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깡의 힘

by 캐나다홍작가


깡이 세다. 깡 고수, 똥배짱 고인물...

20년간 일하며 소박하게나마 이룬 '경제적 자유'와 비혼 1인 가구로 오래 단련해 온 '심리적 자유'가 내 깡의 거름이다. 먹고 살 길이 막막했다면 은퇴 후 맘 편히 쉬지 못했을 거고, 나를 믿는 마음이 부족했다면 지구 반대편으로 덜컥 날아갈 용기를 못 냈을 것이다.


경제적 자유와 심리적 자유, 이 두 조건을 비빌 언덕 삼아 마흔 은퇴와 캐나다 이민이라는 인생 다 뒤집는 길로 굳세게 나아갈 수 있었다. 뚜벅-뚜벅-

대단히 풍족한 럭셔리 경제적 자유를 이룬 건 아니었다. 대한민국 평균 자산 5억 정도로는 꿈에 그리던 몰디브 한달살이 휴가는 물 건너갈 게 뻔했다. 하지만 건강을 위해 내 마흔 은퇴는 생존 필수였다. 고로 나는 맞춰 살아야 한다. ‘소비 다이어트’를 결심했다.

“더 쓰기 위해 십 년 이십 년 더 일할 것이냐, 덜 쓰면서 빨리 은퇴할 것이냐”

이 고민에서 후자를 택한 것이다.


사 먹는 돈, 사 입는 돈, 필요 없는 물건 사들이는 돈, 이 셋만 줄여도 생활비가 꽤 줄어들 거란 계산이 섰다. 실행해 보니 실제로 월 200만 원 가까이 줄일 수 있었다. 호와!

은퇴 후 그 좋아하던 배달음식은 완전히 끊고 외식도 거의 안 하는데 만족감은 크다. 캐나다의 싼 식재료, 은퇴자의 시간 여유 덕이다. 건강한 식단을 직접 요리해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은퇴 전 100만 원 이상 들던 식비 외식비가 월 25~30만 원 선으로 크게 줄었다.

마음과 성격이 비슷한 사람들과만 만나니 모임이나 데이트도 팟럭 파티(각자 음식을 가져와 뷔페식으로 먹는 모임)나 음식 싸서 가는 소풍, 캠핑 위주가 된다. 레스토랑에서 인당 몇만 원씩 쓸 일 없이도 즐겁게 만나 놀고 먹고 즐길 줄 알게 됐다.

비싼 옷엔 관심이 없었어도 싼 옷을 자주 샀었는데 은퇴 후엔 그 버릇도 버렸다. 이젠 필요 없는 물건 사들이는 일도 거의 없다. 전엔 제주도 여행만 가도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대여섯 개씩 사들고 왔다. 자주 쓰지도 않는 작은 주방가전도 여럿 사서 씽크대 아래에 처박아뒀다. 하지만 이젠 ‘응, 이건 사는 순간 이쁜 쓰레기가 될 거야’, 이 생각으로 집었다가도 내려 놓는다.

이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미니멀리스트로 산다. 전엔 크게 신경 쓰지 않던 환경도 더 챙기게 됐다. 덜 사고 덜 쓰고 덜 버리는 삶에서 보람을 느낀다. 이젠 내 통장 잔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건강을 위해서, 소비에 대한 내 자유의지를 위해서, 환경을 위해서 절약을 즐길 줄 안다.

이런 내 변화가, 나 자신이 꽤 자랑스럽다. 이 변화는 ‘지금 잘살고 있구나’란 자부심에 그치지 않고 ‘뭐든 잘 해내겠구나’라는 자신감마저 높여준다.

다만 경치 좋은 집, 안전한 집 월세에 쓰는 돈은 덜 아끼고 있다. 풍경 좋은 집에 사는 즐거움과 효용이 그 이상으로 크기 때문이다.

심한 흙수저로 태어나 십대 때까지도 단칸방에서 살았다. 풍경을 고사하고 창문도 없는 곳에서 고생하던 기억 때문인지, 서른 넘어서부터는 경치 좋은 집만 고집하고 있다. 돈은 들어도 이로 인해 일상 행복도가 크게 올라가니 만족한다.


캐나다 아파트의 발코니, 여기서 밥도 먹고 요가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매일 노을도 실컷 보고 지낸다

월세 외의 생활비를 크게 줄인 소비 다이어트 덕에 5억, 소박한 액수로도 나름 경제적 자유가 가능해졌다.


이 5억은 상가 투자 등으로 연 3,000만 원 정도 순익이 나오게 파이프라인을 만들었다. 원금을 까먹는 은퇴가 아니라 물가 이상으로 불리는 투자 은퇴, 요즘 파이어족(FIRE,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 : 경제적 자유를 이루고 조기 퇴직함)이 추구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저 수익은 은퇴 직전 급등한 연봉의 1/10밖엔 안 되고, 그 절반은 비싼 캐나다 거주지 월세로 들어간다. 그래도 다른 생활비를 크게 줄인 덕에 불편함 없이 지내고 있다.

캐나다에 살면 노년에 연금을 포함한 복지가 한국보다 훨씬 안정적인 것도 안심이 된다. 한국에서 냈던 국민연금을 이민올 때 해지하지 않았기에 두 나라에서 연금을 받을 수 있다. 노년에 월세 수입 외에도 이걸로 월 100만 원 정도는 더 보장된다. 만일 서민 노인이 되면 캐나다에서 받는 혜택은 더 커지지만, 이걸 바라고 싶진 않다. 캐나다는 미국과 반대로 무상의료 복지국가라서 노년 의료비 부담도 덜 된다.

이 정도 믿는 구석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경제적 자유만 믿고 일을 벌인 건 아니다.(그것도 소박한 액수-) 맘도 세야 한다. 바로 '심리적 자유'다. 결심을 굳혔으면 누가 뭐라든 밀고 나가는 똥배짱도 필요하다.

나는 똥배짱 고수, 똥배짱 내공자다. 십대 때는 누가 옆에서 웃으며 지나가도 ‘나를 비웃는 건가’라며 주눅들 만큼 소심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 풍진 세상에서 먹고 사느라 고군분투하다 보니 맷집 강한 똥배짱 고수가 되어버렸다. 타인에게 의지하고 도움받는 건 체질에 안 맞는 사람, 뭐든 강단있게 혼자 잘 해내는 사람으로 변신한 것이다. 독립적인 비혼 1인 가구 혼자 결정하고 책임지며 오래 살아온 덕도 크다.

사실 은퇴 전 다수가 내 선택을 말렸다. 그 높아진 수입을 어떻게 포기하냐며 직장 동료가 말리고, 영어도 못 하는데 이민은 너무 급작스럽지 않나며 친구가 걱정하고, 먼 타국생활을 어찌 감당하겠냐며 부모가 울었다.


그래도 심사숙고 끝 내 결심은 은퇴고 이민이었다. ‘용기내서 내가 원하는 이 길로 한번 가 보자, GO!’ 주변 걱정엔 고맙다는 말을 남긴 채 나는 원하는 길로 나아갔다. 힘차고 강단있게, 뚜벅-뚜벅-



캐나다홍작가 인스타그램 링크 https://www.instagram.com/hongwriter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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