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짐, 그리고 그리움
나는 늘 짝사랑에 빠진다. 짝사랑이 아니길 바라며 짝사랑에 빠진다.
한 해 함께 한 어린이들과 헤어지는 건 정말 가슴이 아린 일이다. 솔직하자면, 어린이들과 함께 하는 일 년 동안 이 녀석들이랑 얼른 헤어졌으면 할 때도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주로 학년 초에 그런 생각이 든다. 만나자마자 그런 생각이 들다니 싶겠지만, 이는 나의 초기 적응력이 조금 더딘 때문이다. 내가 머릿속에 그리는 이상적인 학급 환경과 학생들이 그간 익숙하게 지냈던 환경의 차이로 인해 매해 서로 합을 맞춰가야 하는 학년 초 과정이 나에게는 조금 버겁다. 거기다 아직 어린이들 성향 파악도 제대로 안 된 상황이다. 이럴 때 어린이들을 이해하려는 마음보다는 "쟤는 대체, 지금, 저런 행동을 '왜' 할까? 하..." 하는 한숨이 먼저 나온다. 어린이들도 그렇겠지? 아니다, <어린이라는 세계> 추천글에서 김지은 님이 썼던 글과 같을 확률이 더 높은 것 같다. 인상을 찌푸리는 나를 이해하려는 어린이들 눈을 바라보면. 힘들다는 티는 안 내려 하지만, 알고 보면 결국 힘들기에 다그치는 나를 힘껏 이해하고 기다려주는 다정한 어린이, 어른보다 더욱 정중하고 사려 깊고 현명함으로 가득한 어린이들은 힘들어 투정 부리는 나를 있는 힘껏 이해하려고 노력했을 것이 확실하다.
그렇게 학년 초 서로 합을 맞춰가고, 나도 어린이들도 서로의 성향을 어느 정도 파악한 후에는 함께 사랑에 빠진다. (나만의 착각은 아니겠지?) 사랑에 빠진 여느 연인들처럼 좋아서 깔깔깔 즐겁게 웃을 때도 있고,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정말 예뻐서 흐뭇하게 바라볼 때도 있다. 때로는 그럼에도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예의 없는 행동에 버럭하고 화를 낼 때도 있고. 그렇게 함께 사랑에 빠진다. 그게 대개는 4월 중순부터 학년말 방학이 시작되어 헤어질 때까지다. 아! 여름방학이 지나고 온 9월, 다시 서로에게 익숙해져야 하는 9월 2주 동안은 제외하자. 물론 대개의 연인이 그러하듯 그 기간에도 정말 다양한 사건사고는 줄기차게 발생한다.
이렇게 한 해 동안 함께 한 학생들에게 한껏 정든 나는 학년말 헤어지는 인사를 하고 나면 늘 짝사랑에 빠진다. 헤어지는 그 순간부터 보고 싶다. 같은 학교에 있을 때에는 복도를 오가며 반갑게 인사를 나눌 수 있다. 그러나 그 기간 나의 짝사랑은 더욱 애틋해진다. 나는 새로운 어린이들에게 적응해야 하고, 이전 어린이들은 새로운 담임선생님에게 적응해야 한다. 새로운 사람과 환경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 나는 당분간 나의 짝사랑을 숨겨야 한다. 새로운 반 어린이들과 다시 합을 맞추는 중이라 적응이 안 되었을지라도 그 어린이들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나의 애정과 관심은 새로운 어린이들에게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전 어린이들도 새로운 담임 선생님과 하루빨리 익숙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짝사랑하는 마음을 숨겨야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힘든 과정이다.
올해는 새로운 학교로 이동을 했다. 학년말 방학은 1월이었고, 인사이동 발표는 2월에 났다. 작별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왔다. 혹시나 못 볼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한 명 한 명에게 엽서를 쓰고 왔으나 그럼에도 제대로 된 인사는 아니다. 학부모님께 문자라도 남길까 했는데 그것도 어색하여 그만두었다. 그랬더니 이 짝사랑이 더 심해진다. 대개는 4월 중순까지만 가고 마는 편인데(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사랑이 싹텄으니), 7월이 되었는데도 불현듯 생각난다. 못 보니 더 생각난다.
나는 이렇게 매년 짝사랑에 빠진다. 그 짝사랑이 이전 어린이들에게도 있었으면 하는 소망으로 짝사랑에 빠진다.
사족.
이젠 이 짝사랑도 그만하고 싶다. 인생지사 회자정리라지만, 그럼에도 헤어짐은 여전히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