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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남진 크리에이터 Oct 21. 2019

<나이트 플라이어>성공적인 한국 SF영화를 위한 응원


성공적인 한국 SF영화를 위한 응원 

-조지 R.R. 마틴의 <나이트 플라이어>를 타산지석 삼아     

이 책은 SF북 클럽에서 지난 주에 함께 읽었다. SF 소설과 SF 영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트위터를 통해서 모였던 이 북클럽은 지난 필리버스터 정국 당시 서기호 의원이 소개했던 <리틀 브라더>를 첫 번째 책으로 읽었던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덕분에 창립일에 대한 비교적 자세한 근거를 가지게 되었다. 이제 사년째를 향해 가고 있는 이 북 클럽에서는 각 멤버들이 추천하는 책들을 거의 무작위로, SF이기만 하다면 읽어왔고 <나이트 플라이어> 역시 그러한 추천과정을 거쳤다.     

미드 <왕좌의 게임>의 원작인 <얼음과 불의 노래>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소설가인 조지 R.R. 마틴은 이런 판타지 외에도 상당수의 SF 작품을 썼다. <나이트 플라이어 1980년>는 그의 미래 역사 시리즈인 ‘천개의 역사’에 속하는 작품으로 로커스 상과 세이운 상을 받았다.     

<나이트 플라이어>는 SF 팬들이라면 가슴이 설레이지 않을 수 없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미 인류는 우주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해왔고 영토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외계족과 기나긴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아마도 천년 이상 동안. 

전쟁은 문명을 급속하게 발전시키기도 하고 몰락시키기도 하는 것은 우주든 지구상이든 마찬가지여서 식민 행성 중에는 다수의 고도의 발단된 문명이 한순간에 몰락하여 중세로 되돌아가기도 했고 개중에는 높은 기술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경우도 있어 새로운 우주 모험에 뛰어들기도 하는 복잡한 시대이다.     

이 소설은 ‘볼크린’이라는 신화적인 외계 종족의 흔적을 쫓아 ‘나이트 플라이어’라는 최첨단 우주비행선에 탑승한 탐사팀이 우주선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겪는 미스테리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탐사팀의 대장은 필생의 임무를 ‘볼크린’이라는 미지의 외계종족을 만나는 것에 두고 있다. 볼크린은 자신들의 우주선을 타고 정해진 항로를 따라 묵묵히 비행하고 있는 신화적인 존재로 알려져 있을 뿐, 누구도 그 정체를 모른다. 이미 수 천 년은 앞서 출발한 볼크린의 우주선을 따라 잡을 수 있는 건 나이트 플라이어호가 초광속으로 비행하는 물체이기 때문이다.     

상상해보시라. 막막한 어둠의 대해와 같은 우주 공간에 신비에 쌓인 볼크린의 우주선이 묵묵히 그리고 천천히 이동하고 있다. 그 뒤를 천년이라는 시간을 뒤쳐진 존재가 초광속으로 쫓고 있다. 언젠가는 이 신비한 존재와 조우할 날을 기대하며.... 게다가 때는 마치 대항해 시대를 연상케 하는 우주의 천년전쟁의 시대이다. 천년 전쟁이라는 전제가 보여주듯이 인류는 또다시 어리석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었던 것 같지만 대항해 시대에 그러했듯이 인류는 또 다시 용감하게 미지의 세계를 향해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 부분은 그제 아름다운 전제일 뿐 이야기의 중심은 아니다. 그저 먼 곳에서 이 플롯에 약간의 별가루를 뿌려 은은한 광채를 주고 있을 뿐이다. 

플롯의 대부분은 우주선이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그다지 협조적인 성격이 아닌 탐사팀들과 정체를 알 수 없고 홀로그램으로만 등장하는 선장이 겪는 미스테리한 사건들로써 결국에는 유혈이 낭자하는 살상극으로 마무리된다. SF호러의 시금석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출간 당시 화제를 모았었다. 하지만 아름다운 우주 대항해 시대의 분위기에 매혹되었던 나로서는 볼크린의 정체를 아주 살짝 알려주는 엔딩에 실망하고 말았다. 넷플릭스에서 현재 스트리밍 중인 드라마 버전은 플롯 전체를 더욱 더 호러로 당겨 와서 소설이 가지고 있었던 우주 대서사의 맛은 상당히 감소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나이트 플라어어>를 성공적인 한국 SF를 위한 응원 메시지의 도구로 쓰려고 하는가? 

이 작품은 넷플릭스 버전의 드라마로 만들어지기 이전에 이미 망작이긴 해도 영화화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조지 R.R. 마틴이 뭔가 영상화를 염두에 둔 듯이 작품을 끌고 나가고 있다는 인상을 받기 쉽다. 우주선이라는 밀실, 그리고 그 안에서 갈등을 빚을 개연성이 충분한 등장인물, 그리고 정해져 있는 항로(볼크린을 만나면 여행은 끝이 난다).     

그 당시 우주를 배경으로 이 정도로 컴팩트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특히 1980년이라는 발표년도를 본다면. 그런 장점이 할리우드의 제작자를 쉽게 유혹했을 것이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다고 해도 이런 식의 이야기 전개는 우선 버젯 컨트롤이 가능하고, 배우들도 납득가능한 캐릭터를 담고 있다. 우주라는 대책 없이 광활하여 이미 수많은 SF 영화의 제작과정이 보여주듯이 비용이 많이 들고 난이도가 높은 소재를 이렇게 한번 소화해보고 싶은 욕심이 들 법하다. 영화버전은 원작으로부터 너무 많이 벗어나서 작가 자신도 불만이었다고 하며 넷플릿스 버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만족감을 표했다고 전해진다.     

한국 SF 영화는 <나이트 플라이어>를 통해 무엇을 배울 것인가? 일단 이런 정도의 얘기는 우리도 해볼만하다는 용기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위에서 언급한 영화화하기 위한 장점은 한국의 프로듀서들에게도 똑같이 흥미롭게 다가올 것이다. 우주선의 내부 세트를 멋지게 만들고 아직 경험은 좀 부족하지만 나이트 플라이어 호의 외관, 미캐닉 디자인을 그럴듯하게 해낸다면 해볼 만하다. 가장 골치 아픈 중력의 문제 중력발생기를 발명한 미래의 일이라고 치면 배우들이 우주선 안에서 둥둥 떠다녀야 해서 버젯을 몇 배로 크게 만들 문제도 해결된다. 나머지는? 그저 밀실 트릭일 뿐인 플롯이다. 한국 영화계에서도 꽤 자주 다뤘던 문제이니 꼼꼼한 전개와 호러의 장점을 살린다면 꽤 좋은 기획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SF를 밥 먹듯이 보고 자라서, 아니 우유병을 물고 있던 시절부터 SF 코믹스와 애니메이션, 영화로 키워진 영미권의 독자들과 달리 한국 관객에게 SF는 아직도 어린 장르라는 근본적인 지적은 뺀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SF 호러라는 변주가 어떻게 먹힐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얘긴 뺀다고 치자. 한국 영화계가 그동안에 이룬 많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SF나 판타지 영화 제작을 위한 기술력은 아직 시작도 못해본 정도라는 뼈아픈 점도 눈을 감아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SF는 SF다. SF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은 이 점에 대해 각자 자기만의 답이 있어야 한다. 우주선 안에 갇혀있든, 외딴 섬의 버려진 집이든, 아니면 내릴 수 없는 비행기 안이든 공포를 극대화하기 위한 배경은 여러 가지가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볼크린이라는 외계 생명체를 쫓는 우주 대항해 시대의 모험가들이라는 설명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 이야기는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왜 꼭 나이트 플라이어 호에서 이 사건이 일어나야 하는가? 에 대한 대답이 있어야 한다. 현재 한국 영화계에서 기획되고 있는 수많은 SF 프로젝트들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다. 그리고 나면 기술력에 대해 방책이 있어야 할 것이다. SF를 SF로, 판타지를 판타지로 납득시키는 것은 관객의 상상력을 압도하는 영화의 디자인, 기술력이다. 관객이 그 작품을 얕보는 순간, 망하는 것이 이 두 장르이다. 한국의 SF 영화 프로젝트들이 각자 자신만의 답을 찾고 있길 바라며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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