 잠시 고민을 하다가 "넌 비슷한 장르의 음악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엘리엇 스미스를 듣지 않고 청춘을 노래하는 것은 어쩐지 아이러니인 것 같아."라고 대답하곤, 속으로 '그 상황에서 엘리엇 스미스를 떠올리다니, 그리고 청춘을 노래하기 위해서 들어보라는 멋진 말을 하다니.' 라며 나 자신을 칭찬하며 만세를 불렀다.


그리고 집에 들어와 오랜만에 엘리엇 스미스의 음악을 듣다 보니 문득 묘한 기분에 빠지고 말았다. 위태롭고, 쓸쓸한 청춘의 감정을 이야기하는 그의 노래를 그 감성을 지닌 채로 그 시간을 지나갈 학생은 이제 느껴볼테고, 노래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뿌듯했던 기분은 문득 이젠 내가 느껴보지 못할 시간에 가까울 것이란 생각과 함께 과거의 모습을 술자리에서 포장된 예쁜 포장지를 파헤쳐 적나라하게 눈앞에 마주시킨다.


어설픈 음악은 대중의 무지함이라 탓하고, 부족한 실력은 알아보지 못할 뿐이라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소심하게 중얼거렸을 뿐이다. 대중음악을 하며 대중을 무시했고, 자신을 솔직히 나타내기보단 허세로 어떻게든 단단히 무장을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청춘을 노래하려면, 청춘을 노래한 사람의 음악을 들어보지 않고는 이야기할 수 없지.'라고 충고하듯 이야기하는 아저씨가 되어 마주하니 서글픔이 문득 밀려온다.


문득 얼마 전에 술에 취해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래를 들으며 친구에게 "난 얘네 싫어. 이제 청춘을 이야기하기엔 너무 나이가 들지 않았어? 감정 이입이 당최 되질 않아. 아니 언제까지 자기들이 청춘의 대변자인 양 굴건대?"라고 궁시렁거렸던 일이 떠올라 얼굴이 살짝 달아오른다. 구리 코일에 감긴 자석 저너머에서 들려오는 그 시절에 박제된 엘리엇 스미스도, 커트 코베인도, 제니스 조플린도 아니지만, 문득 그즈음의 내가 '넌 여전히 바보 같구나?'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위태롭고도 아름답던 청춘은 지난 것 같지만, 지금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다시 나타나 잔소리를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부끄러워지는 것은 싫어 문득 기타를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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