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작은 걸음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이 있는 일상 Nov 28. 2023

엄마, 그거 하면 뭐가 좋은 거야?

올해 9월 방통대 국어국문과 3학년에 편입했다.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일도 아니었고, 꼭 해보고 싶었던 공부도 아니었다. 그저 무료하게 보내는 시간을 없애고 싶었다. 퇴근 후 커피 한 잔을 홀짝이며 작은 화면에 코밖고 죽어가는 시간을 줄이고 싶었다. 살아 있다는 느낌 없는 시간들이 쌓이는 게 두려웠다. 공부 한 번 다시 해볼까? 했던 마음이 손가락을 움직였고, 아니 이 나이에 무슨 공부야 하는 마음은 자꾸만 주저하게 만들었지만, 결국 먼저 마음이 두 번째 마음을 이겨주면서 일은 벌어지고 말았다. 신청하니 합격했다는 문자가 왔고, 합격했으니 등록을 했고, 등록하고 나니 수강신청을 해야 했다. 인생이란 늘  계획대로 움직이는 게 아님을 알고 있지만, 이렇게 급작스럽게 뭔가 시작할 줄은 나도 몰랐다. 그리고 이 일의 결과가 나에게 어떤 걸 가져다 줄지 알지 못한다.


해서 큰 아이가 " 엄마, 근데 그거 공부해서 엄마한테 좋은 게 뭐야?"라고 물었을 때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입술은 조금 우물쭈물거리다가 " 뭐 딱히 없어. 그냥 엄마가 나중에 책을 쓰면 거기에 방통대 국문과 졸업이란 이력 한 줄이 들어가는 정도겠지?"라는 말을 내뱉고 이내 조용해졌다. 남편 역시 같은 질문을 했었다. " 이거 졸업하면 뭐가 좋은 거야?" 하는 단편적인 질문이었는데 그때도 나는 명확한 대답을 해주지 못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나는 그럴듯한  답을 궁리해 봤다. 늦은 나이에 국문과를 졸업한다고 나에게 좋은 게 뭐가 있을까? 나는 이 경력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논술교사로 재취업할 수 있는 기회 같은 사회적 인정이 먼저 떠올랐지만 그건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니었다. 논설문 같은 글을 잘 쓰지 못할뿐더러 그런 딱딱한 글을 쓰고 가르치는 일에 남은 삶을 쓰고 싶진 않았으니깐. 기존에 가지고 있는 경력만으로도 초등생정도는 충분히  가능할 텐데 굳이 국문과를 들어가 공부할 필요도 없었다.


그렇다면 무엇일까? 이 공부가 나에게 어떤 걸 가져다줄 수 있는 거지? 이걸 해야 하는 이유 같은 게 진짜 있긴 있는 것일까? 아니 없다. 해도 그만이고 안 해도 그만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 선택으로 나는 내가 원하는 삶에 다가갈 수 있다는 거다. 졸업 후라는 결과를 가지고 지금의 선택을 판단한다면, 이렇다 할 답을 낼 수 없지만, 2년간 이어질 학업은 내 일상을 바꿔 놀 것이다. 전화기 앞에서 보내는 시간은 줄어들고, 식탁 위에는 학과 공부에 필요한 교과서들이 자리를 차지하겠지. 매일 해야 할 분량의 공부를 끝내고 작은 성공을 이뤄서 뿌듯한 내가 있겠지. 시험을 준비하며 늦은 밤까지 공부하는 내가 있겠지. 시험장 안에서 긴장한 채 한 문제 한 문제 열심히 풀고 있을 내가 있겠지. 시험장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이런저런 생각으로 바쁜 내가 있겠지. 비워진 노트가 채워지고 깨끗했던 교과서에 밑줄이 그어지고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고 새로운 배움으로 그때그때의 희열을 느끼는 내가 있을 거다. 그 과정 속에서 나는 온전히 내가 선택한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인생은 결과로만 평가되지 않는다. 위대한 작가들 역시 개인적인 삶의 결과로 평가받지 않는다. 오직 그가 써 내려간 과정, 그 과정은 그의 작품이고 그것으로 사람들은 그를 기억한다. 어떤 작품도 시간이라는 과정 없이 완성되지 않을 테니까. 삶도 마찬가지다. 우리 삶의 결과는 죽음뿐이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기억될 수 있는 이유는 과정을 함께 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오직 발걸음을 옮기는 것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깨달았기에 나는 한 발자국 내가 원하는 삶으로 걷는 중이다. 매일 쓰기를 시작했던 순간부터 아니 매일 조금이라도 책을 읽겠다고 결심했던 순간부터. 그 순간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니 조금 더 용기를 내 더 큰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게 된 것뿐이다. 무언가 그럴듯한 목표를 가진 공부가 아닐지라도, 그것으로 돈을 벌 수 없을지라도 공부를 위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나에게 기회를 준 것이다.


이미 내 일상의 변화는 시작되었다. 내 선택으로 바뀐 나의 일상 덕분에 원하는 삶 역시 나에게 성큼 다가온 듯싶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것보다 더 나은 대답은 아직 찾지 못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증조할머니가 아니라도 좋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