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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ozu Mar 16. 2019

[Space] 국립현대미술관의 마당은 채워지길 기다린다

국립현대미술관과 광장의 역할

 

   건축은 도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63빌딩은 여의도라는 서울의 중심지에서 아름다운 마천루를 형성하고 있지만, 63빌딩을 제주도 한라산 옆에 갖다 둔다면 더 이상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건축물을 지을 때 주변 건물은 몇 층인지, 이곳을 이용할 사람들은 어떤 목적으로 들르는지, 주변 마을에 부족한 것은 무엇인지 등 건축물이 지어질 곳의 환경에 대해 잘 살펴보아야 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조감도 ⓒ 엠피아트 건축사사무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하 MMCA)은 그 주변 환경을 살펴볼 때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잘 알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재의 국립현대미술관은 6개의 마당을 컨셉으로 지어진 미술관이다. 그렇다면 왜 미술관에 마당이 중심이 되어야 했을까? MMCA의 주변을 잠시 살펴보자면 바로 오른쪽으로는 경복궁이 있으며 왼쪽으로는 북촌을 두고 있다. 그리고 경복궁 앞으로는 광화문광장 그리고 더 밑으로 청계광장을 지나면 덕수궁과 서울시청, 시청 앞 광장이 위치해 있다. 경복궁 일대의 이곳은 서울의 유명한 광장이란 광장은 다 모여 있는 곳이다.     


'얀겔의 위대한 실험'의 한 장면, 당신은 어느 길을 걷고 싶습니까?


 국립현대미술관의 마당이란 공간에 대해서 이야기하기에 앞서 광장이라는 공간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광장이란 공간은 현대 도시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사람들이 건물 사이를 다니며 형성된 길이 도시의 핏줄과 같은 역할이라면, 사람들이 모여서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인 광장은 도시의 허파와 같은 곳이라 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에도 아고라(agora)라고 불리는 광장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토론을 하며 민주주의의 새싹이 텄으며, 중세시대에도 시장이 열리거나 축제가 열릴 때 사람들이 광장을 찾아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덴마크의 건축가이자 도시설계자인 얀 겔(Jan Gehl)은 도시에서 차도가 줄고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광장이 늘어날수록 사람들의 활동이 늘어나며 도시에 활력이 생긴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많은 도시연구가들은 서울의 광장은 좋지 않은 환경이라고 한다. 광장하면 가장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광화문 광장은 사면이 차도에 둘러싸여 있어서 사람들의 접근성이 떨어지며, 그나마 집회나 월드컵 경기가 있을 때 사람들이 모이는 시청 앞 광장 역시 평소는 거의 공터로 남아있다.     


평소에는 공터로 남아있는 서울시청 광장


 그렇다면 왜 서울의 시민들은 광장을 평소에 활용하지 않을까? 유럽의 이름난 광장들을 보면 좁은 길들을 지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광장으로 향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서울의 대표적인 광장들은 사람들이 자연스레 모일 수 있는 골목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됐다기보다는 건물이 들어서기에 부적합한 공간을 공터로 남겨두고 광장이라 이름 붙여둔 경우가 더 많다. 조선시대의 광장이라 할 수 있는 장터나 마당이 사람들이 모여 물건을 사고팔고 공연이 열리고 잔치가 벌어지는 활기찬 공간이었으나 현대의 광장은 어떠한 역할도 주어지지 않아 그저 비어있는 공간이 되고 말았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전경 ⓒ MMCA


 이런 상황에서 MMCA가 새로 지어질 때 마당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지어진 것은 반가운 일이다. 단순히 비어있는 곳이 아니라 미술관이라는 문화가 교류하는 공간이라는 뚜렷한 목적을 두고 만들어진 마당이기에 북촌과 경복궁 근처에 들렸던 사람들도 자연스레 발길을 미술관으로 돌릴 수 있게 되었다. MMCA 역시 마당이라 이름 붙인 장소를 그냥 두기보다는 매해 여름마다 젊은 건축가 프로젝트(Young Architects Program, 이하 YAP)를 마당에서 전시하고 있다. YAP는 뉴욕현대미술관과 로마국립미술관 등 전세계에 다른 파트너 미술관들을 두고 진행이 되는데, 젊은 건축가들에게 실물 구현의 기회를 주면서도 사람들에게 건축과 예술이라는 개념에 대해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 많은 건축가들이 마당의 역할과 자신의 설치물이 마당을 점유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하고 미술관을 찾은 이들이 어떻게 파빌리온을 즐길지 고민하며 작품을 만들어나간다.     


신선놀음 ⓒ 현대카드 컬쳐프로젝트

 2014년에 처음 이 프로그램이 시작되었을 때 ‘신선놀음’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당시 미술관을 방문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구름 형상의 풍선들 사이로 구름다리가 설치되어서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었으며 사이사이에 설치된 트램펄린에서는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놀고 있었다. 중간 중간에 안개를 표현하듯이 미스트가 뿜어져 나와 더운 여름날을 쾌적하게 만들어주었고 구름 형상의 풍선들 밑으로 시원한 그늘이 형성되어 마당에 유독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의 마당은 즐겁고 편안한 공간이 되어 사람들을 미술관으로 초대하고 있었다.     


텅 빈 마당에 다시 봄이 오길 기다린다


 최근에 다시 찾은 겨울의 MMCA는 그 당시에 비해 쓸쓸해보였다. 춥고 미세먼지가 가득한 날씨 때문에 경복궁과 북촌 일대도 쥐죽은 듯 조용했으며, 미술관의 마당 역시 텅 비어있는 채로 방문객을 맞이했다. 미술관 내부 역시 전시 준비로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국립현대미술관이 계절에 상관없이 여러 가지 이벤트를 열었으면 어땠을까 싶은 마음에 씁쓸했다. 곧 봄이 오고 사람들이 다시 거리로 나올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마당에도 다시 사람들이 붐비고 활기가 찾아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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