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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봐 주는 일.

by 쓰는 사람 효주

모욕받은 적이 있다. 초등학교 5학년(당시엔 국민학교) 때 운동장에서 전체 조회를 기다리던 시간이었다. 남자 여자 한 줄씩 맞춰 줄을 섰는데 키가 작았던 나는 맨 앞줄에 서 있었고 내 옆에는 남자 아이중 가장 키가 작았던 아이가 서 있었는데 머리를 좀 길게 기르고 다니며, 여자에게든 남자에게든 먼저 다가가 친구도 잘 사귀는 아이였다. 공부도 잘하는 편이어서 선생님들에게 썩 괜찮은 녀석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 애가 나름 친하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을 자기 생일에 초대한 적도 있는데, 나도 포함되었는지 아니면 내 친구 때문에 함께 가게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화려한 케이크와 친구들의 선물로 함박웃음을 지었던 그 애 모습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선물을 준비하지 못해 안절부절못했던 나는 혼자 빨개진 얼굴로 계속 선물생각을 해야 했다. 얻어먹으러 왔다는 핀잔을 듣진 않을까? 넌 선물 없어? 준비 안 해왔어? 하는 말로 모든 아이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면 어쩌지? 하는 생각들로 마음이 무거웠다. 그렇게 사람을 걱정시켰던 녀석이 그날 조회시간에 뭔가 우스운 이야기를 했는지 몰라도 그 애 말을 듣고 나는 평소처럼 거나하게 웃었다. 그 애는 내 웃음소리를 처음 들은 것처럼 놀라더니 " 너 웃음소리 왜 그래?"라고 했다. 이후로 웃음소리가 마녀 같다고 했나? 아니면 너무 이상하다고 했나? 여하튼 내 기분을 무척이나 긁어주는 멘트를 날렸는데 나는 " 네가 뭔데 내 웃음소리 가지고 난리냐?"라는 식의 반격을 가했다. 말발이든 공격이든 절대 지지 않았던 나로서는 어떻게든 그 애의 기를 꺾어주고 싶었을 거다. 그러던 중 담임선생님이 운동장으로 나오셨다. 녀석은 선생님을 보자마자 " 선생님, 얘 웃음소리 이상해요!" 라며 손으로 나를 가리켰다. 마음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삼키며 얼굴을 붉히고 있던 나에게 선생님은 "너 웃어봐"라는 게 아닌가?


평생 잊지 못하는 모욕적인 순간이었다. 나는 몇 번이고 그 장면을 떠올리며 그 애에게 복수하는 상상을 하거나 선생님께 거나하게 대드는 이야기를 꾸며내곤 했다. 당시엔 그저 화가 난 얼굴로 아무 말 없이 서 있었을 뿐이었다. 속이 상했지만, 어쨌든 선생님께 대들 만큼의 배포는 없었으므로. 그 경험은 나를 키워냈을까? 사실 잘 모르겠다. 기억은 상처로 남아 언제든 나를 위협하는 무기가 되곤 한다. 큰 소리로 마음껏 웃지 못하거나, 내 웃음소리가 그렇게 이상해? 라며 자주 묻곤 했으니까. 그 상처에서 벗어나게 되었던 건 나를 처음 알게 된 누군가가 " 너 웃음소리 시원하다.' '웃음소리가 좋다'라는 말을 해줬기 때문인데, 스물두 살 성당 언니의 소개로 만났던 빼빼 마른 남자아이는 유별나게 내 웃음소리를 좋아해 주었다. 만약 그런 경험이 없었다면? 난 아직도 내 웃음소리를 부끄러워할지도 모르겠다.


<바다거북 수프를 끓이자>의 작가 미야시타는 모욕당하는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부끄러움이 많았던 딸이 어느 날 용기를 내어 손을 들고 선생님의 질문에 답했다. 하지만 그만 틀린 답을 말하고 말았으니 친구들이 자신의 답을 듣고 막 웃었다며 속상했단 이야기를 엄마에게 들려준다. 엄마가 " 괜찮아 잘했어"라고 말해주자 딸은 놀란 표정을 짓는다. " 남에게 웃음 사는 건 중요한 일이거든!" 모욕에 대한 작가의 멘트는 이렇다.

비웃음 당한 적 없는 사람은 연약하다. 실패한 적 없는 사람은 위험하다. 한 번 실패했던 일은 반복되지 않는다. 같은 곳에서는 발이 걸려 넘어지지 않게 된다. 그런 구체적인 효용도 있지만, 실패해서 웃음을 사는 것 자체에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부끄럽거나 분하거나, 그런 체험이 인간을 강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맷집이야말로 사람을 멀리까지 걷게 해 준다고 나는 생각한다. <바다거북 수프를 끓이자, 미야시타 나츠>



비웃음을 당하고 여러 번 실패하고, 길을 걷다 넘어지기도 하고, 분하고 억울하고 부끄러운 일을 겪는 경험이 인간을 강하게 만드는 걸까? 성공의 경험은 너무 적고 실패와 좌절의 경험만 많은 사람들은 어쩌지? 작은 실패에도 크게 낙담하거나, 실패가 두려워 시도조차 못하는 사람들은 강해질 자격이 없는 것일까? 나는 오히려 딸과 같은 반 친구 중 누군가가 " 너의 틀린 답 덕분에 웃을 수 있어서 재밌어서"라든가 " 틀린 답인데도 손들고 발표하다니 너 용기 있다"라든가. " " 아까 너 좀 귀엽더라" 하는 말로 그 친구의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면 어땠을까 싶다. 틀린 답을 말한 스스로가 부끄러웠다가도 금세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훌훌 털어버릴 수 있었겠지. 우리가 누군가에게 전하는 친절한 말 한마디가 그 사람이 오랫동안 품어온 상처를 치유한다면? 내 경험처럼 스스로를 더 사랑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친절하자. 누구에게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보석을 알아봐 주자. 알아봐 주는 마음이 인간을 구할지도 모르니까.



P.S " 자기 웃음소리 시원하고 좋아 껄껄 넘어가잖아 막힘 없이"라고 말하는 남편은 때때로 내 웃음소리를 흉내 낸다. 표정까지..... 칭찬일까 놀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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