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준비를 좋아한다. 일천 자 내외의 짧은 글 하나를 쓰더라도 소재나 인물, 사건 같은 것들을 이리저리 물색한다. 인스턴트커피, 커피 향을 가득 풍기는 컵, 컵을 받치고 있는 테이블, 바탕화면이 띄워진 모니터, 음악이 흘러나오는 블루투스 스피커, 빈 안경 통...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양식>이라고 적힌 파일을 두 번 누른다. 제목과 본문으로 나뉜 페이지가 나온다. 제목의 글자 크기는 본문보다 두 포인트 크고, 그 둘 사이에는 두 줄의 공백이 자리해있다. 줄 간격은 190%로 맞춰져 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준비는 아무리 철저해도 부족하다. 반드시 삐끗한다. 창조주가 그렇게 되도록 설계한 것처럼. 소재도, 인물도, 양식도 모두 갖춰져 있는데 첫 문장을 도무지 쓰질 못하는 날이 꼭 있는 것이다. 기껏 두세 문장 쓰더라도 이내 ‘똥’이라던가 ‘쓰레기’ 같은 단어들이 머릿속을 차지해서 더는 자판을 두드릴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르고 만다. 뜻대로 되는 게 하나 없는 듯이.
수현을 만날 당시의 나도 그랬다. 몇몇 인연들을 겪으면서 단련됐으니, 이제 성숙한 연애를 하게 될 거란 예감을 가졌었다. 날 황무지로 만들었던 이별부터 지금까지, 그간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서 고민하고 제법 진지해졌다고 여긴 거였다. 이번엔 차분히 사랑해보자.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 딱 그 정도로만 해보자. 그런 마음가짐으로 수현을 만났고 사랑에 빠졌다.
복이 많은 사람이라 불렀다. 그녀는 아득한 광야에 백마 타고 온 초인처럼*, 이별에 쑥대밭이 된 내 가슴께에 넉넉한 기분. 그러니까 사랑이라는 감정을 부어 살아있는 기분을 느끼게 해 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건 내가 사랑을 조절할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너무 좋고, 너무 사랑스럽고, 너무 보고 싶고, 너무 그리웠다. 잠시라도 연락이 안 되면 불안해했고, 술에 취한 목소리를 들으면 아무리 괜찮다고 했더라도 수십 통의 전화를 질리도록 했다. 종전엔 혼자 있고 싶다고 한 날에도 그녀가 일하는 곳으로 서프라이즈를 명목 삼아 찾아갔던 적도 있다. 과하지 말자던 다짐을 까맣게 잊은 사람처럼 행동한 거였다. 말할까 말까 고민하듯 달싹이던 그녀의 입술이 여전히 선연하다.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기억이 있다. 그런 걸 떠올리는 날이면, 무언갈 하려고 준비했던 것들이 모조리 무색해지곤 한다. 세상만사, 뜻대로 되는 게 하나 없다.
*<광야>, 이육사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