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활발발 / 어딘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나요?

by 쓰는 사람 효주

땅만 보고 걸었다. 거리는 깨끗했고, 휴일이라 그런지 조용했다. 오랜만에 걷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관객수가 천만을 넘었다는 <왕과 사는 남자>를 봐야겠다는 결심도 있었다. 난생처음 혼자 관람하는 영화를 위해 특별히 걷기를 택한 거다. 어젯밤 막내 언니가 보내준 다큐먼터리 '유럽을 뒤흔든 베스트셀러 작가가 어느 날 갑자기 한국 생활을 결심한 이유!'속 작가는 몸이 불편한 사람이었다. 불안정한 걸음 불편한 손가락 위태로워 보이는 목의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보는 사람들의 조금 두려운 시선도 묵묵히 견디며 세상 속에 직접 들어가야만 경험할 수 있는 행복을 찾아 걷고 또 걸었다. 나도 그렇게 걷고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불편한 고개를 가지고도 반짝이는 눈으로 세상을 향하던 그와 달리, 나는 땅만 보고 걸었다. 때늦은 추위 때문에 목도리를 단단하게 매고 가장 두꺼운 롱패딩을 입고 안감이 털로 수북한 부츠를 신고 걷는 데도 추웠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파란 하늘 위에 떠 있던 태양의 빛이 너무 강해 시선이 자꾸 아래로 내려와 세상을 보는 일을 잊게 만들었다. 젊고 빛나는 금발을 가진 외국인 선교사 두 사람이 미소 지으며 나를 보고 지나칠 때는, 어색하고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던일말고 기억할만한 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마음의 눈이 작은 나는 볼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어딘 글방의 멤버들은 수년간 함께 글을 쓰며 성장의 시간을 가졌다. 스스로 선택한 굴레를 통해 일주일 안에 한 편의 글을 완성하고 모임 날에 멤버들 앞에서 낭독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실랄한 합병들. '뭘 이야기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숨겨둔 느낌이네요', '이건 글이 아니라 일긴데요'. 글쓴이는 자존심이 상한다. 얼굴이 달아오르고 심장이 두근거린다. 자기들은 또 얼마나 잘 쓰길래? 하는 반감도 든다. 그런데도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지독한 시간을 보내고 나면, 조금 더 나은 글, 글다운 글을 써내는 날이 왔기 때문이겠지. 그 과정을 통해 뭔가 배우고 성장하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려는 마음이 꺾이지 않았기 때문이겠지라며 여러 가지 이유를 짐작해 본다. 실제 합평시간에 지적을 받았던 이들이 이후에 더 좋은 글을 써와 멤버들에게 칭찬을 들었다. 감동적인 글을 써내 모두들 숙연하게 만들기도 했다.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숨겨두고 두리뭉실한 문장만 쓰던 어떤 멤버는 자기 것을 들어내는 용기를 내 모두를 감탄시키기도 했다. 치열하고 열정적인 글쓰기 모임을 글로 만나면서 가장 크게 다가왔던 감정은 부러움이었다. '아, 나도 저기 저 멤버들 중 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신랄한 합평을 듣고 울어 보고 싶다. ' 더 나은 글을 써보겠다는 불굴의 의지를 품어보고 싶다'며 한동안 징징거렸던 것 같다.

멤버들이 따로 차렸다는 글방을 검색해 보고 참여가 가능한지 알아보기도 했으나, 오십이 넘은 초보 글쟁이를 받아줄 만한 글방이 있을지 모르겠다.


어딘이라는 스승을 만난 멤버들은 좋겠다. 살면서 좋은 사람을 만나는 일은 흔하지 않다. 착한 사람은 있어도 삶을 더 성장시켜 주는 스승을 만난다는 건 웬만한 운이 아니고선 어렵다. 지금껏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했던 이유를 생각해 보면, 역시나 소심하고 용기 부족했던 '나'가 원인이다. 어딘 글방에 우연히 참여하게 되었을지라도 " 저에 대해 뭘 아세요?, 저에 대해 뭘 아신다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간 신입 멤버처럼 행동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야지만 나를 지킬 수 있다고 믿으며 살아온 시간이 너무 길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를 지켜내기는커녕 성장할 수 있는 기회마저 놓친 것 같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냐는 질문에 어딘은 일주일에 한 편씩 하루도 빠지지 않고 3년이라는 답을 내놓는다. 물론 그렇게 해서 글을 잘 쓸 수 있다는 건 아니고 그 정도가 기본기를 쌓는 일이라는 뜻이다. 그 기본기를 해낸 사람이야 말로 글쓰기의 출발선에 선 거라고. 이제 당신은 글을 쓸만한 사람임을 증명해 낸 거라고, 이후로 또 기나긴 시간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말이다.


자발적 학력과 스스로 창조한 직업

하나는 세상의 인정에 굴복하지 않는 배움이겠고 따른 하나는 세상에 없는 직업을 만들어내는 능력이겠다. 이 능동적인 두 단어 앞에서 멈춰 선 이유는 시키는 것에 따르는 삶을 살았던 사람이 경험하는 낯섦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 공부를 스스로 해낸 사람,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직업을 만들어 내 그것으로 돈을 버는 사람이라니 생각만으로도 멋져서 와~ 한다. 남의 눈치 같은 건 신경 쓰지 않는다 여기면서도 실제로 내 선택은 언제나 누군가의 인정과 관심에 따라 좌우되곤 한다. 염색하는 일이 너무 싫어 흰머리를 고이고이 키우다가 언니들과 남편과 아이들의 요란한 참견과 잔소리에 백기를 든다. 고요히 미용실로 향하는 내가 자발적 학력과 스스로 창조한 직업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육십이 되면 그것 중 하나는 삶의 목표로 삼고 싶다. 그러니 우선 60이 되어야 할 것이고 남은 시간 동안 열심히 읽고 써내야 할 것이다.


글쓰기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김연아 선스의 스케이팅을 아직도 찾아보는 편인데 이유는 그녀의 아름다운 동작과 완벽한 포퍼먼스이지만, 사실 삶에 대한 동기가 필요한 순간일 때가 더 많다. 자기 일을 훌륭하게 해내는 사람들, 열정을 다해 가진 재능을 쏟아붓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아름다운 법이니까. 이슬아 작가도 어딘 글방 멤버 출신이다. 그녀의 초기 책과 최근의 책을 두루 읽어본 나는 그녀의 글이 점점 더 빛나고 완벽해지는 것을 보았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한 것 같았다. 그녀의 글이 사랑받는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어딘 글방이라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와 마침내 자기만의 글과 세상을 만들어낸 그녀. 엉덩이가 아프도록 글 쓰는 일에 몸과 마음을 쓸 준비가 나에게도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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