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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인이십팔호 Sep 28. 2021

부민(富民)과 부국(富國),
강병(强兵)과 강국(彊國)

좋은 정치가 [관자]의 치도(治道)를 표명한 것이라면, 논리적으로 경세론은 치국(治國)과 치민(治民)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또한 치국과 치민의 방법 역시 치도와 일관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법제와 도덕에 의해 교화되어 자발적으로 구축한 정명의 질서는 현실의 국가와 사회에 반영된다. 그 사례는 제환공이 처음으로 관중을 조우하여 재상으로 등용하는 기사에서 찾아진다. 제환공은 “국가가 날로 펴지지 못하고 달로 신장되지 못했으니 종묘를 소제하지 못하게 되고 사직이 희생을 올리는 제사를 지내지 못하게 될 것을 우려한다. 이를 다스리는데 어찌하는가?”라고 국가보존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는데, 관중의 답변은 “옛날의 성왕이 천하를 다스릴 때 그 국도를 셋으로 나누고 그 교외를 다섯으로 나누어 백성의 거처를 정해주고 백성의 일을 이루어주며 무덤을 종착지로 삼고 그 여섯 가지 근본을 신중히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치국의 방법으로 국가와 사회의 조직화를 지적한 것이기도 하다.


‘국도를 셋으로 나누는 것’(參國)은 무엇일까? 그것은 “국도의 구역조직을 21향으로 만드는데 상공의 향을 6, 사농의 향을 15로 하는 것으로 환공이 11향을 통솔하고 고자가 5향을 통솔하고 국자가 5향을 통솔하는 것”으로 기존 종법질서를 뒷받침했던 씨족적 공동체를 군주를 중심으로 하는 집권적 체제로 편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국도의 교내를 5향으로 나누어 향마다 향사를 두고 향을 5주로 나누어 주장을 두고 주를 10리로 나누어 리마다 이위를 두고 리를 10유로 나누어 유마다 유종을 둔다”는 하향식 조직화이기도 하다. 이로부터 “국도를 셋으로 나누었으므로 3군이 되고 5집을 궤라는 조직으로 만들어 10궤를 1리로, 4리를 1연으로, 10연을 1향으로, 5향을 1수”로 하는 군사 및 사회조직의 편제가 이루어진다. 특히 “그것으로 군대 명령을 관장케 했는데, 5가가 궤가 되므로 다섯 사람이 오가 되어 궤의 장이 지휘하고 10궤가 리가 되므로 50인이 소융이 되어 리의 유사가 지휘하고 4리가 연이 되므로 200인이 졸이 되어 연장이 지휘하고 10연이 향이 되므로 2000인이 여가 되어 향의 양인이 지휘하며 5향이 1수가 되므로 1만인이 되어 5향의 수가 지휘하는” 방식의 조직화(伍鄙)는 “농사일을 시작할 때는 가구를 십과 오로 조직하고 농민에게 농기구를 빌려주는” 생산행위와 “십과 오와 같은 주민조직은 군대의 항렬이 되는” 전쟁동원이라는 농전(農戰)이행을 부담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관자]에서 제시되는 조직화는 국가조직화로서 관제(官制)-사회조직화로서 읍제(邑制)-신민의 생산분화로서 사제(事制)-군사조직화로서 기제(器制)의 논리적 확장을 이룬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십오연좌제가 ‘백성의 거처를 정하기’(定民) 위한 제도적 장치라는 사실이다. “열 집이 십이 되고 다섯 집이 오가 되는데 십과 오 모두 장을 둔다”는 십오제(什伍制)는 “무릇 죄를 저지른 도당이 가속이면 가장을 연좌하고 가장이면 십장과 오장을 연좌하고 십장과 오장이면 유종을 연좌하고 유종이면 이위를 연좌하고 이위면 주장을 연좌하고 주장이면 향사를 연좌하고 향사면 사사를 연좌하는” 연좌(連坐)를 통해 신민을 국가 관리구조로 포섭하는 것이었다. 더욱이 그것은 후대 상앙의 십오연좌제를 통해 중앙집권적 국가지배체제를 위한 대안으로 정착한다. 사실 상앙의 십오연좌제는 민가의 십오제를 군제의 편성으로 그대로 전이시켜서, “군대 내에서 군사들을 다스릴 때에는 다섯 사람을 한 대오로 짜서 연좌시키고 명확한 표시로 그들을 변별하며 명령으로 그들을 구속”하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연좌제의 효과는 내부적으로 “형벌을 엄중히 하고 그 죄를 연대하여 물어야 한다. 그러면 마음이 좁고 성질이 급한 사람도 싸우지 못하며 거칠고 사나우며 기가 센 사람도 말다툼하지 않고 게으른 사람도 빈둥거리지 않으며 재물을 낭비하는 사람도 그 짓을 멈추고 교묘한 말로 아부하거나 마음이 나쁜 사람까지도 교활한 계략을 쓰는 일이 없게”하며, 외부적으로 “도망가면 살 곳이 없고 패해도 살 수가 없도록”하는 것이었다. 한비자 역시 상앙의 변법-가족분이제, 십오연좌제, 군공작위제, 중농억상책-이 사회전반을 개혁함으로써 기존의 반발을 가져왔으나 “효공은 듣지 않고 상군의 법을 그대로 시행했다 … 나라는 잘 다스려지고 군대는 강해졌으며 영토는 넓혀지고 군주의 권위도 높아졌다”고 평가한다.


역설적으로 ‘백성의 거처를 정하는’ 이유는 “조정은 인구를 잘 조사하여 십오로 조직해 세금을 부과하고 이에 응하지 않으면 죄로 다스려 조정의 뜻이 굳건함을 보여준다. 고을마다 교사를 두어 선비의 자제들이 학업을 닦을 수 있도록 해주고 그들의 재능에 따라서 관직에 임명한다. 그런 뒤 일정 기간이 지나고 이들을 다시 등용하면 선비의 자제가 덕행을 닦는 일에 힘쓸 것이다. 덕행을 헤아리고 공적을 심사하여 그 능한 바를 권면하고 대중의 의론을 사려본 뒤 국가의 중임을 맡긴다. 이와 같으면 선비들은 본래의 성실성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규범화의 결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국가조직화를 뒷받침하기 위한 필수적 요건으로서 관료제의 압력을 해소할 수 있는 이공수관(以功受官), 상현사능(尙賢使能)의 공적주의(meritocracy)를 정착시킬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한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백성의 거처를 정하는’ 것은 사민(四民)의 구별에 기초한 명분의 확정이다. 즉 “사농공상 네 부류는 나라의 기둥이 되는 백성이니 이들이 섞여서 살게 하면 안 된다 … 성왕들은 선비는 한가하고 조용한 곳에 거처하게 하고 농민은 밭과 들판에 거처하게 하고 장인들은 반드시 관청에 거처하게 하고 상인들은 반드시 시장에 거처하게 했다”는 치국의 방법은 국가제도에 정착한 신민의 역할분화로 전개되며, 강제와 통제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생존과 안전의 보장에 초점을 맞추는 제도적 장치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사민으로의 명분에 부합하는 ‘백성의 일을 이루는’(成民) 실질은 무엇일까? 우선 “선비들은 조용한 곳에 무리지어 모여 살게 하면 아버지들은 의를 말하고 자식들은 효를 말하고 군주를 섬기는 사람은 경을 말하고 어른들은 자애를 말하고 어린아이들은 제를 말하게 되어 젊어서 익혀서 그 마음에 편안하게 여기니 다른 일을 보고 그것으로 옮겨가지 않는” 의무이행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 “농민들을 농토에 모여 살게 하면 사시를 살피고 때에 맞는 쓰임을 헤아리고 농기구를 갖추어 쟁기 가래 따위를 가지런히 할 것 … 꾸밈이 없고 촌스럽지만 간사하지 않고 뛰어난 재주가 있어 선비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아주 믿을 만하니 경작하면 곡식이 많아지고 벼슬을 하면 현명한 신하가 많이 배출되기에 성왕은 농민을 공경하고 친히 여긴 것”으로 평가한다. 또한 “장인들을 함께 모여 살게 하면 사시를 살피고 강약을 변별하며 용도를 고르게 조절하고 골라서 비교하며 재료를 조화시켜 아침저녁으로 일에 종사하고 사방에 베풀어 그 자제들을 가르쳐 서로 일을 말하게 하며 서로 솜씨를 보이며 서로 성공함을 보이도록 하며 … 상인들을 시장에 모여 함께 살게 하면 사시를 살피고 고을의 재물을 살펴서 시장가격을 알고 짊어지고 안으며 메어서 우차에 싣고 마차에 실어 사방을 두루 돌아다니며 자기가 있는 것으로 없는 것을 바꾸고 싼 것을 사고 비싼 것을 팔도록  하여 서로 이익으로 말을 하며 이윤으로 보이고 서로 보여서 가격을 알게 되면 다른 일을 보고도 옮겨가지 않는다”고 전망한다. 


사실상 ‘백성의 거처를 정하고 일을 이루어주는’ 사민의 분화는 신민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한 조처인 동시에 보상으로 의무이행을 요구하는 내용이다. 동시에 사민에 대한 군주의 태도는 개방적인 것이 아니라 차별적이다. 특히 전통적인 중농억상(重農抑商)의 태도를 요구하는데, 그 이유는 “군주가 본업을 좋아하지 않으면 말업을 제한하지 않는다. 말업을 제한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때에 맞춰 농사짓지 않고 땅의 이로움을 경시한다. 땅의 이로움을 경시하고 들판의 궁벽함을 개간해도 창고가 가득 찰 수 없다 … 상인이 조정에 있으면 재화가 위에만 흘러넘친다. 재화를 사용하는 부인들이 정사를 논하면 상벌이 공정하지 않고 남녀구분이 사라지며 백성이 염치없어진다. 재화가 위에서만 흘러넘치고 상벌이 공정하지 않으며 백성이 염치없으면 백성이 어려움을 감내하고 병사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기를 기대할 수 없다”는 의무불이행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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