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남진 크리에이터 Mar 05. 2019

켄 리우의 <종이동물원>

SF로 만나는 고색창연한 중국 & 중국인

 

공교롭게도 최근 미국 SF 비평계와 독자들 사이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두 작가가 모두 중국계 미국인이다. <당신 인생의 이여기>의 작가, 테드 창과 <종이 동물원>의 켄 리우. 켄 리우는 명성에 비하여 뒤늦게 한국 독자들은 만났다. 이 두 작가의 작품은 SF를 만나고 해석해낸 색깔이나 지점은 다르지만 자기 안의 본질을 SF의 지도 어딘가에서 만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데가 있다. 그들의 SF 안에는 중국이 있다. 긴 역사와 넓은 땅, 어느 지점 어느 시대의 냄새를 가지고 있는지는 다를지라도.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서는 소설만 놓고 보았을 때 작가가 중국계라는 것을 쉽게 눈치 채지 못할지도 모른다. 최근 SF 영화의 콘셉트 디자인 중 가장 독창적이었다고 할 수 있는 헵타포드의 문자가 캘리그래피를 닮았다는 것, 또 외계인의 형상이 지구상의 생물 중 가장 비슷한 것이 문어(文魚)라는 것 정도. 

그에 비해 <종이동물원>은 중국인의 SF임이 분명하다. 더 구체적으로는 미국에 이민 온 단절된 중국인의 SF이다. 그 점에서 다른 SF와는 완전히 구별되는 정서를 지니고 있다. 카달로그 신부로 미국에 온 엄마는 영어를 그다지 잘 하지 못하고 오로지 아들만이 그녀와 중국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혈육이다. 어린 시절의 아들은 엄마가 만들어준 종이 접기의 호랑이, 상어 같은 동물들과 온갖 신비한 모험을 하며 자라나지만 미국인 동급생이 가지고 노는 플라스틱 오비완 모형을 보는 순간, 싸늘한 현실로 입성한다. 아들은 더 이상은 중국어로 엄마와 말하지 않고 엄마에게 영어를 배우라고 한다. 아빠에게는 스타워즈 장난감을 사달라고 한다. 

아들은 자라서 코네티컷의 집을 떠나 캘리포니아의 대학에 진학한다. 그 사이 엄마의 병은 깊어지고 병문안을 왔다가 아들이 바쁜 학사일정 때문에 비행기를 타고 돌아가는 사이 엄마는 세상을 떠난다. 엄마가 죽은 후, 유품 상자에 담겨 아들에게 돌아온 종이접기의 동물들은 아들의 여친 손에 의해 꺼내져서 장식장 위에 세워진다. 덕지덕지 기운 종이 호랑이, 라오후의 속지에는 엄마가 자신의 병세를 알고 난 후 써놓은 유언 같은 글이 적혀있지만 아들은 중국어를 읽지 못한다. 

관광객이 많이 다니는 길로 나가 중국인 관광객에게 편지를 읽어달라고 부탁하는 아들. 그 안에는 왜 카달로그 신부가 되어 미국으로 와야 했는지, 죽은 사람들을 위한 날인 청명절에 미국인 남편과 아들을 위해 식탁을 차리면서 이 풍성한 음식을 중국에서 기근으로 죽은 부모에게 한 번이라도 차려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는 것, 아들이 태어난 후, 처음으로 중국어로 아들과 말을 주고받을 때의 기쁨 같은 것이 적혀있었다. 캘리포니아의 태양 아래에서 관광객들이 북적이는 벤치, 테입으로 때운 자국이 분명한 너덜너덜한 종이, 한때는 라오후라는 호랑이였던 종이의 뒷면을 읽어주는 소리를 들으며 눈물을 펑펑 쏟아내는 아시안 혼혈 청년은 관광객에게 종이에 사랑이라는 중국어, 아이(愛)를 써달라고 한다. 그리곤 다시 으르렁거리는 호랑이로 돌아온 라오후와 함께 집으로 돌아간다. 

단편집 <종이 동물원> 안에 수록된 또 하나의 단편, ‘즐거운 사냥을 하길’은 요괴의 시대가 가버린 후 능력을 상실한 요괴와 직업을 잃어버린 요괴 사냥꾼의 기묘한 우정을 다루고 있다. 표제작 ‘종이동물원’이 60년대 대기근 시절의 중국 본토의 냄새를 미국 SF에 담았다면 ‘즐거운 사냥하길’은 영국 조차지 시절의 홍콩을 연상케한다. 어떤 면에서는 SF라기 보단 판타지에 가깝다고 할 수도 있지만 작가가 말했듯이 그런 구별은 무의미하다. 다만 SF가 망망한 우주 속 고아 같은 지구의 운명과 미래에 대한 궁금증이 하나의 출발점이었다고 한다면, 카달로그 신부로 미국에 온 엄마나 자기 시대를 상실한 요괴와 요괴 사냥꾼의 소외와 고독의 정서는 충분하고도 남을 울림을 준다. 

중국계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이 이런 이질적이면서도 납득 가능한 조합을 만들어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역사, 한국인을 이 작품 정도의 거리감으로 해석해내는 SF를 만날 날을 기대한다. 그 안에서 문혁 못지않은 정신개조의 압박을 겪은 유신 시대와 동북아 국가 중 유일하게 시민의 손으로 민주주의를 지키고 진척시키느라 입은 상처와 성취, 그리고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공백으로 존재했던 한반도 북쪽이 느닷없이 사람이 살고 있는 땅으로 불쑥 존재 증명을 하는 이 시대를 어떻게 겪어내는지에 대한 증언자로 SF보다 더 나은 그릇이 있을지 나는 알지 못한다.  

작가의 이전글 <컨택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