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로스, 『울분』
세상은 자네 아들을 데려가려고 기다리고 있다고. 입맛을 다시고 있단 말이야.(p.25)
여기, 대학 입학을 앞둔 열여덟 살 사내가 있다. 소년과 청년의 경계다. 그런 그를 대학이라는 새로운 ‘세상’으로 보내주어야 하는 아버지는 불안과 혼돈에 휩싸인다. 세상은 아무래도 푸르디푸른 청춘을 향해 입맛을 다시는 거대한 괴수인 것만 같다. 미국의 작가 필립 로스의 장편 소설 『울분』(정영목 역, 문학동네, 2011)이다. 냉전과 한국 전쟁의 격동이 몰아치던 1950년대 초 미국이 소설의 배경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자전적 요소를 담고 있다. 주인공 ‘마커스’처럼 작가 역시 미국 뉴저지주의 뉴어크 출신 유대인이다. 또 작가는 1933년생으로 마커스와 동년배다. 그는 미국 문단의 전설적인 인물로, 퓰리처상, 전미도서상 평생공로상을 받았다. 작가는 지난 2018년에 별세하였다. 이 작품은 그가 75세가 되던 2008년에 발표되었다. 탈냉전을 지나 신냉전의 싹이 움트고,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해 미국 경제가 수렁에 빠졌던 그 시기다. 청춘을 여전히 궁지에 모는 척박한 세상을 바라보던 황혼의 작가. 그는 자신의 젊은 시절을 반영한 이 소설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던 것일까.
소설의 시작은 1950년이다. 마커스는 대학에 진학한다. 그것도 가족과 친척 중에 최초로. 그는 코셔 정육점(유대인의 율법에 맞는 고기를 파는 정육점)을 운영하는 아버지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에게 성실함과 정직함을 온몸으로 가르쳐주었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는 마커스가 대학에 가고 나서부터 그의 생활에 지나치게 간섭하기 시작한다. 마커스의 사촌들은 2차 대전에 참전해 목숨을 잃었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마커스 역시 징집될까 봐* 아버지는 불안에 떤다. 마커스는 아버지의 숨 막히는 집착을 피하고 싶다. 그는 이듬해, 집에서 800km 떨어진 오하이오주의 와인스버그 대학으로 편입한다. 법대에 진학해 법률가가 되는 것이 “피가 잔뜩 묻어 악취를 풍기는 앞치마(...)를 두르고 일을 하며 보내는 삶에서 가장 멀어질 수 있는 길”(p.47)이라 생각하면서.
마커스는 와인스버그에서 두 개의 세상을 만난다. 하나는 전쟁이라는 거시 세계다. 이에 맞선 그의 목표는 학교에서 내로라하는 우등생이 되어 ROTC로 장교 입대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참전하게 되더라도 전투 지역을 피해 ‘생존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불안 속에 한국 전쟁의 전황 뉴스를 챙겨 들으며 치열하게 공부한다. 두 번째는 캠퍼스라는 미시 세계다. 그는 고향을 떠나와 다양한 인간 군상과 대학 문화를 경험한다. 아르바이트, 다른 배경을 가진 룸메이트들과의 생활, 그리고 최초의 육체적 사랑과 연애. 그는 ‘올리비아’라는 같은 학년 여학생과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마커스는 이 두 개의 세상 앞에서 ‘울분’을 토해낼 수밖에 없다. 슬프게도, 두 세상은 또 다른 ‘정육점’과 같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전쟁의 칼끝은 마커스가 장교로 성장할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주지 않는다. 징병제도는 “열여덟 살 반, 열아홉 살, 스무 살짜리들을 게걸스럽게 삼키고”(p.217) 있었다. 와인스버그의 캠퍼스 문화 역시 마찬가지다. 유대인에 대한 차별, ‘채플’로 대표되는 억압과 엄숙주의. 마커스는 숨이 막힌다. 상담을 하자는 학생과장은 마커스를 그저 불평분자, 반역자로 낙인찍는 ‘꼰대’ 일뿐이다. 올리비아와의 사랑 역시 순탄치 못하다. 그녀가 기성세대로부터 받은 상처는 이미 너무 깊어 그녀의 정신을 지배해버리고 만다. 정육점의 칼과 피 냄새로부터 달아난 마커스였지만, 젊은이들의 몸과 마음을 앗아가는 살육은 정육점 밖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나는 법대 준비과정에 들어가기는 했지만 사실 법률가가 되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법률가가 뭘 하는지도 잘 몰랐다. 나는 그저 A를 받고 싶었고, 잠을 자고 싶었고, 내가 사랑하는 아버지(...)와 싸우지 않고 싶었다. 나는 한반도에서 중국군과 총검으로 전투를 벌인 기사를 읽을 때마다 아버지의 크고 작은 칼을 떠올렸다. 나는 칼이 예리하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었다. (...) 그러나 아버지도 내가 피를 좋아하도록 가르치지는 못했다. 아니, 나는 피 앞에서 무심해지지도 못했다.(p.45-47)
청춘을 제물 삼아 기성세대가 벌이는 피의 제의(祭儀). 마커스는 도무지 여기에 무심해지거나 익숙해지지 않는다. 전쟁부 차관 출신의 학장은 학생들에게 일갈한다. “결국은 역사가 너희를 따라잡을 것이다. 역사는 배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희는 그 무대 위에 있다!”(p.230) 그러나, 청춘들을 무대에 ‘세운’ 이들은 누구인가? 아니, 애초에 그 무대 위에 냉전과 전쟁을 불러들인 이들은 누구인가? 자유로워야 할 캠퍼스에서 젊은이들에게 헌법상의 권리를 제한하여 1960-70년대 학내 시위에 근본적 원인을 제공한 이들은 누구인가?
그저 ‘살아남기’가 목표였던 열아홉의 마커스. 그는 전쟁터에서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 해피 엔딩을 맞을 수 있을까? 룸메이트의 무례함을 참아낸다면? 채플 수업을 견딘다면? 학점 경쟁에서 승리한다면 가능할까? 작가는 역시나 ‘살아남기’가 목표인 오늘의 청춘들을 위로한다. 당신들에겐 잘못이 없다고. 청춘을 향해 입맛을 다시는 세상에 잘못이 있을 뿐이라고. 이 소설은 미국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피 흘린 청춘들에 대한 추도사이자 기성세대의 참회록이다.
* 1951년 미 의회는 모든 18세에서 26세 사이의 미국 남성이 징집에 등록해야 하는 ‘보편적 군사 훈련 및 복무법(the Universal Military Training and Service Act)’을 제정했다. 1950년 6월부터 1953년 6월까지 150만 명 이상의 남성들이 징집되었다. 이들 중 많은 징집자들이 한국이나 유럽과 아시아에서 복무했다(출처: Warfare History Network).
** 이 대목은 인문연구자 김진영의 강의 「미국 사회에 대한 비판, 필립 로스의 『울분』」(아트앤스터디, 2013)에서 필립 로스가 이 소설에서 미국 사회를 ‘도살장’에 비유하고 그 안에서 청춘들이 죽어나간다고 논의된 부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썼음을 밝혀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