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장에서는 잠시 내 얘기는 접고 파이어족, 파이어 라이프가 도대체 어떤 것인지 정리를 좀 해보련다.
그전에 일단,
수십억 자산가로 은퇴해서 떵떵거리고 사는 것만 파이어가 아니고, 5~10억 정도 자산으로도 잘사는 파이어족들이 더 많다는 점,
늘어난 여가시간에 뭘 할지 몰라 무기력한 채로 버티는 게 아니라 새로 배우고 즐기고 사색하고 성장하는 은퇴 인생이 가능하다는 점,
이 두 가지를 먼저 언급하고 싶다.
파이어에 대한 제일 큰 오해가 '부자만 가능할 것 같다', '은퇴 뒤 무료할 것이다'이라서 그렇지 않다는 말부터 하고 싶었다. 내가 딱 그 ‘그렇지 않은’ 케이스기도 하고.
파이어(FIRE)란?
파이어(FIRE)는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경제적 자유를 이루고 조기 퇴직함)를 줄여 부르는 말이다. 검소하게 생활하며 최대한 많은 돈을 모아 마흔 전후에 은퇴해서 자유롭고 여유로운 삶을 살겠다는 운동이다. 이런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한국에서는 파이어족이라 부른다.
파이어의 삶을 추구하는 흐름은(FIRE movement) 미국에서 1990년대부터 생겨났고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를 겪으며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때 사람들은 다수가 일자리를 잃고 집도 뺏긴 채 대책없이 내몰리는 냉혹한 현실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다. 그러면서 이런 불안한 환경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경제적 안정을 빨리 이뤄서 언제든 은퇴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이런 파이어가 최근 들어서는 한국에서도 부각되는 중이다. 각종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젊은 직장인 절반 이상이 파이어족을 꿈꾼다고 답할 정도다. 한국의 일 하고 돈 벌고 살아가는 현실이 그만큼 무섭고 불안정해졌다는 뜻이겠다.
이스라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 교수는 책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세계 인구 중 다수가 쓸모를 잃은 ‘무용계급’이 될 수도 있다는 무서운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 2023년 초부터 분 AI 붐은 혁신적이지만 동시에 이런 불안한 미래를 앞당길지도 모른다.
이런 불안정한 시대에 파이어족은 내가 직접 일을 해야 얻을 수 있는 소득(적극적 소득 active income)이 아니라 노동 없이도 얻는 임대료, 배당금, 투자수익, 저작권 같은 소득(소극적 소득 passive income)을 원한다. 돈이 자동으로 들어오는 구조이니 자동 수익, 자동 소득이라고도 부른다. 이런 소득으로 정규 노동과 월급 없이도 살 수 있는 경제능력을 만드는 것이다. 내가 일한 만큼만 돈이 되는 단순 자영업에서 벗어나 여러 고용인들이 나를 대신해 일하며 이익은 더 높아지는 시스템을 구축한 사업 소득도 해당된다.
물론 이런 자동 소득, 소극적 소득을 위해서도 조사하고 공부하고 관리하고 투자 결단을 내리는 등의 수고는 필요하다. 하지만 의무적 노동을 하던 때와는 비교하면 매우 여유로운 정도이다.
이렇게 경제적 자유를 이루고 퇴직한 뒤에는 남은 시간과 늘어난 자유를 자기가 원하는 일에 쓰며 살 수 있다. 내 시간의 온전한 주인이 되는 것, 바로 시간 부자의 삶이다.
이젠 가족들과 시간을 더 보내거나 다양한 취미 활동을 하며 여가를 보내기도 하고 원하는 것을 새롭게 공부할 수도 있다. 유튜브를 하거나 내 경우처럼 책을 내보는 등 사회에 참여하는 이들도 많다. 그런데 이는 재미와 보람을 위해서이지 돈 때문은 아니다. 수익에 의존하게 되면 문화 활동의 즐거움도 덜할 수 있고, 그저 직업을 바꾼 것일 뿐 진정한 파이어족 은퇴자라고 하기 애매해서다.
이 정도가 파이어 운동에 대한 개략적 설명이다. 하지만 삶이 어디 딱딱한 공식처럼만 정의되던가. 각자의 상황이나 취향에 맞춰 다양한 파이어가 가능할 것이다.
벌써 100세 시대이고 앞으로는 수명이 더 길어질 것이다. 이 긴 인생에서 마흔이나 쉰쯤에 한번 은퇴했다고 해서 여생을 그저 쉬다가만 끝낼까? 한 20년 일하고 은퇴해서 10년쯤 쉬며 재충전하고 다시 새로운 직업 생활을 하다가 또 은퇴해서 재충전하는 식으로 제2, 제3의 직업기와 휴식기를 가지면서 살아갈지도 모른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면서 직업 수명이 짧아지기도 했고, 한 번뿐인 인생에서 해보고 싶은 일이 많을 수도 있으니 이런 삶도 꽤 흥미롭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