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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자로사 Sep 22. 2023

순수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간

당신의 순수함을 찾아가보세요.

나는 6살이다. 유원지 아래 자리 잡은 마을에 살고 있다. 우리 동네는 산 아래 경사로에 있다. 봄이면 개나리, 벚꽃, 아까시나무의 꽃들이 피어서 마을은 향기로 가득 찬다. 여름이면 짙은 녹음과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에 평화롭고 동네 아줌마들은 소일거리라며 고무대야에 마늘을 가득 담아 까고 계신다. 가을이면 시간의 흐름을 알리듯 낙엽이 지고 바스락 거리는 소리로 귓가가 즐겁다. 겨울이면 하얗게 내린 눈을 장난감 삼아 썰매를 타며 웃음이 가득한 시간을 보낸다.




나는 41살이다. 어릴 적 향수에 살던 동네로 무작정 차를 돌렸다. 활기를 잃은 잿빛 역전앞, 지금은 꽤나 낡은 건물들. 기억을 더듬어 쭉 길을 따라 올라간다. 평지의 모습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지만 사라졌을 줄 알았던 이름만 들어도 반가운 공원슈퍼는 그대로다. 그리고 고개를 들고 내가 살았던 집을 바라본다. 그땐 몰랐다. 내가 저렇게 산아래 동네에 살았었는지. 산비탈 경사로를 깎아 집들을 차곡차곡 올린 동네에 내가 살았었구나.


한 걸음씩 발을 내디뎌 좁은 골목을 따라 올라갔다.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이곳에 살았던 부모님의 삶이 팍팍했겠구나 짐작이 간다. 그땐 이 길도 즐거움이 가득한 길이었는데. 내가 살던 집에 올라 내려다보는 풍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내가 바라보는 마을의 느낌과 기억은 예전과 많이 달랐다.




부족한 집안 살림에 조금이라도 보태보겠다며 고무대야 물에 가득 잠긴 마늘을 까는 엄마들. 하루 종일 물에 담긴 손은 퉁퉁 부르트고, 매운 마늘 껍질을 계속 벗기느라 손이 쓰라리고 아프다. 그래도 힘듦을 잊으려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하며 연신 웃어댄다. 이뿐이랴 5월 5일 어린이날, 유원지 아래 자리 잡은 이 동네에서는 연휴대목을 챙기기 위해 새벽같이 연안부두에 가서 바다고동을 사 와 펜치로 고동 끝을 자르고 몇 차례나 삶아낸다. 더운 여름에 음료수도 시원하게 담아낸다. 짐을 이고 지고 유원지 길목에 앉아 새벽부터 준비한 음식을 분주히 판다. 내 새끼는 내 등 뒤 돗자리에 앉아 5월 5일 어린이날도 즐기지 못하는 쓰라린 마음 움켜잡고 말이다.


6살의 티 없이 순수한 시절엔 산 아래 마을에 살아도, 어린이날 유원지 길목에서 나들이 대신 부모님이 등 뒤에 펴준 돗자리 위에 앉아있어도 난 가난을 알지 못했다. 높은 곳에 살아서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붉은빛 노을을 눈에 가득 담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달콤한 아까시나무 하얀 포도송이 같은 꽃 냄새를 맡는 봄이 좋았다. 유원지 아래 사니 푸르른 온 숲이 놀 곳이라 좋았다. 엄마들이 모여 다 같이 일을 하니 또래끼리 정신없이 놀 수 있어서 좋았다. 난 온 세상이 주는 풍요를 누리며 사는 산 아래 마을이 좋았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모르던 나의 6살이 가장 순결하게 행복했다. 돈, 명예, 지위,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던 우리 가족이지만, 존재 그 자체로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지냈던 그 하루가 가장 풍요로운 삶이었다.

세상의 잣대를 모르던 그 시절을 되돌아보면, 더 많은 것을 갖고 더 높은 곳에 올라야만 행복하다는 게 아니란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비교와 경쟁으로 치열한 세상을 살다 보니 자신이 누구인지 잃어버리고, 많은 것을 원하고 때론 갖지 못한 좌절감에 휩싸여 부정적인 시선으로 자신의 삶을 재단하고 있는 것 같다. 이기심과 물질주의가 개개인이 가진 행복의 다양한 색상을 부정하고 사람들은 자신만이 가진 풍요를 모른 채로 정처 없이 빈 껍데기 행복을 찾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특히 신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준 소중한 생명, 건강, 가족, 자연이 주는 행복을 당연시 생각하고 너무나 쉽게 잊는다. 대부분 그렇듯 일상의 평온은 잃어봐야 당연한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잃고 난 뒤에는 늦어버릴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 눈을 감고 나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삶에 감사해야 한다. 건강하게 가족들과 출근을 하고 무탈하게 퇴근을 해서 오손도손 저녁을 먹는 식사자리에 감사함을 느껴야 한다. 미세먼지 없이 쾌창한 하늘에 아름다운 자연을 온전히 느낄 수 있음에 행복해야 한다.



순수했던 당신의 그때를 기억해 보자.

녹음 짙은 나무들, 푸르른 하늘, 뺨에 살랑이는 바람결을 느끼면 자연은 당신을 어느새 그때 그 시절로 데려가 삶이란 그 자체로 아름답고 소중한 거라고 이야기해 줄 것이다.

그리고 살면서 꼭 잊지 않길 바란다.

이미 그대 많은 것을 가진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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