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사와 제롬은 여전했다.
문자의 시작은 언제였을까?
친절하게도 한글의 시작은 다른 언어에 비해 분명하다. 세종대왕께서 친히 백성들을 위해 반포하신 날이 기록에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는가? 란 질문에 나 역시 분명하게 답할 수 있다. 고등학교 입학 전 학교에서 내준 독서감상문 제출이라는 강압적인 숙제가 그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독서가 아닌, 주입식, 강압식 교육의 일환인 학교 숙제가 내 독서의 시발점이었다. 누군가에겐 강제로 문을 열어줄 필요가 있다. 갇힌 세상에선 열린 세계를 볼 수 없으니 말이다.
큰 아이가 초등학 때까지만 해도 선생님들은 일기를 강요했고, 독서감상문 역시 중요한 방학 숙제 중 하나였다. '검'이라는 새까만 도장만 찍어 돌려보내주시는 선생님이 있는가 하면, 친절하고 다정한 문장 한 줄로 아이가 써 놓은 이야기에 코멘트를 달아주시는 분들도 있었다. 물론 새까만 도장보다 한 줄이라도 남겨진 코멘트는 아이의 쓰기와 읽기의 비타민이 되어 주곤 했다. 둘째 때는 그렇게 애쓰는 선생님을 만나기 어려웠다. 엄마들의 악성 민원에 시달려 포기하는 게 많아진 건지, 아니면 교사 스스로 의미와 무의미 사이에서 무의미를 선택한 건지 알 수 없지만, 사라진 일기장 검사와 강압적인 독서감상문이 그리워질 지경이다.
고등학교 입학 전 숙제로 내야 할 독서감상문의 주인공은 앙드레 지드의 <좁은문>이었다. 낡고 바래진 갈색 표지를 두른 그 책이 어떻게 우리 집 작은 서랍장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지는 모른다. 숙제는 해야겠고, 지어서 쓰자니 거짓말은 싫고 혹 우리 집에 권장도서 목록 중 한 권이라도 있을까 하는 마음에 살펴봤던 서랍장에 그 친구를 발견했다. 어찌나 다행인지, 타자기로 써 내려간 듯한 딱딱하고 작은 글씨가 읽기 편하진 않았지만, 베개를 바닥에 깔고 엎드려 내 인생 최초의 독서를 시작했다. 책 표지처럼 흐릿하고 갈라진 기억이지만, 최최의 독서가 장기 기억에 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사랑"이라는 달콩한 이야기에 푹 빠져 들었기 때문일 테다.
알리사의 지고 지순한 사랑과 그 사랑에 답하고 싶은 제롬의 신사적이고 부드러운 이미지는 사춘기 소녀였던 나를 사로잡기 충분했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책이라고 뾰루퉁했던 친구도 있었지만, 나는 미지의 세계에 도착한 사람처럼 마냥 신기했다. 그렇게 독서의 첫발을 때었고 지금은 책없는 삶은 상상조차 어려운 사람이 되었다.
그로부터 삼십오년이 지났다. 독서의 문을 열여 줬던 <좁은문>을 다시 읽겠다고 결심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것은 매우 우연히 급작스럽게 이루어진 만남이었다. <좁은문>은 다시 내게로 왔고, 나는 삼십오 년이란 시간이 한 사람의 마음에 어떤 변화를 이뤄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알리사와 제롬의 사랑에 콩닥 거리던 심장을 부여잡은 열여섯의 '나'는 꽤 희미해졌고, 두 사람의 말도 안 되는 밀당에 답답함을 토로하는 나이 먹은 오십 대 아줌마는 너무 선명히 보였다. 연애 세포가 다 죽은 사람처럼, 설레는 사랑 앞에서 덤덤한 미소만 짓는 시든 꽃잎처럼, 늙어 버린 내가 보였다. 삼십오 년은 그런 시간인 건가? 만약 내가 결혼하지 않고, 아직도 나만의 어떤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면, 지금과는 달랐을까? 만약이라는 가정하에 다른 나는 존재하지 않으니 알 수 없다. 삼십오 년 전의 <좁은문>은 그대로였지만, 나는 달라졌다. 변하지 않은 친구 앞에서 변해버린 미안함이 찾아왔다. 뭔가 잃어버린 기분 그렇지만 결국엔 잃고 마는 것을 잃은 기분이라 슬프진 않았다. 다만 나만 늙었네란 아쉬움.
앞으로 삼십오 년 후 여전히 내가 살아있다면( 팔십육 살 때) 그때 다시 이 책을 만나보고 싶어졌다. 또 다른 삼십오 년은 어떻게 흘러갈지. 팔십육 살에 읽는 좁은문은 어떤 마음으로 다가올지 벌써 궁금해진다. 잃어버린 소녀감성이 팔십육에 다시 찾아와 어리둥절할지 누가 알겠는가.
알리사와 제롬은 언제까지나 이렇게 사랑하고 있겠지.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시간이 나를 육십으로 칠십으로 팔십으로 데려가는 동안에도 두 사람은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을 테다. 영겁의 시간. 불멸의 사랑은 결국 책에서 이뤄지나 보다. 탄생과 소멸로 이어지는 자연의 순환처럼 앤딩과 시작을 반복하는 책 속에서 이야기는 끝없이 돌고 도는 중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