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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교준 Jul 11. 2022

어느 해 여름, 출구에서

이번 여름을 일괄하여 삶에 대해 감히 누설해보자면 그것은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것이었다. 콱 잡고 있다고 확신했던 순간에 뿌리째 흔들렸으므로. 나는 좌우지간 삶의 무력에 비해 이 한 몸 앞세워 그것을 이끌어보려는 노력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 상기해야 했다. 그렇다고 가만히 당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일사불란해지기 위해 분주했다면 그랬다. 그러나 상기된 것은 발악의 효능감을 곧잘 앗아갔고, 나는 체념으로나마 가까스로 그 뒤를 따라붙을 수 있었다. 또 몰랐던 것을 알게 되려나 보다, 단념하게 되는 식이었다.     


그런 일들은 대체로 사소한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를테면 부모의 그늘에 있을 때는 와닿지 않았던 제철 과일의 가격표라던가 청춘을 관통했던 전 연인의 소식, 직접 수확한 감자로 만든 음식이 빈 그릇들 사이에 놓여있는 모습, 입금된 지 한 시간 만에 비워진 잔고 같은 거. 무슨 연유에서든지 한때 별것 아닌 것으로 여겼던 것들. 가만 보면 별것이 아니었던 것이 별것이 되었던 경우가, 그것으로 인해 밤을 잃거나 애써 잡아놓은 질서가 무너졌던 경우가 제법 된다.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선택 앞에서 대다수는 자신에게 편안한 길을 택하며 그것은 비난받을 일이 못 된다. 그러나 세상에는 아주 드물게도 고통이 더 많은 쪽으로 가는 이상한 사람들이 있다.”*      


나는 언제부턴가 남들이 가난이라고 부르는 것에 밀접해지기 위해 몇몇 일을 실천하고 있었는데 응원해주던 이들마저 그런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남몰래 체감하고도 있었다. 안타까움과 동시에 이해하지 못하는 심정이 담긴, 마주 보기 힘들 정도의 동정 어린 눈빛. 나이 차가 제법 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죄책감마저 들었다. 그래선가. 최근에는 그들이 훈계하는 방향으로 걸어갈 방법을 나름 강구해보기도 하였다. 공부할만한 자격증을 찾고, 가진 것을 훑고, 무엇이 미흡했는지 지난 몇 계절을 톺아보고.   

   

그동안 무얼 했나. 자문하는 날이 늘수록 고개는 추락했다. 이런 삶을 추구하게 된 계기를 물었던 선배의 우려를 곱씹은 날도 있었다. 선택하거나 포기하는 장면을 떠올려보기도 했고. 포기했던 것을 움켜잡았을 때 발생했을 일들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그러다 읽게 된 것이 요주의 문장이었다. 고통이 더 많은 쪽으로 가는 이상한 사람들이 있다. 그가 살아온 삶이 오늘의 그를 믿게 한다.* 언젠가 쳐놓은 밑줄 위에 당당히 서 있는 낱말들. 삽시에 나는 잔인했던 여름을 겸손이 찾아오는 방식으로 이해하게 되었고, 다시금 생각했다.     

 

나는 무얼 배웠나. 어떤 문장은 조금 낯선 관점으로 뒤를 돌아보게 만든다. 비로소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기로 한다. 목에 힘을 빼고 한바탕 격정을 거치게 만든 별것들을 떠올린다. 이번 여름은 온통 휘둘렸던 것 같다. 삶의 전면을 장식하는 것을 가늠해본다. 왜인지 시작과 끝이 사소하다. 또 몰랐던 것을 배우려나 보다, 나는 발음한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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