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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설거지를 하지 않기까지.

by 쓰는 사람 효주

사실 모든 것이 투쟁이었다. 거저 얻을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는 말이다. 결혼 후 남편과 참 많이도 싸웠다. 물론 싸운 횟수만큼 다정했던 순간도 많았기에 지금까지 멀어지지 않고 나름 잘 지내고 있지만 끝을 생각할 만큼 치열하게 싸운 날도 있었으니, 다들 그렇게 살아라는 말로 간단히 정의 내리기엔 우여곡절이 많았다. 결혼 전 남편에게 " 난 남녀평등주의자야. 남자도 집안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라고 말했었다. 남편이 뭐라고 대답했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뭐든 오케이라는 진지하지 못한 대답이었을 테다. 결혼식이 한 달 정도 남았던 시기에 시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눴던 적이 있는데 두 분께서 했던 말 중 " 네가 제일 잘해야 한다"라는 말이 가장 싫었다. 그 말씀 때문에 이 사람과 결혼해야 하나?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다시 할 정도였으니까. 나는 단지 좋아하는 사람과 더 행복한 미래를 그리기 위해 '결혼'을 선택했을 뿐인데 그 선택에는 내가 책임져야 할 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좋은 아내, 좋은 며느리, 좋은 엄마는 기본이고, 살림 잘하고 집안도 잘 이끌고 웃어른들 공경하고, 바깥일도 잘해야 하는 울트라 슈퍼우먼, 게다가 자기 관리도 잘해야 해서 뚱뚱해지거나 못생겨지거나 허름해 보이는 일도 신경 써야 했던 거다. 어머님은 일에 치여 사는 나에게 "꾸미고 다녀야 해"란 말을 자주 하셨다. 그 말이 듣기 싫었던 나는 더욱 꾸미는 일에 무관심했다.


남편이 저녁 설거지를 하기까지 십 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것은 그와 끊임없는 마찰을 통해 물러섬 없이 그에게 한 요구로 얻어낸 승리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식사를 준비하는 과정에 참여시키기까지 또 몇 년의 시간이 걸렸다. " 왜 이 모든 일이 내 일이어야 하는 건데?"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설득과 윽박지름과 하소연과 눈물과 분노를 얼마나 자주 그리고 오래 표현해 왔는지 헤아일 길이 없지만, 대체 왜? 이런 요구들이 받아들이기까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시댁에서 저녁을 먹거나 명절을 지낼 때도 남편이 함께 참여해야 함을 관철시키는 일은 또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소비되었는지 모른다. 겨우 설거지와 요리에 참여시키는 정도로 말이다. 집안일은 그것 말고도 얼마나 많은가.



세상은 남자들의 자기중심적 추구에 익숙하고, 그들의 사정을 너그럽게 헤아려주며, 그들의 위반과 부적절함은 이해해 주고 용서해 준다. 뭐. 당신도 그 사람이 요리를 하거나 아이들을 돌볼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잖아요. 그가 체중이 좀 는다고 누가 신경 쓸 것이며, 그가 남들을 통제하려 하거나 나르시시스트라고 한들 어떻겠어요. 그는 바쁜 사람이고, 업무들을 처리하고, 상황을 이끌어가고, 회사를 운영하고, 국가를 운영하는데 말이에요. 이렇게 줄줄 이어지는 이해의 말들이 여자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욕구들, 캐럴라인 냅)



그렇다. 나 역시 바빴다. 대리점을 남편과 함께 운영하며 일했고 어린 두 아들을 전적으로 거의 혼자 돌봤으며(아플 때 병원 가는 일부터 학업까지) 꽤 긴 시간 집안의 모든 일들을 도맡아서 했다. 책 한 권 읽을 여유도 없었으니 언제 화장을 하고 피부를 가꾸고 운동을 할 수 있었을까? 그런데도 세상은 나의 겉모습을 흉하게 봤다. 시어머니 역시 그런 내 모습을 싫어하셨다. 언니들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가진 모든 시간을 가정 안에 쏟아부어야 했음이 왜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어쩌면 보였음에도 나를 이해하는 이해의 말들은 다른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적용되지 않았을 테다.


그래서 싸웠다. 치열하게 부딪혔고 때때로 침묵으로 버텼다. 그러나 여전히 암묵적으로 대부분의 집안일은 나의 몫이다. 내가 얻어낸 것은 보잘것없지만, 그것을 얻는데도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여자의 희생으로 유지되는 가정이 지속되는 한 우리는 언제나 억눌린 욕구들을 미디어 화면 속으로 쏟아내거나 로또 숫자에 집착 하거나 공허함을 채우지 못해 어딘가 모를 곳으로 떠나고 싶은 유혹 속에서 괴로워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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