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중에 온 이에게도

자본주의 셈법이 아니라 인간성을 지키는 셈법

by 쓰는 사람 효주

"자기가 노력한 만큼 대가를 받는 세상이 공평한 거 아니야? 국가 장학금 받는 애들은 그냥 장학금 받으면서 놀러 다니고 편하게 살더라고! 내 딸은 장학금 받으려고 기를 쓰고 공부하는데 말이야. 걔들은 노력도 안 하는데 장학금을 받잖아."


복지를 통해 나보다 못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생활 수준을 유지하는 게 꼴 보기 싫을 수 있다. 갖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입고 싶은 것도 참아가며 아끼고 아껴 돈을 모으고 있는데 왜? 나라에선 나 같은 사람은 인정 안 해주고 통장에 잘 모셔둔 돈을 찾는데 이유나 쓰라고 하고, 장학금은 남편의 월급과 통장잔고가 많다는 이유로 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니 화가 날 수밖에. 공감이 가면서도 뭔가 석연치 않은 기분이었다. 장난스럽게 " 그냥 써! 아끼지 말고! 너무 아끼니까 스트레스가 쌓이는 거잖아. 써버려~"라고 말했지만, 사실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었다. 삶은 노력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것, 인생은 사실 타고난 사주팔자가 좋은 사람들에게 행운이 따르는 법이라고. 우리가 가진 힘이나 재능으로, 혹은 자유의지와 악바리 같은 근성으로 이룰 수 있는 일보다 태어나길 부유했고, 하는 일마다 운이 따라줬고, 시대를 잘 타고났으며,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 맞았을 때 해낼 수 있는 일이 압도적으로 많고 크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길 바랐다.


사회와 어른들이 정의로운 줄 알았던 어린 시절엔 내가 열심히 살면 자연히 모든 일들이 막힘없이 진행될 줄 알았다. 진실은 통하는 것이고 언제나 승리하는 것이라 여겼던 거다. 하지만 세상 속으로 들어와 보니, 여우처럼 약은 사람들이 훨씬 잘 산다거나, 남을 위해 자기 것을 내어주는 사람은 자기 삶마저 망치는 일이 더 많았다. 정의와 진실이 실상은 부정과 거짓이기도 했다. 어느 지도자든 정의와 공정을 가장 중요시 여기겠다 다짐했지만, 그것을 이뤄낸 사람은 드물었다. 이토록 불완전한 사회에서 노력한 만큼의 대가는 얼마나 모호한 수치인가? 바르고 겸손하게 살고자 하는 노력은 또 얼마나 개인적일뿐인가?


아끼고 아끼고 버둥거리며 살아온 나도 나보다 훨씬 덜 노력하며 사는 언니들이 전국방방 곳곳을 여행하며 살고, 유행한다는 가장 최신 폰을 구매하고, 쇼핑을 밥 먹는 것보다 더 많이 하며 사는 게 싫었다. 어려운 일이 생겨 금전적인 도움을 요청할 때는 화가 나기도 했다. 내가 누리지 못한 것을 다 누리고 살면서, 거저 가지려는 심보 같아 얄미웠던 거다. 그런데 시간이 더 지나고 보니, 또 다른 게 보이기 시작했다. 누구도 나에게 이리 살라고 강요한 적이 없다는 것, 모든 것은 나의 선택이었을 뿐이라는 것. 잘 아끼고 모으는 재능이 오직 나를 위한 것만은 아닐 거라는 깨달음 같은 게 찾아온 거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포보밭의 주인은 아침부터 일한 자와 오후 늦게 와서 일한 자의 품삯을 똑같이 지불한다. 세상의 셈법으로 이해될 수 없는 내용이어서 일찍 온 인부들이 주인에게 항의한다. 그때 포도밭주인이 한 말이다.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라니온 합의하지 않았소? 당신 품삯이나 받아 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 김미옥>


나중에 온 이에게도 똑같은 품삯을 지불하는 성경의 일화는 무엇을 의미할까? 불공평하고 정의롭지 못한 세상을 말하고자 함인가? 아니었다. 연민과 도덕이 결여된 자본주의 세상에서 우리가 그것을 지켜내고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셈법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돌아온 탕자인 둘째 아들에게 평생을 아버지 곁에서 순종했던 첫째 아들을 뒤로하고 더 귀한 것을 내어준 아버지의 일화도 같은 맥락이다. 노력한 만큼의 대가나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이라는 자본주의적 셈법으로 지켜지지 않은 인간성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포도밭주인의 셈법이 필요하다. 내 것이 남아돌아야 남을 도울 수 있는 게 아닌 것처럼. 때때로 우리는 먼저 나와 열심히 일할 줄 알아야 하고, 나보다 덜 노력한 사람이 받아가는 혜택도 고개를 끄덕일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꽤 부리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온 삶이 우리 안에 머물고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겠는가?






keyword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