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을 색으로 보여준다면 무슨 색일까
음악은 청자의 마음을 움직이기 쉽다. 듣는 순간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지 확실하다. 그림은 형태가 섞여 이성이 가미된다. 해석을 하려는 순간 감동은 멀어진다. 로스코는 관람자의 심장을 움직이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 그의 그림은 수단과 형상을 넘어 직관이 된다. “나는 단지 기본적인 감정들, 비극, 황홀, 숙명을 표현하는 데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 그의 색은 음악처럼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림을 응시하고 있으면 관람자는 그 색이 된다. 로스코는 언제나 그림은 기적을 이뤄야 한다고 믿었다. 그 기적이란 그림이 살아 숨쉬어 관람자와 소통하고 관람자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에너지를 가져 영원히 살아있는 것이다. 그는 사회를 바꿀 수 없는 그림은 죽은 것이라 생각했다. 로스코에게 물감은 단지 10프로이다. 그림을 완성하는 것은 기다림이다.
로스코는 굉장히 순수한 예술가였다. 그는 그의 그림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그림을 넘기려 하지 않았다.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쏟아 부은 하나 하나의 작품은 그의 분신이었다. 동시에 그는 내면적이고 우울한 사람이었다. 로스코에게 빨강은 생이자 검정은 죽음이다. 말년으로 갈수록 그의 그림은 점점 검정에 가까워졌다. 그에게는 비극적 경험만이 예술의 유일한 원천이었다. 그는 죽음만이 인간으로 하여금 허물을 벗어 던지고 자신만을 바라보게 만들 수 있는 수단이라 믿었다. 그는 그만큼 자주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그의 외로움, 쓸쓸함은 관람자의 마음 속 생채기를 어루만져준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왠지 모를 먹먹함에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죽음에 대한 진지한 몰입은 새로운 에너지와 위로, 치유 등을 경험하게 한다. 그의 색은 단순한 시각적 성격을 넘어 종교적인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의 순수성은 맨하튼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자신의 그림을 회수하는 것으로 자본주의에 의해 파괴되고 말았다. 어두운 색들을 줄곧 사용해오던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그림은 새빨갛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 기력을 퍼부은 듯이 생을 뜻하는 붉은색으로 캔버스를 가득 물들이고는 자살했다.
마크 로스코, 그는 생전에 성공한 예술가들 중 독특한 행보를 걸었다. 그는 누구보다 음악을 사랑하고 자신의 그림에 담으려 했다. 또 시인보다도 더 순수하게 이상을 열망했다. 그렇기에 그의 삶은 비극적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은 지금까지 남아 그의 열망, 이상, 감정들을 대변해주고 있다. 그의 작품을 바라보는 동안 우리는 로스코가 그림을 그리던 그 순간과 동화된다. 로스코는 그림으로 남아 영원히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