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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il Jan 04. 2024

까끌한 마음

기록은 기어코 기억이 된다_건강


햄버거를 먹기 전, 뜬금없이 경건해지고 싶은 마음이 불쑥 찾아왔다. 그래… ‘입을 단정히 하자’ 무려 40여 일간 날마다 차도가 다른 감기 대장정 중이라, 마스크가 일상이 되었기에 꿉꿉한 마스크를 옆에 내려놓고 햄버거를 지그시 바라본 후 물티슈 한 장을 꺼내 입을 닦는데 오돌토돌한 이물감이 윗입술에서 느껴졌다. 낯설고도 익숙한 작은 동그라미 언덕들… 아, 하다 하다 이제는 입술까지, 모든 어린이들이 그렇듯 어릴 적 잔병치례를 하며 자란, 사이즈만 커진 어른들은 커서도 자신만의 잔병 루틴이 생기는데 나의 경우에는 웬만해선 아프지 않지만, 한 번 아프면 오래가기 때문에 진이 빠지는 편에 속한다. 게다가 아프면 외려 더 먹고야 말겠다는 의지는 또 어디서 나오는지 병원에서 챙겨준 약만큼이나 규칙적으로 오물오물 거리는 입에 나조차 조금 질릴 무렵이었다.


그날은 오후라 이름 붙여도 좋을 오전에 느릿하고 여유롭게 문을 여는 스토어를 방문하면서 버스를 타고 2호선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흔들거리며 도착한 시간 9시 30분 거북이 같은 스토어에 토끼 같은 방문인은 지도앱을 열어 스토어의 위치를 확인 후 돌아와 커피를 마시며 제주에서 산 작은 책 <우리는 더듬거리며 무엇을 만들어 가는 가>를 읽으며 책에서 한 걸음 멀리서 우리 속에 속한 나는 더듬거리며 무엇을 만들어 가는지, 만들어 가고 싶은지 생각하려다 옆에 앉아 두꺼운 책을 읽는 빨간 헤드셋 중년남자에게 눈길이 갔다. 책의 두께로 어림잡아 나를 읽으면 반드시 당신은 졸리게 되어 있다 말하듯 노즈이캔슬링 이어폰을 뚫고 들려오던 그 남자의 “하아암~”소리가 연거푸 들렸다. 주변을 신경 쓰지 않는 큰 하품 소리는 성능 좋아 보이는 그의 헤드셋 때문일까? 하품 소리마저 삼키는 노래를 듣고 있는 것일까? 그저 그런 행동이 시선을 집중시킨다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 혹은 개의치 않는 행동인 걸까? 부산한 소리에 힐끗 쳐다보니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책을 보고 있었고, 조금의 시간이 지나면 다시 앉아 요란한 하품을 하곤 했다.


‘아 거슬려’ (아저씨… 저처럼 얇고 작은 책을 읽으세요.) 커피를 마시며 무한반복되는 소리와 분주한 움직임에서 벗어난 건 스토어 오픈 시간을 조금 지난 후였다. 찾아갈 곳을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이런 게 좋다. 길을 헤매지 않고, 단 번에 찾아갈 수 있다는 것. 오픈과 동시에 많은 사람이 매장에 있다는 것이 신기했지만, 사람이 많은 곳에서 유난히 기력이 쇠하는 탓에 온라인에서 팔지 않는 작은 항아리를 주문 예약 후 서둘러 자릴 빠져나왔다.


익숙한 듯 먼 이 동네 성수, 생각은 턴과 턴을 반복하여 그 옛날 지긋지긋한 바퀴벌레와 함께 우울한 젊음을 감당해 내던 어느 골목 옥탑방으로 갔다. 그 방에서 나와 조금만 걸으면 작은 공장만 가득하던 어둑한 길을 뚫고 나를 실어주던 2호선 열차, 환승해 도착한 명동의 온도, 색감, 풍경 모두가 나를 주저앉게 했다. 정확히는

나의 가난이. 나의 보잘것없던 젊음이.


매일 앉아서 디자인이라는 걸 하던 때. 젊음이란 무엇인지, 대체 무엇이길래 어른의 등치는 기술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일을 그만두고 잠시간 새벽 아르바이트를 했던 길 건너 패밀리 마트와  골목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야 마주할 수 있던 둘둘치킨, 자주 가던 마트 같은 것들은 없는지 있는지. 있다고 한들 더듬더듬 찾을 수 없을 만큼 모든 게 지나가버린 젊음만큼이나 아득하게 멀다.


장정일의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 ‘석유 사러’ 시 구절에는 <내일 굶주린다 해도, 겨울에 따뜻해지는 일은 꿈꾸는 일보다 중요하다>하다고 썼다. 시의 세계가 맞닿듯 와닿을까,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졌다.


멀찍이 나온 외출, 멀찍이 돌아 과거로의 턴. 모든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몸의 컨디션만큼이나 마음도 꽁알거리는 볼멘소리로 가득 찼던 날. 그러니까, 아프지 말 것, 괜스레 과거로 돌아가 자기 연민에 빠지지 말 것, 아플 땐 길을 나서지 말 것, 일단 입술 연고부터 바를 것. 까끌한 과거가 아닌 오늘을 살 것. 나의 어린 친구들에게 조금 더 마음을 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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