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듯, 낯설지 않은 존재

by 전찬민







11살 큰아이는 아침마다 숨바꼭질을 한다. 매번 숨는 곳은 같다. 나는 이제 눈감고도 찾아낸다. 아침에 조용히 사라졌으면 그곳이다. 나올 때마다 기분은 다르다. 어느 날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띠며 나오고, 어느 날은 입을 삐쭉거리며 불평스러운 얼굴로 나온다. 이 숨바꼭질을 위해 늦잠 한 번을 안 잔다. 알람 없이 일어나 후다닥 바쁘게 달려가듯 숨어버린다. 오늘은 안기며 아침인사를 해줄까 싶어 하던 일을 멈추고 만만의 준비태세인 나를 빛의 속도로 지나치며 "おはよう”아침인사만을 날리듯 던지고 숨어버린다.




큰아이가 숨는 곳은 세면대 거울 앞이다. 우리 집에 유일하게 큰 거울이 달려있는 세면대 앞에서 학교 갈 단장을 한다. 특히 신경을 쓰는 건 앞머리다. 큰 아이는 온 우주의 정기를 앞머리에 쏟는다. 나름에 추구하는 스타일이 완고하다. 스트레이트로 쭉 내리다 끝부분에 살짝 말아주는 거다. 여기에서 '살짝'이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인데, 조금이라도 덜 말리거나 과하게 말리면 큰일 난다. 왼쪽 오른쪽 각도를 보면 섬세하게 말아준다. 그 누가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다. 굉장한 집중력을 요구하는 작업인 것이다. 매일 아침 작업을 반복하여 성공과 실패를 거듭한 지금은 제법 베테랑이 되어서 능숙하게 해낸다. 제대로 말아진 날은 요리조리 자신의 앞머리를 감탄하며 끝없이 자신에게 찬사를 보낸다. 원하는 컬이 나오지 않은 날은 어떻게 이 사태를 수습해야 할까 감히 망친 앞머리를 건들지도 못하고 거울과의 끝없는 대화를 시작한다.

나는 숨어버린 큰아이를 진작에 찾아냈지만, 찾으러 가지 않는다. 저 정도 정성이면 인정해줘야 하고 학교규칙에 어긋나지 않게 적당히 꾸며진 모습도 좋아 보인다. 나에게 큰 인내를 요구하지만 난 어른이니 이 정도는 참을 줄 안다. 하지만 나와야 할 때가 훨씬 지나, 큰 아이의 밥은 식어가고 내 속도 모르고 시계는 정차 없이 흘러갈 때면

나도 어쩔 수 없다. '이제 그만해라...' 부글거리는 마음을 누르며 최대한 볼륨을 낮춰 어금니를 물며 말한다.


아침에 집 나서는 사람 기분 나쁘게 하는 거 아니라는 게 친정엄마의 말씀이다.



나의 초조함은 모르겠고, 앞머리 평이 중요한 큰아이는 "어때?"라고 꼭 묻는다.

"이쁘네" 적당히 대답해 주면 "しってる”(알고 있어) 라며 뽐내듯 눈을 요리 추켜올리며 자리에 앉는다. 한참을 앞머리에 할애했으니 당연히 시간을 촉박해지고 아침밥 먹는 속도는 평소보다 2배 빨라진다. 그래도 다 먹고 일어나면 괜찮은데 시간 없다고 반만 먹고 일어나면 참아왔던 저 깊은 곳을 팍침이 올라온다.


"그러니깐 적당히 말고 빨리 와서 아침밥을 먹으라고 그랬지!!!!" 목소리는 도레미파솔라라라라라로 올라가며 뒤통수에 대로 잔소리를 하기 시작한다. 친정엄마의 말씀은 저리 던져버렸다. 아직 1절도 시작 안 했는데 큰 아이는 휙 뒤를 돌아보며 말끔하게 이쁜 그 얼굴로 "미안" 하며 배시시 웃는다. 라솔파미레도도도도도......

"안 먹고 가면 10시부터 너무 배고프다며.." 현관문을 나서는 큰 아이 어깨의 먼지를 털어주며 나도 모르게 애원하다.


나는 아침에 지각하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로 일어나는 것도 겨우, 세수도 겨우였다. 로션도 안 발라서 하얗게 버짐난 채로 다녔던 건조한 소녀였다. 날 똑 닮은 큰아이는 얼굴만 닮았지 나와 달리 생기 있는 얼굴에 이쁘게 멋을 내고 학교를 간다. 엘리베이터가 닫히려고 할 때, "내일은 다 먹고 갈게, 안녕" 하며 손을 힘껏 흔들며 내려간다. 날 닮지 않는 다정한 큰아이는 높아졌던 음성 넘어의 속상한 엄마마음을 알아준다.



오늘은 정말로 앞머리가 유독 잘 말렸나 보다

내 애달픈 마음도 달래주는 여유까지 있는 거 보니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