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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lish Nov 19. 2020

초콜릿이 녹을 땐 슬픔도 녹아내려 #4

네 번째 피스 #달콤한맛



치열한 호르몬 전쟁이 극을 향해 달리고 있다.

이 시기는 시간대를 가리지 않고 당분을 충전해 주는 게 전략적 선택이다. 살이 찌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잠시 뒤로 미뤄두는 게 좋다. 호르몬에 인격체가 완전히 잡아먹히지 않기 위한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주섬주섬 겉옷을 걸치고 바깥으로 걸어 나간다. 문이 열려 있는 카페에 들어가 초코드링크 메뉴를 빤히 들여다본다. 오늘따라 시원한 프라푸치노나 쉐이크 메뉴의 유혹이 강력하다. 그럼에도 아이스 초콜릿을 선택한다.


나에게는, 계획이 있기 때문이다.



맛없는 음식에 라면스프를 넣으면 마법처럼 맛이 살아난다고 한다. 마리벨 아즈텍 핫 초콜릿은 라면스프 같은 존재다. 오프라 윈프리가 반했다는 뉴욕의 수제 초콜릿 가게 마리벨(Marie Belle). 일반적으로 쇼케이스에 놓여 있는 쇼콜라를 볼 때면 차분하게 영롱하다는 느낌이라면 마리벨은 화려하고 개성 넘치는 쪽에 가깝다. 트렌드 한 매장들이 모여있는 맨해튼 소호 거리의 톡톡 튀는 바이브를 꽤나 닮았다. 


스토리가 담겨있는 프린팅으로 장식된 네모반듯한 초콜릿의 부드러움도 황홀하지만 가벼운 터치로 맛의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마법의 가루 아즈텍 핫 초콜릿(Aztec Hot Chocolate)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코코아 가루라고 생각하면 섭섭하다. 홀 카카오 빈을 아즈텍 전통방식으로 갈아낸 순수한 초콜릿이다. 입맛에 맞는 초코우유 한 모금을 위해 초콜릿을 중탕해 우유를 만들어 본 경험이 있는 진성 초코 덕후라면 절대 지나칠 수 없는 잇템인 것.



어느덧 찬장 속 터줏대감으로 군림하고 있는 아즈텍 핫 초콜릿은 카카오 함량 65%의 짙은 맛이다. 민트색과 다이아몬드 패턴의 조화가 어쩐지 크리스마스를 떠올리게 하는 철제 케이스는 이 순수한 초콜릿 가루의 맛을 미국 식, 유럽 식으로 즐기는 황금비율을 친절히 안내한다. 커피에 곁들이기를 원한다면 모카치노 레시피를 참고하면 된다. 같은 맛을 선택해도 개인의 취향은 저마다 다름을 인정하는 자세 역시 선물 같다.



처음 몇 번은 단독으로 타 먹었지만 이내 다른 초코음료에 커스터마이즈 하는 식으로 바꾸었다. 양을 듬뿍 만들어 아이스로 마시기에는 상상 이상으로 들어가는 파우더 양이 많기도 했고, 단 맛만 강해 아쉬움이 감도는 음료에 소량을 녹여 섞으면 곧 원하던 달콤쌉쌀한 맛으로 재탄생해 만족감을 높여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기 때문이다. 구하기 쉽지 않은 향신료이니 경제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외부에서 마셔야만 할 때면 어쩔 수 없지만 집에 가져올 수 있는 상황이라면 습관적으로 마리벨의 가루를 더한다.


가벼운 밤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음료의 리드를 연다. 동생이 중고로 구입한 라떼 메이커와 아즈텍 핫 초콜릿도 함께 꺼낸다. 처음에 라떼 메이커를 사 왔을 때는 쓸데없이 왜 이런 걸 사 왔나 하는 눈빛으로 동생을 바라보았는데 코로나 시국을 맞으니 이렇게 유용할 수가 없다. 


라떼 메이커에 약간의 우유를 넣고 따뜻하게 데워주는 동안 원래 음료의 맛을 가볍게 본다.


달다. 

역시, 마법이 필요하다.


녹인 음료를 붓기 편하게 따뜻한 우유와 마법의 가루를 다기에 부어 젓는다.

휘, 휘.. 휘.....



초콜릿 덩어리라 녹이는데 시간이 걸리는 편이다. 어느 정도 녹으면 빨대로 휘핑크림을 밀어내 만든 투입구에 따라낸다.


달가닥, 덜그덕.

얼음과 음료를 뒤섞으며 나는 연금술사가 된다. 손의 움직임이 멈추고 고개가 움직이면 이내 입가엔 미소가 지어진다. 얼음이 녹아 들 새도 없게 바닥이 말랐음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오늘의 연금술도 성공적이다.



© JINA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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