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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혼자서 하는 일.

그렇지만 모두와 나누고, 누구와도 연결될 수 있는 일.

by 쓰는 사람 효주

글은 어떻게 쓰이는 걸까? 훌륭한 작가들 혹은 이름이 제법 알려진 작가들의 에세이를 읽다 보면, 그들이 글쓰는 시간 동안 얼마나 고단하고 힘들었는지 고백하는 이야기를 종종 만난다. 오랜 시간 써지지 않은 글 때문에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는 작가도 있었고, 글을 쓰기 위해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여행을 가거나 몇 달을 지내기도 했다. 박경리 문학관은 글을 쓰고 싶은 작가들에게 공간을 내어준다고 했다. 몇몇 유명한 작가들은 글쓰기에 몰입할 수 있는 장소를 무료로 대여받기도 한다. 여기에 공통점은 모두 다 홀로 머문다는 데 있다. 글이란 자기 독백이기에 그런 걸까? 나 역시 아이들이 시끌벅적하게 집안에 머무는 시간에는 아무것도 쓸 수가 없다. 그 모든 것이 소음이고 방해다. 가끔 둘째가 빨리 잤으면 하는 간절함이 마음 깊은 곳에서 메아리치곤 한다. '어서 자렴. 엄마도 글을 써야 해'하면서. 고작 써 내려가는 글은 부끄러운 문장들 뿐이면서 무슨 대단한 작품을 쓰기로 마음먹은 사람처럼 말이다.


그러나 홀로 있을 때, 깊고 고요한 소음 속에 머물 때 글이 문장이 되어 나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잊고 있던 하루일과가 생각나고 그것이 글이 되면, 부끄러운 고백과 소소한 깨달음과 삶의 작은 리듬들이 쌓이게 된다. 함께 있을 땐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이는 신비는 일주일에 몇 번이라도 글을 써본 사람은 알 테다. 해서, 글쓰는 이는 홀로 있는 시간을 가장 잘 쓴다.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잘 해내는 편이다. 그렇다고 그들 모두가 좋은 인생을 산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글을 전혀 쓰지 않는 사람보다는 스스로와 친하다고 해야 할까? 글이 사람을 변화시킨 건지 아니면, 원래 그런 사람이 글쓰는 걸 즐기는 건지 명확하게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닭과 달걀의 순서를 결정짓는 일이 어렵듯이 말이다.


군대를 다녀온 후 친구들은 하나둘씩 사라졌다. 누구는 편입학원으로 또 누구는 인턴사원으로 다른 친구는 토익학원으로 떠났다. 물론 나는 한 번도 그 친구들을 원망하거나 배신자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아니 오히려 부러워했다. 다만 모험을 싫어하는 성격상 나는 지금껏 해오던 시쓰기를 그만두고 새로운 인생의 계획을 세울 용기가 없었다. 다시 혼자였지만 홀로 무엇을 하는 것이 나에게는 익숙한 일이라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박준>


인생의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도전했지만, 대부분 실패했다. 글쓰기는 소소한 취미생활일 뿐이었고 한동안 내 삶에서 잊히기도 했다. 돌고 돌아 다시 쓰는 사람이 되었지만, 그게 전부다. 그런데 그래서 좋다. 대단한 작가가 아니라서 오히려 행복하게 쓴다. 처음엔 책을 내야 한다는 둥, 등단 작가가 되고 싶다는 둥, 공모전 입상을 도전한다는 둥 무리한 목표를 세우기도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 재능은 여기까지인 듯싶다. 나 역시 성격상 지금까지 써오던 방식을 그만두고 그럴듯한 목표를 세워 도전할 용기가 없다. 그저 소박하게나마 마음을 글로 쓰는 일의 즐거움을 삶의 한켠에 두고 싶을 뿐이다. 글쓰기에서 만큼은 자유롭고 싶다. 무엇도 되고 싶지 않고 아무것도 이루고 싶지 않다. 그래도 괜찮다고, 그런 삶도 있는 거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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