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점은 [맹자]에서 제기된 파격적인 개념으로 역성(易姓)과 방벌(放伐)의 합리화를 위한 논리전개 과정이 제환공과 관중의 대화내용하고 상당히 유사한다는 사실이다. [맹자] 「양혜왕하」의 맹자와 제선왕 간 문답 중 제선왕은 ‘걸왕과 주왕을 방벌’했던 탕왕과 무왕의 무력사용이 ‘신하가 군주를 시해하는’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군주 입장에서 볼 때 왕을 방벌하는 내용이 마뜩치 않았던 모양이다. 이에 대한 맹자의 대답은 냉정하다. 인(仁)을 해치는 자는 남을 해치는 사람이라고 하고 의(義)를 해치는 자는 잔인하게 구는 사람이라고 하기 때문에 남을 해치고 잔인하게 구는 사람을 그저 한 사람(一夫)라고 말할 뿐이며, 남을 해치고 잔인하게 구는 사람인 걸과 주를 죽였다는 말은 들었어도 군주를 시해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도덕적 완성이라는 책무를 태만히 한 군주는 군주가 아니라 잔적(殘賊)이라는 경멸적인 표현을 써가면서 단지 한 사람의 필부에 불과하다는 혁명적인 의미였다. 따라서 일부에 불과한 군주의 교체는 방벌(放伐)로 합리화될 수 있는 혁명성을 지니며, 도덕적·정치적 의무의 이행자로서 유덕자(有德者)를 정당한 통치자로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인식을 표명한 것이었다. 하지만 “걸왕과 주왕이 천하를 잃은 것은 그 백성을 잃었기 때문이며 그 백성을 잃은 것은 그들의 마음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는 맹자의 정치적 의도에 초점을 맞출 경우, 방벌의 혁명성은 군주를 각성시키기 위한 논리의 혁명성일 뿐이다. 정말 혁명을 해야 한다는 선동이 아니다. 맹자는 그런 생각을 가진 자가 아니었다. 명색이 유가의 수호자를 자처한 맹자가 정명의 틀을 벗어나는 혁명을 꿈꾸었다니! 전혀 그렇지 않다. 다만 이렇게 문제를 던져놓고 ‘누구에게 혁명이 실질적인 위협으로 인식될까?’라는 고민을 유도하게 하면 그것은 오롯이 군주에게만 해당된다. 왜냐하면 ‘누가 통치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문제의식은 당시의 현실정치에서 군주 이외에 어느 누구도 대답할 수 없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굳이 맹자의 역성혁명론은 군주의 책무 불이행에 대한 저항이 신민의 합리적 대응이라는 인식을 군주에게 가져다주어 조심시켜준 점에서 혁명적일 뿐이다.
또한 방벌의 혁명성은 책무를 태만히 한 군주에 대한 도덕적 우월성을 지닌 자에 의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문제로 남는 것은 도덕적 완성자로서 삼대의 제왕들이 행사한 물리적 폭력 그 자체이다. 폭력의 사용을 통해 군주의 덕(德)을 실천했다는 것은 자가당착의 위험성을 안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맹자의 논리는 역설적으로 의전(義戰)의 개념을 사용한 폭력사용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이 지점에서 맹자는 “춘추에 실린 것 중에서 의로운 전쟁은 없다”는 단정으로 춘추전국시기 모든 형태의 전쟁에 관해 어떤 것도 정당성을 부여하지 않는 전략을 취한다. 그래야 자신의 시대를 돌파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 바로 ‘정의로운 전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정의로운 전쟁’이란 표현은 전쟁 자체가 이미 불합리한 선택임에도 불구하고 불합리한 선택에도 합리적 선택이 가능하다는 모순을 내포한다.
굳이 ‘정의로운 전쟁’을 언급한 맹자의 진정한 의도와 입장은 무엇일까? 맹자는 “천자는 성토하되 정벌하지 않고 제후는 정벌하되 성토를 하지 못한다”고 전제하면서 의전(義戰)을 도덕적 상위자에 의한 하위자의 처벌과 응징으로 규정한다. 그것은 역성혁명의 정당성과도 일관된다. 즉 하나라 걸왕에 대한 탕왕의 혁명과 은나라 주왕에 대한 문왕과 무왕의 방벌과 역성혁명에서 동반된 무력사용을 의전(義戰)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더욱이 맹자는 “정벌이라는 것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공격하는 것이니 동등한 제후국끼리 서로 정벌해서는 안 되는” 규범성으로 의전론을 합리화한다. 즉 삼왕이 되는 최종적인 혁명의 성공자만이 방벌할 자격을 갖춘 것이라는 점이다. 사후 합리화인 셈이다. 이로부터 맹자는 춘추시대 오패를 그저 다른 나라에서 덜어서 이쪽 나라에 주는 것조차 어진 사람은 하지 않는데 사람을 죽여 가면서 땅을 늘리려고 했던 자라는 경멸의 대상으로 전락시킴으로써 “오패는 삼왕에 대해 죄를 지은 자”로 규정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