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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밀 Feb 21. 2020

불우아



수면 위 우아한 백조는

수면 아래 수없이 물장구친단다


이 얘기를 들은 아이들은

백조처럼 우아해질 수 있을 거라 믿으며

정직하게 땀 흘리며 살아간다.


그 순진한 마음만큼은

백조의 흰색을 닮았다.


아이야


잿빛 세상에서 흰색으로 살면

여기저기서 재를 뿌리러 달려든단다.






  시가 비관적이라서 보시는 분들 중에는 불편하신 분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예전에 현실에 치였을 때 쓴 시라서, 감정이 격하게 표현된 부분이 있어요.

  부조리와 요행이 판치는 세상에서, 정직하게 사는 것이 잘못인 것만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죠. 잘못은 개인이 아니라 사회에 있지만요. 최근 이국종 교수님 기사를 보면서 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사회가 바로 서지 않으면, 아무리 개인이 신념과 가치관을 지키려 해도 참 쉽지가 않구나.’ 하고요.

  저는 그럼에도 바르게 살고 싶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세상은 결국엔 정직하게 노력한 사람들이 온전한 보상을 누리는 방향으로 변할 거라 믿어요. 이국종 교수님 같은 분들이 살기 좋은 세상으로요. 그리고 그것이 정의라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아이들에게 잘못된 세상에 맞추라고 하기보다는, 아이들이 정직하게 노력한 만큼 보상받을 수 있도록 세상을 바로 세우는 것이 어른의 역할이 아닐까 해요.

  이 시가 자칫 비판의 대상을 ‘아이’로 보면 노력을 폄하하는 것처럼 읽힐 수 있는데, 비판의 대상은 ‘잿빛 세상’이라는 점을 염두해 주시면 시에 담긴 풍자를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시 제목은 일부러 이중적 의미로 쓴 거예요. 그 이중적 의미가 무엇일지 한 번 맞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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