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황금종이』
돈, 돈……. 돈은 도대체 무엇인가…….(1권, p.37)
돈이 뭐길래. 우리는 돈 때문에 울고 웃고, 때로는 치 떨리고 살 떨리지만, 또 삶을 버텨낼 힘을 얻기도 한다. 한낱 ‘종이짝’이지만 우리 사회가 ‘황금’이라는 가치를 부여한 ‘황금종이’, 돈! 돈에 의해 지배당하고, 번뇌하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인간 군상을 그려낸 극사실주의 소설이 있다. 조정래의 장편소설 『황금종이 1·2』(2023, 해냄)다.
작가 조정래는 우리 문단의 거목이다. 대하소설 3부작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은 도합 1,500만 부가 넘게 판매되었다. 작년 11월에 열린 『황금종이』 출간간담회에서 작가는 자신의 문학 세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태백산맥,’ ‘한강,’ ‘아리랑’을 2기로, 이전을 1기, 이후를 3기로 구분한다. 1기, 2기에서 민족의 역사와 현실 모순 갈등을 탐구했다면 3기에서는 인간의 본성과 욕구를 탐구했다.” 이 소설은 3기에 해당하는 작품인 셈이다. 그는 “돈이 인간을 어떻게 구속하고 지배하는지, 인간이 왜 돈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지를 소설로 썼다”라고 밝혔다.
이 소설은 돈을 대하는 세 가지 인간 유형을 그려낸다. 우선 돈은 삶의 수단일 뿐 목적으로는 삼지 않는 유형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변호사 ‘이태하’다. 그는 386 운동권 출신으로, 검사 시절 재벌 관련 수사 과정에서 상부에 직언했다는 이유로 좌천된다. 이후 사표를 쓰고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수임하는 의뢰인들은 돈 때문에 상처 입은 약자들이다. 갑자기 월세를 4배 올려달라는 건물주의 요구에 우발적 범행을 저지른 영세 자영업자, 성폭력을 당하고도 가해자가 재벌 2세라는 이유로 울분을 삼키는 사회 초년생 등. 그는 무료 변론도 자처한다. 자연히 늘 쪼들리는 신세다.
(...) 나도 돈 좋아해. 다만 노예로 지배당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거지. (...) 생존을 지탱해 나아가는 데 돈은 소중한 것이지만 너무 욕심부려 그것의 노예는 되지 말자 하고 사는 거지.(1권, p.155)
두 번째 유형은 ‘돈키호테’와 같은 유형이다. 남들이 쫓는 돈이 아닌 자신이 정한 우선적 가치에 방점을 찍는 삶. 이에 해당하는 인물은 이태하의 대학 선배이자 정신적 멘토인 ‘한지섭’이다. 이태하와 함께 대학 시절 군부 독재에 맞섰던 한지섭은 이후 정계에 입문하여 국회의원에 당선된다. 그러나 정치판에 실망한 그는 귀농하여 전남 광양에서 애플망고 농사를 지으며 산다. 그는 그곳에서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협동조합을 결성하고 공동 숙소를 만든다. 자식 교육도 남들처럼 소위 ‘인 서울’에 목매지 않고, 자신의 서재에 쌓인 책들 외엔 물려줄 유산도 고민하지 않는다. 그의 인생 말년의 목표는 애플망고 농사로 번 돈으로 장학 재단을 설립하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나 혼자만을 위하는 일은 아니다. 소수라도 더불어 행복하게 할 수 있다면 그게 바른 삶이고 보람이고 기쁨이 아닐까 한다.(1권, p.78)
마지막은 ‘돈에 지배당하는 노예’로 사는 유형이다. 이태하의 고등학교 동창인 ‘박현규’다. 그는 그간 ‘돈은 다다익선’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이런 그의 삶에 위기가 찾아온다. 대기업 간부인 그에게는 혼기가 찬 딸 ‘박서린’이 있다. 그녀는 남자 친구의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한 뒤 그와 이별했다. 엄밀히 말하면 ‘환승 이별’이었다. 그녀의 ‘현 남친’은 부잣집 아들이다. 전국적 조직망을 가지고 있는 음식 프랜차이즈 기업으로, 자산 규모가 수천억 대에 이른다. 하지만 딸의 ‘구 남친’은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스토킹을 이어간다. 아내는 박현규에게 해결사로 나설 것을 요구한다. 그녀는 벌써부터 예비 사위가 집안의 애물단지로 여겨지는 식구들에게 대리점을 차려줄 것까지 내심 기대하고 있다. 박현규는 이태하의 말을 떠올리며 고민에 빠진다.
딸이 돈 때문에 애인을 바꿨다면 그건 어찌 되는가. 그건 속물 중에 속물의 짓이 되는 것인가. (...) 자신은 이태하와는 반대로 ‘돈에 지배당하는 노예’인 것이다. 그리고 딸 서린이는 더욱 극심한 노예인 것이다.(1권, p.218)
돈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이 소설을 관통하는 질문이다. 여기에 이태하가 내놓는 답은 “돈은 인간에게 실존인 동시에 부조리”(1권, p.284)라는 것. 그리고 한지섭은 돈을 정치, 종교와 더불어 “필요악”(2권, p.188)으로 규정한다. 결국 돈이란 인간의 실존적 삶을 규정하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지만, 만악(萬惡)의 근원이기도 한 것이다.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 준 죄로 쇠사슬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영원히 쪼아 먹히는 형벌을 받은 프로메테우스를 떠올려보라. 인간 역시 자신의 필요로 만든 돈 때문에 그것이 초래하는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기 힘든 몸이지 않은가.
우리는 돈 앞에서 어떤 인간인가. 적어도 인간의 슬픈 굴레를 인지하고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이태하. 시대의 불의에 맞섰던 자신의 가장 순수했던 시절의 신념을 신앙 삼아 살아가는 한지섭. 그리고 돈이 곧 자신을 지켜주는 보호막이라 철석같이 믿고 살아왔지만, 독수리의 급습은 내다보지 못하는 박현규. 소설을 덮고 나면 우리의 삶은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를 자문하게 된다.
이 책은 마치 요즈음의 ‘숏폼(short-form)’ 영상처럼 매우 빠르게, 재미있게 읽힌다. 청년 빈곤, 자영업자의 몰락, 임금 노동의 평가절하로 인한 일확천금에의 집착 풍조, 그리고 노인 돌봄을 둘러싼 상속 갈등. ‘우리 시대의 돈 이야기’들이 흡입력 있게 펼쳐진다. 대가의 농익은 필력은 한량없이 너른 품으로 세대를 불문하고 독자들을 반겨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