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과 편지 _ 다음을 기다리는 마음
안녕하세요. 작가님. 작가님의 책을 처음 만난 곳은 교보문고 에세이 코너에서였습니다. 수많은 책들 사이서 발견한 작가님의 책 「열다섯 번의 밤」을 발견한 그날은 몸이 가볍고 싶은 날이었어요. 서점을 시간 때우기 좋은 장소로 여기고 싶지 않지만 그날의 서점은 그런 마음으로 들른 정거장이었습니다. 하필 그런 날, 표지에 반하여 들어 올린 책의 <서문>을 단숨에 읽고 <너는,>을 읽다가 작정한 듯 본래 있던 위치에 내려놓고 조용히 책의 배를 쓰다듬었습니다. 그리곤 돌아섰다가 되돌아오기를 몇 번 반복한 후에야 품에 안았지요. 어쩌면 저는 그때 알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님의 언어와 세계로 완성된 글을 계속해서 읽게 되리라는 것을요. 문장과 문장 사이에 머물렀다가 마음을 쿵하고 찧은 듯 앓았다가 때론 훔친 눈물에 머쓱해하며 작가님의 책을 읽었고, 동료들에게도 선물했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저와 같은 마음일 거라 기대하면서요.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작가님의 글을 저와 같은 마음으로 읽어주길 바랐습니다.
저와 같은 마음이란 무엇일까요? 저에게 자주 질문했습니다. 무엇을 선명히 느꼈는지, 되찾은 것이 있는가에 대해서요. 혹은 앞으로 얻거나 잃어갈 것에 대해서요. 답은 구하려 할 때마다 약 올리듯 저를 달아났습니다. 그렇기에 번번이 조금 뭉개진 기억으로 현재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조금도 나아가지 못한 채 복기하듯 읽어 내려가는 작가님의 문장에서 저는 찍지 못한 마침표처럼 자주 서성거립니다. 쓰고 싶게 하는 문장들, 무엇을 써야 할지 몰라 서성이게 되는 생각들이 완벽히 중첩되어요. 이만하면 지금의 제 상태가 잘 표현되었을까요?
지금의 성격과 맞지 않게 어릴 적의 저는 입안에 말을 넣고 우물쭈물거리던 아이였다고 해요. 그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옛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듯 저를 바라보던 답답함이 서린 눈동자들이 생각날 것 같기도 했습니다. 글을 쓸 때만큼은 기억나지도 않는 옛이야기들이 제 곁에 살아 움직이는 오늘 일인 것 같아요. 참 이상한 일입니다. 글을 쓰기 시작하자 모든 게 특별했고, 동시에 그만큼 쓸 수 없는 제가 미운 날들이 되풀이되곤 했습니다.
23년 저의 내면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 어느 해보다 책 읽기에 진심이었고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빈 페이지와 정진하지 못하는 커서의 깜빡임 앞에서 모니터만 노려보다 임시저장이란 처방전을 내리고 다시 글을 열고 쓰기까지 수일이 걸리곤 했습니다. 세상에는 어쩌면 문장가가 그리도 많을까요? 책과 웹에서 발견한 타인의 주옥같은 문장 속에서 구르다 보면 결핍이 스멀스멀 올라와 애증이 돋아나는 기이한 경험도 했습니다. 그날 그 교보문고에서 박완서의 나목을 모르고, 한 밤의 커피를 즐기며, 마왕을 신봉하고 잃었던 날에 대한 기억이 있는 저를, 저의 글씨체를 좋아해 주던 사람을 떠올리며 아직 사랑 같은 건 모르면서 김광석의 '사랑했지만'을 듣는 제가 일순간 책 속의 주인공이 된 듯 서 있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밤에는 늦은 가을과 커피믹스, 박완서의 나목 그리고 네가 있었다. 나는 다정한 라디오나 슬픈 멜로디 한 소절 들리지 않는 침묵의 밤을 좋아했다. 커피를 홀짝이는 소리, 크래커가 부서지는 소리, 책장의 바스락 거림, 연필이 편지지를 사각사각 밟는 소리면 충분했다. 반도 채우지 못한 편지지는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손이 아파서였다. 나는 손아귀의 힘을 빼고 부드럽게 연필을 쥐는 법을 몰랐다. 온 힘을 다해 검지와 중지 사이를 조여 연필을 잡았고, 그래서 나의 검지와 중지는 지금도 모양이 뒤틀렸다. 검지는 바깥쪽으로 휘어지고, 중지에는 볼록한 혹 같은 게 생겼다. 너의 앞에서 검지와 중지를 숨겼던 것을 모르고, 편지를 내미는 내 손이 너는 예쁘다고 말했다. 이제는 부러진 손톱과 피부에 생긴 얼룩, 두꺼워진 마디 탓에 숨길 수 없는 미운 손이 되었다. 네가 봤다면 나를 안타까워할지 세월을 안타까워할지 모르겠다. 엄마는 박경리의 소설을 좋아했지만 나는 박완서의 소설을 좋아했다. 박완서의 문장에는 영원히 늙지 않는 소녀가 살았다. 한밤중 커피포트 물 끓는 소리와 에이스 크래커만으로도 하나의 견고한 세계를 만들 수 있는 사춘기 소녀, 사라진 싱아를 찾아 들판을 헤매는 유년기의 소녀, 노란 집에 텃밭을 짓고 사는 웃음이 수줍은 노년의 소녀가 있었다. 박완서의 책을 읽으면 나는 박완서가 되어 노란 집에 살았다. 밤에는 커피를 끓이고 에이스 크래커를 먹었고, 싱아를 찾아 들판을 쏘다녔다. 그런 나를 너는 감상적이라고 놀렸지만, 너 역시 <춘천 가는 기차>를 들이며 4호선을 탈출하길 꿈꿨고 마왕을 신봉했으며, 제대로 사랑 한번 해 본 적 없으면서 김광석의 <사랑했지만>을 들으며 울었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너도 나처럼 그런 날이 있지 않을까. 설거지를 하다가, 양치질을 하다가, 오후 다섯 시 일찍 저무는 해를 보다가, 맥락 없이 찾아오는 그 밤들의 노크에 울컥하지 않을까. 빼앗긴 것도 아닌데 나는 그 기억들을 손에 쥘 수 없는 것이 어쩐지 억울하다. 그러나 나는 너를 안다. 네가 지독한 삶의 풍파를 맞아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하지 않았다면, 내가 아는 너는 적당히 현실에 만족하며 틈틈이 옛날을 그리워하다가도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고 냉정하게 말할 것이다. 다만 그리운 것은 이제는 없는 마왕이며, 닭갈빗집 주인과 다툰 이후로 두 번 다시 발을 내딛지 않는 춘천, 사랑을 몰랐기에 좋았던 김광석의 노래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여전히 너를 잘 안다고 믿고 싶다.』 신유진 / 열다섯 번의 밤 <너는,>
『그러네. 오래 기다리면 잊지. 크리스마스에 오지 않는 산타를 오래 기다리다 잊었고, 전학 간 단짝 친구의 편지를 오래 기다리다 잊었으며, 어쩌면 무언가 되지 않을까 품었던 희망을 오래 기다리다 잊었는지도 모르지. (...) 우리는 무언가를 너무 오래 기다리고 있다. 무엇일까? 우리에게 오지 않는 것은, 앞으로도 오지 않을 그것은,』 신유진 / 그렇게 우리의 이름이 되는 것이라고 <끝난 연극에 대하여>
『사람의 마음이란 게 원래 좀 이상하지 않나. 같이 가고 싶기도 하고, 떼놓고 싶기도 하고, 들키고 싶기도 하고, 감추고 싶기도 하고. 그러나 희를 더 알고 싶었던 나는 약수터를 오르며 단련된 걸음으로 뒤를 바짝 쫓았다. 희는 조금 더 빨리 걷다가 이를 악물고 따라오는 나를 힐끗 보더니 이내 속도를 늦췄다. 우리는 어느새 나란히 걷고 있었다.』신유진 / 창문 너머 어렴풋이 <안녕>
코 앞의 건물 너머, 들판 위의 산 너머 노을만큼 닿지 않을 사람. 잃은 사람과 잃은 저에 대해 생각하며 마음이 절로 가라앉는 경험을 몇 번이나 했을까요. 작가님의 글을 읽으며 제게도 조약돌 같은 이야기와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실감하는 일은 즐거운 발견이었지만, 끝끝내 스스로도 해명하지 못한 괴로움은 여전한 숙제로 남았습니다. 그날 서점에 가지 않았다면, 글의 터널을 건너는 중, 작가님의 책과 문장을 만날 수 있었을까요? 그런 생각을 하면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며칠 전 교보문고에서 작가님의 신간 알림「상처 없는 계절」이 문자 발송되었습니다. 이리도 반가운 신간이라니, 터널에 또 한 번의 빛이 당도하겠네요. 23년은 제게 특별한 해였습니다. 이전에 말한 것 외에도 작가님을 알게 된 해이기도 했으니까요.
먼발치에서 작가님의 이야기 서랍을 궁금해하며 제 서랍의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싶습니다. 언제나처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은 변치 않을 것만 같아서 저는 오늘도 변변치 않은 글을 쓰고 있습니다. 쓰다가 힘에 부치면 임시저장에 기대자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요. 지금의 저는 부족함을 채우기보단, 인정하는 글쓰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멈추지 않는다면, 언젠가 제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요. 책의 한가운데서, 작가님의 문장 모서리 끝에서 저를 발견하는 마음에 쌓인 눈이 녹는 것만 같은 경험을 다시 한번 해보고픈 오늘입니다. 밤이 내달리는 새벽, 꿈 안으로 흘러들어 가길 소원하며 2월의 어느 날 작가님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