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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레국화 Mar 14. 2024

‘편안한’ 죽음은 존재하는가

시몬 드 보부아르, 『아주 편안한 죽음』

“엄마가 산 채로 썩어 가고 있어”(p.118)     


엄마가 죽음을 앞두고 있다. 서서히 죽어가는 엄마의 몸을 지켜보는 딸은 그제야 엄마의 삶을 이해하고 그녀와 화해해 나간다. 엄마는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 프랑스의 문제적 지성 시몬 드 보부아르가 1964년에 발표한 소설 『아주 편안한 죽음』(강초롱 역, 을유문화사, 2021)이다.     


작가는 철학자이자 사회운동가, 소설가로 활동하였고 1908년에 태어나 1986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생전 장 폴 사르트르와의 계약 결혼, 미성년 제자들과의 염문 등 떠들썩한 개인사로 세간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그녀는 사상계와 실천계에 많은 족적을 남긴 인물이기도 하다. 실존주의 철학자로서 자신의 사상을 집대성한 많은 철학서를 남겼고, 페미니즘 운동에도 투신하여 『제2의 성』(1949)을 집필하고 낙태죄 폐지 운동에 헌신하였다. 더불어, 소설 창작을 통해 자신의 철학적 사유와 문학적 세계와의 연결을 시도한 문학가이기도 했다.


이 소설은 작가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애도하기 위해 쓴 자전적 소설이다. 주요 등장인물들은 작가 본인을 포함하여 실제 그녀의 주변 인물들의 이름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 소설은 주인공 시몬이 어머니가 낙상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찾아가는 대목으로부터 시작한다. 시몬과 어머니의 관계는 오랜 세월 소원했다. 병실에서 마주한 일흔일곱의 어머니는 이제 거동조차 어렵다. 검사 결과 어머니의 몸은 이미 암세포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었다. 노쇠한 어머니가 힘든 수술을 받게 하는 것이 옳을까? 어머니에게 당신이 죽어가고 있노라고 사실대로 알리는 것이 옳을까? 정답이 없는 난제들을 하나씩 받아들이는 시몬은 어머니의 과거와 현재를 톺아보며 어머니와의 이별을 준비한다.

 

이 소설에서 어머니의 몸은 세 층위로 그려진다. 첫 번째는 현재 어머니의 “시체와 다를 바 없어져 버린”(p.26) 몸이다. 병실에서 우연히 어머니의 성기를 본 시몬은 당황스러운 불쾌감을 경험한다. “마구 만지고 마음대로 다루는 전문가들의 손길에 내맡겨진 (...) 가련한”(p.26) 몸. 생명이 그저 “관성적인 상태로만 연장되고 있을 뿐”(p.26)인 서글픈 몸이다. 두 번째는 과거 기억 속 어머니의 몸이다. 젊고 아름다웠으며 심지어 딸을 억압하기까지 하던 드센 몸이었다. 유년 시절의 속박, 어른이 되어 맞은 삶의 풍파와 남편으로부터의 상처. 그로 인해 “자신이 맡게 된 어린 생명에 몰두하는 것”(p.51)이 유일한 선택지였던 어머니. 아이러니하게도, 어머니의 몸에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는 딸로 하여금 과거와 현재를 꿰어 어머니의 전 생애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소설의 결말로 이어지는 어머니의 세 번째 몸은 딸과 “세포 구석구석까지 연결”(p.151)된 몸이다. 시몬은 말한다. “자연스러운 죽음은 없다. (...) 인간에게 죽음은 하나의 부당한 폭력에 해당한다.”(p.153) 이 ‘부당한 폭력’에서 열외가 될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이를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받아들이기 위해 인간이 택할 수밖에 없는 길이 ‘연대’다. 과거 어머니는 똑똑한 딸이 어려웠고, 딸은 자신을 통제하려는 어머니가 숨 막혔다. 그러나 이제 모녀는 죽음 앞에서 서로의 인간적 한계와 나약함을 공유하는 사이가 된다. 시몬은 어머니와 내면에서 화해하며 연대한다. 그리고 육신은 죽어도 영혼은 불멸한다는 종교의 가르침도, 심지어 신경 안정제조차도 슬픔을 달래주지 못한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나 역시 저곳을 거쳐 가게 될 거라는”(p.144), 즉 이것이 “우리 자신의 장례식 예행연습”(p.144)이라는 실존적 깨달음에 유일한 위안을 받으며 어머니와 인간적으로 연결됨을 감각한다.


그의[신부의] 입에서 “프랑수아즈 드 보부아르”라는 이름이 불려 나왔을 때 나와 동생은 둘 다 격한 감정에 휩싸였다. (...) 자신의 이름으로 불린 적이 거의 없는, 잊힌 여인에 불과했던 엄마가 한 명의 주체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었다.(p.145-146)


인간이 ‘부당한’ 죽음 앞에서 하나의 존엄한 주체로 죽어가고 기억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저자가 내놓는 답은 자신의 삶을 통합하여 이해하고 이해받는 것, 그리고 죽음 앞에서의 연대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죽음의 양상은 어떠한가? 노인 자살과 고독사가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뉴스들이 수시로 우리의 가슴을 친다. 한 여성의 육체와 삶을 다층적으로 조명한 이 소설은 ‘아주 편안한 죽음’이라는 형용 모순에 대해 깊게 고민해 보도록 하는 귀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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