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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H Dec 01. 2023

돌멩이 하나의 산책

푸바오와 러바오를 눈에 담은 날

쌀쌀한 공기가 코끝을 톡 쏘듯 간지럽혀 움츠러드는 겨울의 아침, 산책을 나선다.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모두 마감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을 바라보니, 어여쁜 달이 아직 잔잔하게 떠 있다.

놀이기구도 동물원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재미없는 중년이 돼버린 내가 놀이동산을 갈까 말까를 몇 달 고민하다, 내년 꽃 피기 전에 간다는 푸바오를 한 번이라도 봐야 후회가 없지 않을까 용기를 내어 본다. 오롯이, 귀여운 러스타와 사랑스러운 푸공주를 보고 싶은 마음 하나로 25년 만에 에버랜드로 고고!


매표소에서 자유이용권을 구입하던 그 시절과는 사뭇 다르게 모든 것이 사전예약과 QR코드로 처리되길래, '굿모닝 푸바오+사랑해 푸바오 패키지' 두 가지를 예약했다. 9:30 AM 집결해서 이동하니, 넉넉하게 20분 전에 도착했는데 예상 밖으로 이미 예약한 줄이 기다랗게 늘어서 있었다. 1차 예약자 줄의 끄트머리에 위치해, 유치원생처럼 기차놀이를 하듯 선형을 유지하며 이동을 했다.


사육사님의 무한한 사랑과 보살핌을 받고 있는 판다지만, 실내외 방사장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협소해서 이 제한된 공간에서 모든 시간을 보내야 하는 사실만은 안타까움이 든다. 유원지의 특성상 시끌벅적한 음악과 안내방송, 놀이기구 탑승자의 함성, 놀이 기구 작동 소리가 더해져, 잠시 머무는 내게도 소음이 상당하던데, 이 소리마저 익숙해져야겠지? 어쩔 수 없이 중국으로 가야 하는 푸바오의 새 공간은 적어도 이것보단 자연친화적인 곳이기를 바라본다.


입장하자마자 아침 식사 중인 러바오가 눈에 띄었다. 구찌 블로퍼 보다 더 예쁜 신발을 신은 것 같은 앙증맞은 발, 맛을 음미하듯 꼭 감고 먹는 표정, 미식가처럼 맛있는 대나무를 선별하는 몸동작, 깔끔쟁이 성격, 뽀얗고 하얀 털은 피천득 님의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의 청신한 얼굴이다'의 글귀가 떠오르는 것처럼 깨끗하고 맑디 맑다. 곡예하듯 나무 타는 모습과 댄싱킹처럼 마킹하는 모습을 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러바오를 눈에 담는 찰나가 몽글몽글 행복했다.

뒤를 돌아 영원한 아기 판다, 푸바오에게로 향했다. 푸바오는 야외방사장 아침 산책 중이었는데, 이미 좁은 공간의 관람객이 세 줄로 띠를 두르고 있어서, 키가 작은 난 요리조리 고개를 빼고, 까치발을 들어도 잘 보이지 않았다. 뒤에 서서 만세를 하듯 두 팔을 쭉 뻗고 핸드폴 카메라 줌을 가득 당겨, 핸드폰 화면 속 예쁜 판다를 따라 시선을 옮기며, 나도 함께 푸바오의 공간을 몇 바퀴를 돌아본다. 금세 10분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이제 사랑해 푸바오 패키지 Q패스 한 장이 남았다.


굿모닝 푸바오 2-3차 관람객이 입장하는 동안 판다월드 주변을 어슬렁어슬렁 산책하다, 에버랜드 정식 오픈하는 시간 즈음 다시 판다월드로 갔더니, 현장 줄 서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직원 분께 여쭤보니, 아직 오픈 전이라 줄이 없으니 당장 Q 패스를 사용 안 해도 된다고 하셔서, 들어갔는데 웬걸! 건물 앞에 굿모닝 패키지 관람객이 두 번째 관람을 위해 이미 줄을 서 있었다. 이러다 또 까치발 들고 봐야 하나? 고불고불한 대기 줄 중간에 서서 주변을 살펴보니, 건물 입구에 Q패스 합류 사인이 눈에 띄었다.


"죄송해요. 뭐 좀 물어보고 올게요." 새치기로 오해하면 어쩌나? 따가운 눈총이 잔뜩 느껴졌지만 좁은 대기줄을 비집고, 입구에 직원을 찾았지만 없어, 맨 앞줄에 선 분들께 "Q패스 라인에 서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물어보니, "길이 별도로 따로 있으니 다시 첫 입구로 돌아가야 해요. 곧 입장이니 빨리 뛰어가세요!"라고 친절히 안내해 주셨다. 정말 고마워요!


어렵게 다시 돌아가 입구에서 Q-pass QR로 입장하니, 대기줄 옆에 샛길을 열어주셨다. 10:20-10:25 두 번째는 5분 관람! 두근두근! 아직 둘 다 야외에 있을까? 기다리는 시간이 설렌다.

그 새, 러바오와 푸바오 둘 다 실내로 들어왔구나. 러바오는 2차 아침식사 중이다. 아까 러바오 먼저 봤으니, 이번엔 푸바오에게 먼저 가야지!

고마워! 보석같이 반짝이는 눈을 이렇게 코 앞에서 바라볼 수 있다니. 더군다나 사과 먹는 모습을 보여줘서 감사한 마음이 몽실몽실 부풀어 가득하다. 이렇게 아름다운 생명체가 있을까? 안 예쁜 구석이 하나도 없어 감동을 준다.

15분 꽉 차게 행복했으니 더 욕심내지 않고, 집으로 향했다. 갖고 싶었던 푸사원 인형을 작업실 여기저기 자리를 찾아주고, 기쁨을 주는 보물+행복을 주는 보물을 만나고 온 만큼 12월, 올해의 마지막도 에너지를 가득 채워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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