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부자로사 Oct 04. 2023

왕따, 돌고 도는 순서

내가 쏜 모든 화살은 내게 다시 되돌아온다.

올해 방영된 드라마 중에 가장 인기 있었던 드라마는 아마 송혜교가 출연한 '더 글로리' 일 것이다. 학교폭력을 주제로 피해자인 문동은(송혜교 役)이 가해자들에게 복수를 하는 내용으로 전개가 된다.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만큼 학교폭력을 사회적 이슈로 만들었고 학교폭력 가해자들이 속속 밀고되기도 했다. 이 드라마를 보며 기억 속에 묵혀둔 나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도 중학교 1학년때 학교폭력의 하나인 왕따를 경험했다. 긴 시간 지속되진 않았지만 왕따를 당하는 그 2주의 시간이 나에겐 지옥 같았던 시간으로 기억된다. 여기서, 누군가는 나에게 왕따를 당했다면 중요한 학창 시절에 너무나 맘 아프고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어렴풋이 기억나는 듯 말할 수 있냐고 내게 물을 수도 있겠다. 실제 가슴 아팠던 기억이라 '기억난다'라는 표현이 맞을 수도 있겠지만 난 오래전에 내가 왕따였던 시간을 극복했고 이제는 내 인생의 한 매듭이기에 '기억된다.'라고 말한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설레는 마음을 안고 여중에 갔다. 여러 동네에서 모인 아이들이 한 반이 되어 입학 후 얼마되지 않아 끼리끼리 무리를 지었다. 유유상종(類類相從) 이랬던가? 지금 생각해 보면 참 희한하다. 내가 함께 어울리게 된 친구들은 5명이었는데 한 명을 제외하고는 가정이 온전치 않았다. 형편이 좋지 못하거나 가정사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리고 알려주지도 않은 인간의 동물 본성을 다들 스스로 일깨웠는 듯 5명 안에서도 나름 서열 같은 인기의 순위가 있었다. 아무도 나에게 '넌 우리 중에 중간이야'라고 말한 적도 없지만 자처하듯 우리 중에서 중간에 위치했다.




어느 날이었다. A라는 친구가 B라는 친구의 무엇이 맘에 들지 않는다며 투덜거리고 이내 5명이었던 우리의 숫자를 이용해 짝을 만들고 B를 소외시켰다. 좋은 말로 표현해서 소외였지. 정확히 왕따였다. 더 글로에서처럼 폭력을 행사하는 일은 없었지만 B를 따돌리고 배척했다. 나는 왕따가 나쁜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고픈 마음에 B친구에게 상처를 줄 때 방관하거나 아무 이유 없이 B를 험담했다. 몇 주가 지나고 A와 B는 화해를 하고 다시 함께 어울렸다. 그리고 이번엔 C가 혼자가 됐다. 이번에도 난 C에게 다가가지 않고 무리 속에서 방관자가 되었다.



시간이 흘러 이번엔 내가 소외당할 차례가 왔다. B와 C가 그랬듯 어울리던 무리에서 벗어나 혼자가 됐다. 같은 반에 다른 친구들도 많고 함께 놀자며 손을 내밀어 주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난 혼자 있기를 택했다. 왕따가 된 그 시간에 난 책을 읽었다. 친구들의 시선도 동정도 싫었다. 그저 이 시간을 어떻게 빠르게 흘려보낼지... 이것만이 내가 학교 등교한 이후의 과제였다. 중학생 소녀의 마음에 생채기가 나고 그걸 또 누군가 수군대는 것들이 너무 듣기 싫어 두 귀를 막고 오직 책만 보았다. 아마 이때 독서의 재미를 알게 된 듯하다.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에 익숙해질 즈음 나를 왕따 시켰던 무리의 친구들과 다시 어울리게 됐다. 그리고 이내 나머지 친구들도 A와 C와 나처럼 왕따의 시간을 보냈다. 결국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왕따라는 폭력을 가했고 스스로 피해자가 되었다.




인간이라는 무리 속에선 어느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 아니 안전할 수 있음에도 다른 사람을 짓밟고서라도 나의 생존게이지를 높이겠다는 욕심에 눈이 멀어 공동체가 주는 안전함이란 울타리를 과감히 부숴버리고 만다.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유인원이라 자랑하면서 막상 현실에선 상처 주고 배신하고 방관하며 결국에는 자신까지도 파괴한다.



왕따의 피해자가 되고 가해자였던 시간을 통해서 나는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건 정확히 내가 준 만큼 부메랑처럼 돌아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타인에게 상처를 가하는 이유도 타인의 문제보다는 오히려 나의 문제와 이기심을 타인에게 투영한 결과로 나를 미워하는 것임을 알았다. 그래서 나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고 그때 그 가슴 아팠던 중학생 소녀의 시간을 통해 나를 처절하게 반성하고 용서할 수 있었다.




경찰이 되고 나서 많은 범죄자들을 만난다. 학교폭력뿐만이 아니라 각종 폭력 사건을 마주한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 시기하는 마음으로 저지른 행동이 타인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상처가 됨과 동시에 자신에게 얼마나 해악이 되는지 똑똑히 보아왔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정해진다. 결국 이 모든 게 자업자득이다. 내가 활시위를 당긴 화살은 정확히 나에게 돌아온다.


함께 살아가고 있는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미워하지 말자. 나 자신을 미워하지 말자. 오히려 사랑으로 감싸주고 서로에게 격려해 주자. 그 사랑과 격려가 내게 돌아와 닿을 테니.



Unsplash의Jean-Louis Paulin
작가의 이전글 마음의 불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