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디 프로필
팬데믹에 마스크라는 작은 가면에 나를 감추는 시간이 길어지면 좋은 긴장마저도 모두 풀어지고 만다. 프리랜서로 살아가며 원래도 집에서만 지내는데 불편함이 없었지만, 사회가 권장하는 단절과 고립에 게으름이 더해져 뒹굴거리는 나의 작은 체구가 불어나기 시작했다. 나잇살과 더불어 숨쉬기 운동만으로도 잘 버텨주던 탄력과 근육은 모두 소실되었고, 앉아서 장시간 일 하는 덕에 하복부 셀룰라이트 갑옷이 생겼다.
옷을 한번 사면 10년 20년 오래 입는 것을 좋아하는데, 원피스와 바지 지퍼가 올라가질 않았다. 조금씩 조금씩 사이즈가 크거나 루즈핏 옷을 사기 시작했는데, 옷장의 옷들을 모두 교체하는 것보단 운동해서 예전 옷들을 입게 되는 것이 경제적이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햇살이 참 좋았던 어느 봄날, 삼청동 국제갤러리 카페에서 정말 오랜만에 대학 동기들을 만났다. 이제는 ‘건강’이란 이슈에 대해 도란도란 얘기를 나눌 나이구나. 한 친구에게서 우리 또래의 장미과 선배인 유튜버 빅씨스의 홈트를 추천받았다. 운동과 거리가 먼 나는 운동은 안 따라 하고 모델 같은 몸매에 영화 같은 삶을 사는 그녀의 이야기가 더 재밌었다.
그러다 일러스트레이터 오늘의 ‘요즘 헬스 합니다’라는 페이지를 즐겨보게 되었다. 인내심 없는 나도 단기로 목표를 정한다면 할 수 있지 않을까?
나의 목표는 두 가지. 1. 예전 옷 다시 입기. 2. 체지방 20% 만들기.
동네 소규모 PT샵을 등록해서 일주일에 두세 번 50회 운동을 했다. 손목이 너무 안 좋아서 고강도 운동은 전혀 할 수 없었지만, 규칙적으로 운동을 가는 것만 해도 장족의 발전이라 만족했다. 남들 같은 식단을 하지 않았지만 배달음식이나 야식을 많이 줄이고, 첫 두 달 시험 삼아해 봤던 간헐적 단식의 효과가 엄청 커서 금세 예전 몸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7월에 밀접접촉자로 자가격리를 한 이후 한 달 동안 운동을 쉰 것이 고비였는데, 어렵지 않게 나의 작은 목표는 이뤘다.
물론 몸의 구성이 바뀌어서인지 나이에 따른 체형의 변화인지, 여전히 맞지 않는 옷이 있고, 예쁜 몸은 아니지만 첫술에 배부르랴. 욕심내지 말자. 혹시 중간에 운동을 포기할까 싶어 바디프로필 예약을 해뒀는데, 노출 없이 찍는다곤 했지만 날짜가 다가오니 너무 부담스러웠다. 촬영 전 날 먹은 과자 한 봉지의 후회만큼 자신감도 사그라들고, 스튜디오에서 받은 짙은 화장은 어울리지 않아 망했다 싶었는데 소심한 성격 탓에 지워달란 얘기도 못했다. 아직 보정 본은 받기 전이지만 다행히 2-3 컷은 자연스러워 마음에 든다.
다음 주에는 백신 2차 예약이 있어 맞고 나면 다음 달엔 조심스럽게 그룹으로 하는 운동을 찾아 등록해봐야겠다. 다음 목표는 유튜버 밀라논나님처럼 건강하게 변함없는 체형 유지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