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사당 천장화와 국립자연사박물관의 뒷모습

워싱턴 D.C. 여행

by 사막여우

2 Sisters: 다이너의 반전

호텔 조식보다 현지의 미국식 다이너를 먹고 싶어서 조식 신청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호텔 주변이 점심 위주 식당 뿐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아침 식사를 할 식당을 미리 알아보았다. 아침까지 맥모닝을 먹고 싶지는 않았다.


호텔 바로 옆, 전형적인 미국식 아침 식사를 제공하는 식당이다. 이름은 '2sisters'. 70년대에 한국에서 활동했을 법한, 무슨무슨 시스터즈라 불리는 여가수들이 생각나는 이름이었다.

예상대로 내부는 전형적인 미국식 다이너였다. 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반전이 있었으니, 바로 주인 부부가 한국인이었다는 점이다. 우리 가족이 한국인인 걸 알고 두 분은 따뜻하게 반겨 주셨다. 커피도 서비스로 주시고, 짬이 나면 우리 테이블로 다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네셨다. 한국말로 대화할 사람을 찾아서, 그리고 한국 현지에서 온 사람을 만난 것이 무척 즐거워 보이셨다.


우리가 머무는 호텔과 이 식당 사이에 있는 건물이 미국의 재난관리본부(FEMA)라고 하셨다. 전 세계가 멈춰 섰던 펜데믹 시절, 모두가 문을 닫을 때도 저 건물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고. 직원들은 내내 비상근무를 서며 재난과 싸워야 했다. 이 작은 식당은 상황이 심각할 땐 닫기도 했지만, 그 직원들의 식사를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영업을 이어오셨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국회의사당: 신이 된 대통령

아침 식사를 마치고 국회의사당으로 향했다. 아침 시간이지만 벌써 너무 덥다. 워싱턴 D.C.는 철저하게 계획된 행정 수도답게, 한 국가의 수도는 이래야 한다는 듯한 도시 설계를 보인다. 국회의사당에서 워싱턴 기념비를 거쳐 링컨 기념관까지 뻗은 일직선의 축. 넓은 잔디밭으로 조성된 이 공간은 모든 것이 한눈에 들어오도록 웅장하게 설계되었다. 하지만 그 탁 트인 시야는 곧, 그늘이 한 점도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국회의사당은 보안상의 이유로 개인적인 자유 관람이 불가능하다. 반드시 예약된 시간에 가이드를 동반한 투어로만 입장할 수 있다. 한국어 투어는 없지만, 각국 언어로 된 브로셔가 비치되어 있어 설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가이드 분께서 이어폰을 나눠주었다. 늘 엄마 투어만 다녀서 요즘 많이들 하는 가이드용 이어폰을 처음 받아든 아이는 색다른 경험에 신이 났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원형 홀의 그림들이었다.


원형 홀 천장에는 '조지 워싱턴을 신처럼 우러러보며(The Apotheosis of Washington)'라는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다. 바로크 회화의 트롱프 뢰유(눈속임) 기법을 활용해, 마치 성인들이 승천하는 듯 묘사한 웅장한 천장화다.


신생 국가였던 미국은 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하며 거대한 나라의 선거권은 어떻게 부여할지, 지도자는 어떤 존재여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 과정에서 워싱턴은 스스로 왕이 되기를 거부했다. 그들은 왕이 아닌 새로운 지도자상을 정의해야 했고, 그렇게 인류 최초의 대통령제가 탄생했다. 투어 내내 가이드가 강조한 것도 바로 미국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초대 대통령이 어떻게 탄생했는가에 대한 자부심이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다. 왕이 되기는 사양했으면서, 신이 되는 것은 승낙했단 말인가?

조지 워싱턴을 신처럼 우러러보며

제목처럼 그림의 가장 높은 곳, 그 중심에는 신이 아닌 워싱턴이 있다. 대통령 취임식 때마다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하는 기독교 국가에서 인간을 신의 반열에 올린 이 그림은, 엄밀히 말해 신성모독이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 미국인들에게 건국 대통령은 단순한 정치 지도자를 넘어 신화적 존재인 듯하다.



벽면의 '포카혼타스의 세례' 또한 은근히 충격적이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바로 그 포카혼타스다. 추장의 딸인 그녀가 기독교 세례를 받는 장면은 표면적으로는 문명화의 상징일지 모르나, 한편으로는 원주민으로서의 정체성 상실과 복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그림 하단부에 묘사된 원주민들의 표정은 절망스러워 보인다.


원주민 스스로가 정복자들의 문화에 감화되어 자연스럽게 동화되었다는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포카혼타스의 세례

투어는 한 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다음 목적지인 자연사 박물관까지는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정오의 태양이 너무 뜨거워 버스를 타기로 했다.


국회의사당 인근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도 힘들어 한 뼘 남짓한 나무 그늘로 몸을 구겨 넣는 나를 보며 한 관광객이 물었다. "한국에서 왔지? 한국은 별로 안 더워?" 사실 요즘 한국도 많이 덥지. 그렇다고 워싱턴 DC의 폭염을 견디는 게 쉬운 것은 아니라고.



국립 자연사 박물관 : 전시와 연구 사이

워싱턴 DC 국립 자연사 박물관. 이곳은 미국의 3대 자연사 박물관 중 하나이자, 뉴욕의 자연사 박물관과 함께 영화 '박물관은 살아있다'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워싱턴 DC의 국립 자연사 박물관은 단순히 유물을 보여주는 전시장이 아니라,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는 학술 공간이라는 점이 큰 특징이다.


아주 오래전, 미국 동부 배낭여행을 왔을 때 워싱턴 DC에서 싱가포르 친구 한 명을 만났다. 당시 나는 전시 인테리어 디자인 일을 하고 있었고, 그 친구는 싱가포르 국립대에서 박물관학을 전공하고 있었기에 박물관이라는 공통분모로 금세 친해졌다. 그 친구는 캐나다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기 전, 미국과 남미를 여행 중이었다. 마침 캐나다 대학교수의 소개로 이곳 연구원을 만나 내부를 견학하기로 되어 있었고, 친구의 배려 덕분에 나도 동행하여 관계자 외 출입 금지 구역인 내부를 둘러볼 기회를 얻었다.


보통의 전시 공간은 자유로운 연출과 조명 통제를 위해 창을 내지 않는다. 하지만 이 박물관은 건물 외벽을 따라 연구실들이 빙 둘러싸고 있고, 빛이 차단된 안쪽 중앙에 전시실이 자리 잡고 있다. 연구실과 전시실 사이에는 직원 전용 복도가 있는데, 연구원들은 그 복도의 창을 통해 아래층의 전시 공간과 관람객들을 내려다볼 수 있는 구조였다.


빛을 막을 필요 없이 전망 좋은 큰 창이 있는 공간은 직원에게 내어주고, 내부는 전시를 위해 쓰는 구조. 보통 박물관을 설계할 때 전시 공간을 최우선으로 하고 직원 공간은 1층이나 구석진 곳에 배치하는 것과 달리, 채광 좋고 넓은 공간을 연구원들에서 배려한 설계가 인상적이었다. 전시만큼이나 연구가 중요한 박물관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아이는 뉴욕 자연사 박물관에서부터 줄곧 왜 과학관에 살아있는 동물이 없느냐고 물었었다. 나는 이정모 관장님의 유명한 농담을 빌려 '자연사 박물관은 자연사한 생물만 전시하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아들은 그런 말장난에 어이없어하며, 그럴 리 없다며 분명 살아있는 생물도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곳 해양관에서 정말 살아있는 생물을 발견했다. 아들은 본인 말이 맞지 않냐며 의기양양해했다. 자연사하지 않은,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바닷속 생물들이 있었다. 그곳은 꼬마들의 핫플이었다. 아들 역시 그곳을 떠날 줄 몰라 겨우겨우 설득해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했다.


전시장 곳곳에 직원들이 상주하며 전시물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점도 좋았다.

또한 전시 공간 일부에 통유리를 설치해 실험실 내부를 공개하고 있었다. 이 곳이 살아있는 연구 현장임을 강조하는 세련된 연출로 보였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제대로 보지 못했던 미라도 정말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아이가 관람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한 사람이 우리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실례합니다만, 아이 사진을 좀 찍어도 될까요?"

박물관 홈페이지나 홍보 책자에 쓰일 자료 사진을 촬영 중이라고 했다. 셔터를 누른다고 다 실리는 건 아니겠지만, 꽤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 같아 남편은 흔쾌히 동의서에 서명했다. 작가는 열정적으로 셔터를 눌러댔다.


"동양인 아이 사진이 필요했던 거 아닐까?"

남편이 말했다. 다양한 인종이 어우러지는 미국의 박물관 홍보물에 다양성을 보여줄 모델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는 합리적인 추측이었다. 이유야 어찌 됐든, 아이는 잠시나마 미국 국립 박물관의 사진 속 주인공이 되는 경험을 했다.



백악관 앞의 저녁

박물관을 나와 백악관 쪽으로 걸어갔다.

백악관 내부 투어는 하지 못했다. 신청 절차가 까다롭기도 했고, 방문 당시 트럼프 대통령 관련 이슈로 백악관 투어가 전면 취소된 상태였다. 백악관 앞 펜스는 팔레스타인 관련 1인 시위가 한창이라 다소 소란스러웠다.

우리가 백악관 쪽으로 이동한 이유 중 하나는 그 앞 식당에서 지인과의 저녁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단골식당으로도 유명한 유서 깊은 곳이었다. 딱히 굴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라고 해서 애피타이저로 굴 요리를 맛보았다.

아침부터 무더위 속 강행군으로 피곤했지만, 훌륭한 정찬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니 꽤 보람찬 기분이 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해가 진 늦은 시간인데도 여전히 더웠다. 우리가 머무는 내내 워싱턴 DC의 더위는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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