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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erkat Jul 15. 2019

플라톤은 페미니스트였을까

 

나라를 경영하는 일은 누구에게든 맡길 수 있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대머리인 사람들과 장발인 사람들의 성향을 예로 들면서, 다른 성향에는 다른 일을 배정하되 같은 성향에는 같은 일을 배정했을 때, 우리는 다른 성향과 같은 성향의 종(種)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그리고 또 무엇에 적용해서 그런 구분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알아봅니다.


우리로서는 대머리인 사람들의 성향과 장발인 사람들의 성향이 같은 것이고, 결코 반대되는 것이 아닌지를 자문해 볼 수 있을 것 같으이. 그래서 우리가 그게 반대된다는 데 동의하게 될 때는, 대머리인 사람들이 제화공 노릇을 할 경우에는, 장발인 사람들은 그걸 못하게 하고, 반대로 장발인 사람들이 제화공 노릇을 할 경우에는, 다른 쪽이 그걸 못하게 할 걸세. 

그건 정말 우스운 일일 것입니다. 

그게 우스운 것은 이 점 말고 다른 점 때문이겠는가? 즉 그때는 우리가 같은 성향과 다른 성향을 모든 면에서 거론한 것이 아니라, 다름과 닮음의 그 종種을 일들 자체에 적용되는 것에만 국한시켜 유념하고 있었다는 점 말일세. 이를테면, 남자 의사나 여자 의사나 혼에 있어서는 같은 성향을 지니고 있다고 우리가 말했었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저로서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의사와 목수는 다른 성향을 지녔겠고? 

전적으로 다를 게 분명합니다. 

따라서, 남성과 여성이 만약에 어떤 기술이나 또는 다른 일과 관련해서 서로 다른 것으로 판명된다면, 그쪽에 이 다른 일을 배정해야만 한다고 우리는 말할 걸세. 그러나 만약에 그들이 달라 보이는 것이 바로 이 점에 있어서만이라면, 즉 여성은 아이를 낳으나, 남성은 아이를 생기게 한다는 점에서라면, 우리가 말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 여성이 남성과 다르다는 데 대한 증명이 조금도 잘된 것이 없다고 말할 것이며, 오히려 우리의 남자 수호자들도 그리고 그들의 아내들도 같은 업무에 종사해야만 한다고 우리는 여전히 생각할 걸세. 



이러한 플라톤의 주장은 당시 아테네 사회에서 오랫동안 굳어져 있던 관행을 부수는 주장이었습니다. 성별에 따라 직업, 노동이 달라진다는 인식을 혁파하고자 한 것입니다. 의사이면 의사이지, 남자 의사와 여자 의사를 구분할 이유가 없습니다. 즉, 남성과 여성은 그들의 본성에 “종적 차이(in kind)는 없고 다만 정도의 차이(in degree)만이 있을 뿐”이라는 결론으로 나타납니다. 능력만 있으면 여자도 철인왕이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남성이라도 능력이 없다면 대단한 위치에 있더라도 국가를 통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플라톤은 남자가 아이를 생기게 하고 여자는 그 아이를 낳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는 것, 그리고 남자에 비해 여자의 신체적 힘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것을 빼고는 남녀간에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플라톤이 살던 시대적 환경을 생각해본다면 이러한 주장은 가히 혁명적인 것이었습니다. 결국 플라톤은 성별에 따른 차별 없이 ‘성향에 따라’ 나라를 경영하는 일을 누구에게든 맡길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나라를 경영하는 사람들의 일(업무)로서 여자가 여자이기 때문에 여자의 것인 것은 없고, 남자가 남자이기 때문에 남자의 것인 것도 없다네. 오히려 여러 가지 성향이 양쪽 성(性)의 생물들에 비슷하게 흩어져 있어서, 모든 일에도 여자도 ‘성향에 따라’ 관여하게 되고, 남자도 모든 일에 마찬가지로 관여하게 되는 걸세. 


플라톤은 여성주의자였는가? 

플라톤을 여성주의자로 규정한 대표적인 철학자인 블라스토스(Vlastos)는 <플라톤은 여성주의자였는가(Was Plato a Feminist)?>라는 논문에서 여성주의를 “성별 때문에 인권의 평등이 거부되거나 제한되지 않아야 한다.”는 이념으로 정의한다면, 플라톤을 ‘최초의 여성주의자’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플라톤을 '최초의 여성주의자'라고 선뜻 부를 수 있을까요? 과연 플라톤 여성관의 한계는 없을까요? 플라톤의 <국가> 전체를 바라본다면 곳곳에서 여성을 향한 왜곡된 시선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아래에서는 몇 가지 사례들을 살펴보기로 합니다. 먼저 <국가> 제3권에서 플라톤은 모방을 통한 교육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차별적인 말을 사용합니다.  


우리가 신경을 쓰며 또한 훌륭한 남자들로 되어야만 된다고 주장해 오고 있는 이들이 남자이면서도 여인을 모방하도록 우리가 허용하지는 않을 걸세. 그 여인이 젊건 나이가 많건 간에, 또는 남편에게 욕설을 퍼붓거나, 또는 신들에 대해 맞서려 하며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고서는 뽐내는 여인이건 간에, 또는 불운과 슬픔 그리고 비탄에 빠져 있는 여인이건 간에 말일세. 뿐만 아니라 병이 들었거나 사랑에 빠져 있는 또는 진통을 겪고 있는 여인을 모방하도록 허용할 리도 만무할 걸세.


또한 플라톤은 슬픈 노래는 “여성과 못난 남성”에게 들려주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남성은 이성적이고 여성은 감성적이라는 일반적인 차별 인식도 그대로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이름난 남자들의 애가들을 가려내어서, 이를 여인들에게 돌린다면, 그것도 진지한 여자분들에겐 그러지 않는다면, 그리고 남자들 중에서는 모든 못난 자에게 돌린다면 이는 옳을 걸세.
우리 가운데 어떤 이에게 개인적인 슬픈 일이 생길 때, 우리가 침착성을 유지하며 그걸 견디어 낼 수 있을 경우에, 이를 남자다운 것으로, 반면에 앞서 우리가 칭찬했던 그것은[참지 못하고 슬픔과 비탄에 빠져 있는 것] 여성적인 것으로 여겨, 이번에는 그 반대의 것을 우리가 자랑한다는 걸 자네는 알고 있네. 


그리고 플라톤은 “많은 욕구와 쾌락 그리고 고통을 특히 아이들이나 여인들, 하인들, 다수의 미천한 사람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또한 <국가> 제8권에서는 탐욕스럽고 야심 많은 여성의 본성을 지적하면서, 그로 인해 아들을 타락시킬 수도 있는 존재로 묘사합니다. 


화가 난 어머니가 이런 불평을 하는 걸 그가 듣게 되었을 때일세. 즉 제 남편이 통치자들 중의 한 사람이 아니며, 이 결과로 다른 여인들 사이에서 자신이 얕보이고 있다고 불평을 하지. 그러다가 남편이 재물에 대해서도 그다지 관심이 없으며, 개인적으로 법정에서 다툰다거나 공적으로 남을 비난하는 일도 없이, 이런 유의 모든 일을 태연하게 대하는 것을 보게 되네. 또한 남편은 언제나 자기 자신에 대해 마음쓰고, 아내를 그다지 존중하지도 그렇다고 무시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네. 이 모든 일로 부아가 나서, 아들에게 말하기를 아버지는 남자답지도 않고 너무 태평이라고 하며, 또한 그 밖에도 이런 유의 일들과 관련해서 여인들이 되뇌기를 곧잘 하는 그런 하고많은 걸 말하네. 


플라톤에게 있어 스승인 소크라테스를 죽인 체제인 민주주의는 ‘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로 가득한 타락한 정체(政體)입니다. 플라톤은 <국가> 제8권에서 민주주의를 따르는 사람을 여성에 비유하면서 비하하기도 합니다.  


“아마도 정체들 중에서는 이게 가장 아름다운 것임직하이. 마치 온갖 꽆의 수를 놓은 다채로운 외투처럼, 이처럼 이 정체도 온갖 성격으로 장식되어 있어서 가장 아름다워 보일 걸세. ... 그뿐더러 아마도 많은 사람 또한, 마치 다채로운 것들을 보고 있는 아녀자들처럼, 이 정체를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 판단할 걸세.” 


여성성이 제거된 여성 통치자


플라톤의 <국가> 곳곳에서 드러나는 여성차별적인 발언들은 둘째 치고서라도, 플라톤이 말한 여성 통치자는 큰 결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플라톤이 말한 여성의 정치적 주체화가 바로 여성성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여성의 정치적 주체화는 남성과 동일화 되어야만 가능한 것인가? 여성성 그 자체를 안고 정치적 주체가 될 수 없는가? 플라톤이 말한 남성과 여성의 ‘무차이성’은 그런 의미에서 긍정적 의미를 가지기 힘듭니다. ‘여성과 남성이 차이가 없다’는 것은 ‘여성이 남성으로 동화되어 간다’라고 볼 수 있습니다. 플라톤이 <국가> 제5권에서 상정하고 있는 여성 철인왕은 오직 자신의 성적 특징을 제거해버린 바탕 위에서 그 가능성이 도모되는 한계를 지녔습니다. 플라톤의 여성 철인왕은 여성으로서의 성을 포기하도록 강요합니다. 여성의 자연적인 성질을 부정해야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올바르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은 일입니다. 플라톤은 남성과 여성의 ‘무차이성’과 ‘평등’을 언급하지만 여기서의 평등은 일종의 산술적 평등(arithmetike isotes)을 의미합니다. 여성이 가지고 있는 여성성, 섹슈얼리티는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플라톤은 <국가>에서 두 번째 파도인 처자식(妻子: 처자) 및 재산의 공유를 통해 가족의 폐지와 여성성의 제거를 주장합니다. 남자 수호자와 여자 수호자는 자연적 필연성(anankē)에 의해 상호의 성적 관계로 유도됩니다. 행복한 사람들의 나라에서는 서로가 무질서하게 성적 관계를 갖는 것은 경건하지 못하며, 통치자들이 허용하지 않습니다. 나라의 통치자들은 최상급이어야만 하는데, 최상급 통치자들을 얻기 위해 최선의 남자와 여자가 성적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따라서 가장 유익한 혼인이란 최선의 것들, 최대한으로 절정기인 것들한테서 최대한으로 자식을 얻는 것입니다. 최선의 남자들은 최선의 여자들과 가능한 한 자주 성적 관계를 가져야 하며, 변변찮은 남자들은 변변찮은 여자들과 성적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자녀의 양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최선의 남녀에게 나온 자식들은 양육되어야 하며, 그 반대의 경우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이 나라의 빼어난 자들의 자식들을 특정 지역(보호구역)에 떨어져 거주하는 양육자들 곁으로 보내 양육해야 합니다. 


“우리의 이 나라에 있어서의 최대선의 원인은 보조자들에 있어서의 처자들의 공유인 것으로 판명되었네. ... 이들에겐 사유의 주택도, 토지도, 소유물도 있어서는 아니 된다고 아마도 우리가 말했던 것 같기 때문일세.”


당시 그리스 사회와 그 시대를 살았던 플라톤이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인식했다는 것이 나타납니다. 플라톤에 따르면 처자식을 공유한다는 것은 사유재산을 공유한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플라톤은 처자식을 공유함으로써 사적 소유물, 즉 재산이 공유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재산과 여성이 공유된다는 것은 가족제도가 폐지된다는 것입니다. 플라톤이 말한 (수호자 계급의) 여성해방의 목적은 여성 개개인이 아닌 국가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국가에 이익을 가져다주는 수호자 계급의 여성은 전통적인 가족제도에서 벗어날 때에만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즉, 여성이 본성적으로 가지고 있는 여성성을 제거해야만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이로써 플라톤은 여성의 전통적 기능과 속성에 대해서 낮은 가치를 부여하고, 전통적 여성의 역할을 폐지하여 처자를 공유해야 한다는 것은 여성주의적 관점이 아닌 남성 중심적 사고에서 나온 편견으로 볼 수 있습니다. 즉, 플라톤이 말한 남녀평등은 여성의 여성성을 제거하고, ‘명예로운 남성’으로 돌리는 데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플라톤의 여성 통치자는 ‘자유의지를 상실한’ 여성입니다.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국가의 지배를 받고, 자신이 낳은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자신도 모르는 낯선 곳으로 보내지기 때문입니다. 플라톤의 처자식의 공유로 인해 여성의 섹슈얼리티의 특성이 무시되고, 모성애적 성격도 무시됩니다. 플라톤은 여성 통치자에게 여성성과 정치적 주체성 간의 화합할 수 없는 딜레마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플라톤의 이러한 처자식의 공유는 남녀평등의 발상이라기보다는 공공선을 위한 ‘여성이 없는 여성 통치자’의 육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를린 색슨하우스는 또한 처자식의 공유를 아래와 같이 비판합니다. 

“일부일처제 가족의 탄생은 아버지의 불확실성을 극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여성은 가족 체제에 의존하지 않고서 자신이 어머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안에서 아이의 움직임을 느끼고, 아기가 그녀의 몸에서 떠나는 것을 경험한다. 아기의 출산에서 남성의 참여는 짧은 순간으로 제한된다. 가족은 자연이 여성에게만 주었던 아버지와 자식 사이의 지적인 유대를 제공한다. 가족을 파괴하고 탄생의 순간에 어머니로부터 아이를 떼어놓으면서, 소크라테스의 제안은 부계와 모계 모두의 불확실성을 형성한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자신의 아이를 알지 못하게 되는 것은 법제화되어야 하는 것으로 결코 자연적인 제도는 아니다. 결국, 소크라테스의 모델에서, 남성적 정치세계에서 여성을 자유롭게 한다는 것은 또한 여성을 무지로 풀어놓은 셈이었다. 남성과 평등해지면서, 남성 같은 여성은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감각을 상실하게 된다.” (아를린 색슨하우스, <정치사상과 여성>, 박의경 옮김, 99쪽) 


동화(同化)의 정치


이러한 ‘여성성을 제거한 여성’, ‘여성 없는 여성’이라는 플라톤의 시각은 페미니즘 운동의 변천 과정 속에서 답습됩니다. 서구에서는 페미니즘 운동을 세 번의 물결(wave)로 정리합니다. 첫 번째 물결(1880s-1920s)은 여성들의 정치적 권리 획득을 위한 참정권 운동이며, 두 번째 물결(1960s-1980s)은 ‘여성 해방’을 중심으로 ‘여성’의 관점에서 평등권 획득을 목표로 하는 운동이며, 세 번째 물결(1980s-1990s)은 여성들 간의 차이를 드러내는 페미니스트 정체성에 근거한 평등권 운동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제1기 여성운동은 억압된 여성을 해방시키는 데 기여했습니다. 하지만 제1기 여성운동은 여성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경험인 가사노동, 낙태나 모성 등 여성성을 제거하고 남성과 동화되어야만 하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차이’까지 제거해야만 여성이 정치적 주체로 설 수 있던 것입니다. 이것은 그로즈(Elizabeth Grosz)가 말하듯이, 평등주의 페미니스트들의 문제점에도 나타나는 것과 같이 여성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평등만을 강요하는 것은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여성의 특별한 욕구를 무시했을 뿐만 아니라 여성의 신체를 제거시킨 행위”라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치학자 아이리스 영은 “기존 지배 질서가 잔존해 있는 상황에서 ‘같음’과 ‘평등’을 지향한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합니다. 제2기 여성운동은 제1기 여성운동의 한계를 극복하고 “여성주의 가치를 우선시하고 여성적인 것에 우월성을 부여”하면서 남성과 다른 여성의 차이를 강조하고 ‘차이지향성’으로 가기 시작했습니다. 여성이 여성으로 정치적 주체로 설 수 있는 방법은 ‘무차이성’이 아닌 ‘차이’에 대한 인정에 있으며, 구체적으로 남성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여성성을 부각함으로써 이러한 여성성을 위해 투쟁할 필요성이 있는 것입니다. 


여성에게 무대를 열어 주지 못한 플라톤


플라톤이 <국가>에서 주장한 ‘남녀평등’과 ‘처자(妻子)의 공유’는 당시 그리스・아테네 사회 혹은 현대 사회에서도 파격적이고 혁명적인 주장입니다. 플라톤은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그저 생물학적 성(性) 기능의 차이라면, 남자와 여자는 사회학적 기능으로 차별을 받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남녀평등을 기반으로 공동생활을 하면서 처자를 공유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플라톤 <국가>에서 나타난 남녀평등은 추가로 한계점이 많이 나타납니다. 


첫째, ‘처자’의 공유라고 표현한 점입니다. 남자를 중심에 두고 여자와 자녀를 객체화한 것입니다. 플라톤이 말한 공동생활, 공유에는 남자가 주체(중심)로서 여자를 공유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실 여자가 주체(중심)로서 남자를 공유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앞선 플라톤의 남녀평등의 주장에 따르면 ‘남녀 및 자녀의 공유’라고 표현했어야 합니다. 언어 인식에 중심을 남성에 두고 사용했다는 점에서 남성 중심적 사고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한계를 드러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 <국가> 전체 논의에서 주인공에 여자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국가> 전체에 걸쳐 소크라테스 이외에 총 여섯 명의 대화자가 등장합니다. <국가>라는 극의 배경은 밴디스 여신을 모시는 축제가 끝나고 폴레마르코스의 집에서 ‘남자’들끼리의 모여 대화를 나누는 모습입니다. <국가>에서 여자는 여신(女神) 혹은  공유의 대상으로 잠시 등장할 뿐 전체 대화에서는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여자 없이 남자들만 모여 대화를 나눈 탓에 ‘그 자리’에 없는 여자를 객체화시키는 잘못을 저지른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플라톤은 <국가>에 여성를 대화의 ‘주제’가 아니라 대화의 ‘주체’, 즉 대화자로 등장시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국가>는 있는 사실을 그대로 옮긴 글이 아니라, 플라톤의 사유 속에서 재구성된 글이기 때문입니다. 자크 랑시에르는 정치란 “몫 없는 이들의 몫(part des sans-part)의 설립에 의해 지배의 자연적 질서가 중단”되는 것이라 말합니다. 그리고 몫 없는 이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공통의 무대”를 구성해야 합니다: “정치는 우선 공통의 무대에 대한 갈등이고 이러한 무대에 현존하는 이들의 존재 및 자격에 대한 갈등이다.” 


하지만 플라톤은 여성에게 무대를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플라톤이 약 2400년 전 <국가>라는 저서에서 여자를 주체로서, 남자와 동등한 대화자의 위치로 서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후대에 진정한 여성주의자로 불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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