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느끼는 거지만 주의를 조금만 흩뜨리면 시간은 훌쩍 가 있다. 강처럼 아무 말 없이 흘러있는 거였다. 그걸 비로소 인지하는 순간의 기분이란. 하필이면 영화를 틀어놓고 잠시간 핸드폰을 열었다가 하이라이트 장면을 놓쳤을 때와 비슷한 심정이다. 순간은 찰나. 사람 일은 양자역학.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거니까.
죽을 때까지 웃고 울며 같이 살아갈 것 같던 사람이 연락조차 주고받지 않는 존재가 되거나. 앙숙의 모양으로 티격태격하다 멀어질 것 같던 사람이 가장 가까운 인연이 되어있는 경우가 있다. 입맛, 좋아하는 향수, 우정과 사랑, 새로운 직장, 물리적으로 멀어진 거주지 등. 나와 누군가의 사이를 잇거나 끊은 원인은 다양했다.
버거움. 별안간 이 세 음절의 무게감 때문에 아련해진 사람이 떠올랐다. 그는 내가 스무 살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친해진 사람이었다. 털털하고, 유쾌하고, 말투는 다소 거칠지만 속은 여렸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랬다. 주위에서 그 애 너무 세 보여서 다가가기가 힘들어, 하면 좋은 사람이야, 라고 했다.
한창 분수에 넘치는 일을 떠맡았을 때, 그는 내게 보고 싶다고 말했다. 언제 시간 괜찮아? 이날은 어때? 저 날은? 나는 선뜻 좋다고 답하지 못했다. 주말이 사라진 생활과 잠깐 남는 시간에 세 시간 거리인 서울을 오가던 시기였다. 본래 신체 하나는 튼튼하다고 자부했던 내가 처음으로 한 달 걸러 한 번씩 앓아본 경험이 생겼던 때. 그의 연락을 보고 답장해야지 해놓고 깜빡하는 경우가 늘었다. 당시의 나는 그라면 이해해줄 거야, 나중에 허심탄회하게 풀어야지, 했다.
이야기의 작법 구조 중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다섯 단계로 나누는 방식이 있다. 이게 현실과도 맞물린다면 그가 내 곁을 떠난다는 마음을 먹은 다음, 내게도 발단부터 절정까지 어느 단계든 특정 신호가 도달해야 했을 거였다. 그러나 현실은 문학과는 영 달랐다. 명절 안부 문자를 보냈을 때, 그가 보낸 답장은 뒤통수를 퍽 세게 때렸다. 너는 내가 너에 대해 어떤 감정인지 모르지? 우리 연락하지 말자. 전개도 위기도 절정도 없는 단호하고 명료한 결말이었다.
그와 요원해진 시간은 어느새 연 단위를 넘었다. 그때 잠시라도 그를 만났다면, 지금도 연락을 하고 있을까. 밖에는 비가 오고 있었다. 저것도 강을 닮았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