랄랄라 하우스 / 김영하외

즐거웠던 독서 시간

by 쓰는 사람 효주

읽기만 해도 괜찮을 때가 있다. 요즘이 그렇다. 책 한 권을 읽고 나면 생각을 정리하고 메모해 둔 것을 잘 추려서 글을 써야 하는데 그냥 읽고만 싶다. 월요일 연재라는 강력한? 마감이 없다면 글쓰기를 더 멀리 했을지도 모른다. 어제부터는 읽었던 두 권의 책 중 어떤 걸로 이 빈 화면을 채울까 계속 고민했다. 가독성이 상당했던 헤닝 만켈 <스웨덴 장화>냐, 생각의 지평을 넓혀준 김영하의 <랄랄라 하우스>냐. 이것이 문제로다. 헌데 어차피 책 읽는 마음을 연재하는 거니까 두 권을 통과한 내 마음을 보여주면 될 것 같아 모두 다 소개하는 걸로 결정했다. 전체적으로 게으른 듯하면서도 부지런한 틈들을 이용해 독서를 해온 한 주다. 그런 와중에 큰애의 도시락을 두 개 싸고 안 돌아가는 머리를 이용해 둘째와 수학 문제를 풀고 늦은 저녁이 오면, 코스모스를 한 페이지씩 나눠 읽었다. 글로 써보면 꽤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게을러터진 내가 보이는 건 왜일까.


김영하 작가의 <랄랄라 하우스>는 순전히 우연으로 만난 책이다. 도서관 서비스 앱 리브로피아가 이상한 리뉴얼을 해버려서 그동안 순서대로 저장해 둔 내 서재의 책들이 뒤죽박죽 섞여버렸다. 읽은 책과 다음번 대출을 기다리는 책들이 엉망징창이 되어 직접 읽을 책을 찾아 나서던 중 만난 책이다. 좋아하는 작가의 에세이다! 심봤다! 하는 마음으로 데려온 책. 읽어보니 역시나였다. 아주 짧은 산문으로 책 한 권이 가득 차 있었다. 짧은 글을 완성도 있게 쓰는 일이 쉽지 않음을 알기에 살짝 와... 하며 읽었다. 생각의 꼬리와 꼬리를 물어야지만 가능한 글쓰기. 파도 파도 마르지 않은 생각의 샘물을 가진 작가였다. 이상한 상상과 조금 유치한 공상. 어른스러운 일화와 누구나 한 번쯤 겪을 법한 일상의 스침 같은 일들. 기록하지 않았다면 도저히 기억나지 않을 단상들. 굳이 기록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낙서 같은 문장들도 김작가의 손을 거쳐 산문이 되었다.

첫 번째 챕터에는 반려묘 방울이와 만나게 된 일화가 나온다. 소설가의 에세이답게 방울이와 만나는 장면이 화면으로 그려지고, 다큐멘터리 같은 그들의 일상들이 훤히 보여 재밌었다. 이후는 방울이와 전혀 관련 없는 짧은 글들이 계속 이어졌는데, 나는 언제쯤 방울이 이야기가 또 나올까 고대하면서 페이지를 넘겼다. 아쉽게도 방울이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 작가님은 맨 처음 독자를 끌어당길 요량으로 방울이 일화를 넣은 게 아닐까. 하지만 뒤로 이어지는 산문들은 방울이 이야기만큼 재밌진 않았어도 묘하게 끝까지 읽고 싶은 욕구를 붙들어두는 힘이 있는 글이었다.

아이오와대학에서 열리는 문학축제는 3개월간 이어지는데 세계각국에서 온 작가들을 만날 수 있는 행사라고 한다. 글로 만나본 그 행사는 그야말로 작가들의 낙원처럼 보였다.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그런 곳에 갈 수 있다면, 비록 대박 작가의 대열에 들지 못할지라도 멋진 인생이었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여러 번 전학을 다니며 홀로 외롭게 성장한 작가님은 자기만의 세계에서 완전한 자기가 되어 버린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길고 긴 침묵의 시간과 홀로 머물었던 모든 장소와 고독을 거쳐가며, 자기 안의 이야기를 쌓아갔을 테다. 남들은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었던 그 긴 시간의 쌓임. 김영하 작가라는 사람이 만들어져 갔던 시간들을 상상해 본다. 친구가 없어 외로워 보이는 아이. 자기 안의 결핍이 무언지도 모른 채 책 속으로 도망갔던 소년. 뒹구는 낙엽과 떨어지는 비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조금 비틀어 보고 다르게 상상했던 무의미한 사건들이 글이 되고 소설이 될 줄 아무도 몰랐을 테다. 작가의 어머님은 언제나 고정급여가 한 달에 한번 따박따박 나오는 직장인 김영하를 꿈꿨다고 한다. 아들의 마음속에 어떤 생각과 이야기가 자라나는지 끝내 보지 못한 어머니. 아들의 행복을 바라는 간절함은 때때로 아들의 진심을 못 보게 막는 큰 장애물이겠구나 한다.


외롭고 쓸쓸하거든 작은 종이 한 장을 꺼내 아무거나 써 내려가 보자. 무엇을 써야 할지 망막하다면 김영하 작가의 <랄랄라 하우스>을 읽어보길 바란다. 별 볼 일 없는 작은 상상이나 쓸데없는 논리 비약이나 돈이 될 것 같지 않은 시답지 않은 자기만의 시선들이 어떻게 글이 되는지 분명하게 볼 수 있을 테다. 대단한 것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글을 멈추게 한다는 점. 작고 소소한 일화들로 채워지는 한 편의 글이 주는 위트와 공감이 제법 크다는 걸 배웠다.


글을 쓰다 보니 헤닝 만켈의 <스웨덴 장화>이야기을 잊어버릴 뻔했다. 621페이지에 달하는 길고 긴 장편소설을 이틀 만에 완독 한 비결은 물론 가독성에 있다. 자는 중에 불이나 모든 걸 잃은 한 늙은 남자의 일상을 그린 소설인데 특별한 사건도 없었고 K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막장전개나 드라마틱한 반전도 없었다. 원래 글을 잘 쓰는 작가들이 그렇듯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에서 손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주인공이 주문한 스웨덴 장화는 소설이 끝날 무렵에야 도착한다.

모든 것이 불 속으로 빨려 들어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던 사람에게 다시 돌아온 스웨덴 장화는 다 잃은 사람이 새롭게 얻어낸 어떤 것들을 상징한다. 그것은 새로운 사랑, 새로운 집, 새로운 가정일 수도 있고, 전과는 달라진 주인공 자신일 수도 있겠다.


집에 불이 난 적이 있다. 늦은 밤까지 공부한다며 책상 위에 촛불을 켜 놓고 잠든 나는 연기에 싸인 아침을 맞이하고 말았다. 한 칸짜리 방에서 오빠와 막내언니 그리고 나 셋이서 생활했는데 간밤에 천사가 나타난 건지 불은 책상 윗부분만 조금 태운채 그대로 꺼졌고, 우리는 매캐한 연기을 살짝 마신정도로 무사할 수 있었다. 주인공은 든든한 은행 잔고와 보험이 있었지만, 당시 우리는 빈털터리 었으니 만약 세든 그 집이 불타버렸다면 그야말로 우리는 알거지가 되어 뿔뿔이 흩어지는 운명을 맞이했을지도 모른다. 태어나자마자 가장 큰 것을 잃은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의 행운이 따르는 법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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