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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명물고기 Aug 09. 2021

주변인이 다시 보이게 될 때

자주 오지 않는 인생의 계기들

흔히들 말한다. 힘들 때 주변 사람들이 한 번 정리가 된다고. 맞는 말이다. 힘든 일이 생겼을 때 각별히 마음을 써주는 사람과 아닌 사람은 이후 쭈욱 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다시 보이게 되는 일은 반대로 좋은 일이 생기는 상황에서 역시 또 한 번 다른 결로 발생한다. 불쌍해진 사람에 대해 측은지심을 갖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능이라 조금 더 쉬울 수 있지만, 내가 아닌 남이 잘 되었을 때에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오히려 더 어려울 수 있다. 그야말로 그 사람이 나에 대해 진으로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가장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1. 생각이 너무 많았던 아이


나는 어려서부터 생각이 많은 아이였다. 학창 시절 한창 조잘거리며 수다가 많을 법한 평범한 여학생이었던 나는, 묻지 않은 것은 굳이 잘 얘기하지 않는 편이었다. 뭔가 숨길 게 많아서도, 원래 과묵한 스타일도 아니지만 항상 내가 느꼈던 바는, '사람들은 자기 얘기를 들어주길 원하지, 그 시간에 남의 얘기를 별로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사람들에 대해 관심 많은 편이라 들어주면서도 종종 질문을 더하기도 했었고, 자잘한 기억력은 별로라도 사람들에 대한 스토리는 잘 잊지도 않아서 흘러 지나 친구의 친구들 얘기도 어찌 다 기억하고 있냐는 얘기를 듣기도 했었다. 나는 그들이 자기 얘기만 쏟아놓기에도 바쁘길래 충실히 들어주기만 했을 뿐인데, "너는 왜 니 얘기를 안 하냐, 속을 잘 모르겠다."는 야속한 반응으로 돌아올 때도 있었다. 전화가 오면 잘 받아주긴 했지만, 내 얘기를 들어달라고 전화를 먼저 거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하소연을 들어달라고 남의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는 것은 그저 미안한 일이라는 생각만 들었고, 좋은 일이 있다고 전화하기에도 자랑질 같아 쑥스러웠다. 나는 어른이 되면서부터 남들이 묻지 않 내 얘기 먼저 한 마디씩 꺼내는 법을 조금씩 배우게 되었다. 의외로 세상에는 가십이 아니어도 남의 얘기에 진심으로 관심 있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딱히 용건아무 이유 없이 연락해서 소식을 전해주는 것을 반가워 하고, 특히 좋은 소식을 나누었을 때 진심으로 기뻐해주고 알려주어 고마워하기까지 하는 사람들도 꽤나 많다는 것 역시 배우게 되었다.


2. 어떤 친구


몇 달만에 친구가 전화해서는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속사포 같은 최근의 업데이트를 다 듣고 끊기 직전에 나도 최근 소식이 있어 짧게 공유했다. "내가 얼마 전에 자가 출판한다던 거, 최근에 카테고리 27위까지 오르며 베스트셀러 딱지도 붙었어." 당연히 축하한다 등의 반응이 왔지만, "그것이 무슨 기준이냐, 어떤 카테고리에서냐, 그래서 몇 부나 팔린 거냐" 마치 취조하는 듯한 질문이 이어졌다. "실제로는 엄청 많은 부수가 팔린 것 같지는 않지만 카테고리 경쟁이 심하지 않아 운이 좋았던 거 같다."라고 대충 마무리하고 끊으려고 는데, "대략이라도 그게 몇 부인 거냐, 그래서 실제로 몇 명이나 읽었다는 거냐, 그 숫자가 궁금하지도 않냐"는 말이 끝없이 이어졌다. 이 친구는 내가 사전 펀딩을 한다고 소식을 전했을 때에도 고민한다더니 결국 참여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실제 유통이 되었을 때에도 끝내 한 부도 사지 않았다. 마지막에 하는 말은 "도서관에 신청해야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도 고마운 일이지만, 적지 않은 연봉에 최근 다주택이었던 강남 집을 하나 처분했다는 소식도 전하면서도 책 살 돈 없나 보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3. 더욱 소중히 보이는 친구


이 친구의 전화를 끊고 나니, 갑자기 더 보고 싶어진 친구가 있었다.  책은 육아책이라 굳이 내 책 작업에 대해 많이 얘기하지 않았던 친구이다. 왜냐하면, 이 친구는 결혼식 후 몇 안 가서 임신, 유산, 이혼을 모두 겪고 나서 몇 년얼마나 힘들어했는지 내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고 지금은 만나는 사람도 만날 계획도 없이 홀로 지내는데, 이 친구에게 육아책은 가장 쓸모없는 책일 수밖에 없었다. 사전 펀딩 마감 직후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너 책 펀딩 한다던 거 어떻게 된 거냐고. 왜 안 알려줬냐고. 그러고는 책 10권 값을 바로 며 심지어 나중에 더 사주겠다고 한다. 눈물 나게 고마웠다. 나는 읽히지 않을 책은 판매할 생각이 전혀 없어, 읽지도 않을 것 같은데 그냥 책 썼다니 한 권 팔아주겠다는 사람들에게는 '마음은 고맙지만 괜찮다'며 책 제목도 안 알려주고 거절하는 사이다. 그래서 펀딩도 일부러 인당 최대 2권(본인용+선물용)으로 제한했었기에 이 친구에게도 나머지 8권에 대한 책값은 돌려주고, 애초에 보내줬던 후원금에 준하는 선물을 준비해 책과 함께 보내주었다. 이 친구는 얼마 전에 통화했다 친구에 비해 경제적 상황은 아마 훨씬 못할 것이다. 장기 계약직 신분에, 집도 강남은커녕 서울 진입도 못하니 말이다. 하지만 마음은 이 친구가 수백 배는 더 부자인 것 같다.



사람의 관계라는 것은 어차피 다 상대적인 것이라, 나도 누군가에게는 더 좋은 친구이고 덜 좋은 친구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은 어떤 맥락에서 만났느냐, 얼마나 오래 알았느냐 하는 것과도 또 전혀 다른 문제이다. 참고로 첫 번째 친구는 근 20년째 알고 있는 학창 시절 친구이고, 두 번째 친구는 약 10년 전부터 회사에서 알게 된, 업무를 같이 한 적도 거의 없는 친구이니 말이다. 물론 둘 다 앞으로도 계속 우리는 친구이겠지만, 어떤 같은 일이 발생하더라도 내가 그들에게 느껴지는 온도차도 나의 반응도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과연 내 주변 사람들 중 어디까지 최선을 다해 지지하고 응원해줄 수 있을까? 인생을 살면 살수록 선택과 집중은 공부나 일에서만이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꼭 필요한 일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소중한 자원은 돈도 뭣도 아닌 우리의 인생, 즉 시간이기 때문이다. 나의 한정된 인생일부 나눠도 정말 아깝지 않을 상대가 내 주변에는 몇 명이나 될까? 이렇게 좋은 일, 나쁜 일들 겪으면서 시간이라는 모래시계와 함께 자연스럽게 걸러지는 것이 인생의 관계들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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