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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나 May 07. 2020

딸아 이런 남자를 남편으로 고르렴

힘이 센 남자여야 한다.

우린 지난 주말 거실과 방의 구조를 조금 바꾸고 가구를 옮기느라 바쁜 오후를 보냈어.

한번 일을 시작하면 끝장을 봐야하는 아빠와 나는 해가 지기 전에 정리를 끝내고 싶어서 마음이 바빴다.

아빠는 피아노를 네번 옮겼고. 바퀴 달린 피아노를 옮기기는 어려운 일은 아니었으나 피아노를 카페트 위에 올려야 하는 일은 매우 힘들었어.

피아노의 네 귀퉁이를 한번씩 따로 들어서 카페트에 올려 놓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거든.

그걸 네 번 했지.

물론 힘센 너의 아빠는 수월하게 해냈지. 잘했구 말고. 그런데 다음날 월요일 출근을 하고서 문자를 보내왔어.


“자꾸만 다리가 떨리고 주저 앉을 것만 같아. 힘이 하나도 없어. 나 몸 어디가 고장난걸까? 빈혈은 아니겠지?”


아빠는 피아노를 네 번 옮기고 다리가 풀려버린 거야.


나중에 너도 결혼이란걸 할 수도 있을텐데

사실 나는 네가 형제가 없기 때문에 좋은 남편을 만나기를 바란다.

혼자 살기보다 의지할만한 벗이 있기를 소망해.

살다가 고단한 순간들이 오더라도 헤어지기 쉽지 않은 벗을 만나기를 그리고 그도 너를 오래도록 소중히 여기기를 바라는 내 마음은

네가 공부를 잘하기를 바라는 욕심보다

네가 댄스를 잘하길 바라는 기대보다

훨씬 크고 강렬하다.


그래서 말인데


남편을 고를 때는 여러 개의 tick box 를 만들어놔야 하고, tick box에 넣은 조건들이 무엇이 되어야 할지 생각해봐야겠지.

그 조건들이란걸 말하기 시작하면 네가 서른 살이 되는 날까지 세헤라자데처럼 매일밤 읊어댈 수도 있겠지만,

나는 간결한 사람이므로 최대한 요약해서 말해보겠다.


일단은 힘이 센 남자여야한다. 힘이 센 남자는 어떤 남자인가. 목이 굵은 남자여야한다.

사실 이건 너의 외할머니 말이니 어떤 과학적 통계도 의학적 사실도 아니다.

그런데 아빠를 처음 본 너의 외할머니가 그랬지


“목이 굵다. 좋다”


지금은 피아노를 네 번 옮기고 다리가 풀려버리는 남자가 되었지만 처음부터 그랬던것은 아니다. 그리고 다리가 풀리더라도 그날 오단 책장 세개와 식탁 , 피아노의 위치를 총 네 번 바꾸었으니 할 일을 다 하고 풀린 다리라 제 쓸모는 다했다.

힘이 센 남자는 할 일을 다 하고 마칠 수 있는 남자다.

할 일을 그만두지 않고 해낼 수 있는 힘이란 사소한 것이 아니다.


네 아빠가 하는 사업은 지금 가장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다. 우린 은행 빚도 있고 사람에게도 빚이 있다.

그 빚을 다갚고 자유로운 사람이 되려면 사실 아직 멀었다.

엄마아빠는 그만두고 싶을 때가 너무나 여러번이었고 채무도 포기하고 싶어질 때가 많았는데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아빠는 목이 두꺼운 남자였고 나는 목이 두꺼운 남자를 고른 여자니까.

중간에 그만두기엔 힘이 남아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만두기에 우리에게 남은 힘이 적지 않아서...


그러니 딸아

힘이 센 남자를 고르렴

피아노를 옮기고 책장도 옮긴 뒤 해가 지기 전에 마무리를 하고 자는 사람을 고르렴

그가 다음 날 다리가 후덜거린다 고백하더라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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