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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바미 Jun 16. 2019

나이 먹지 않는 사람

머물러있는 기억의 이야기

 아주 오랜만이었다. 아마 2년 정도 된듯하다. 마지막으로 J를 만났었던 게. J와 지하철 역에서 만나 일단 술집이 많은 거리로 나섰다. 길 가다 받은 전단지를 보고 새로 생긴듯한 고깃집으로 들어갔다. 술을 마시며 이야기했는데 얼마 전까지 위장병으로 고생했었기에 홀짝홀짝 조금씩 마셨다. 주변에 술을 즐기는 친구들이 없어 내 유일한 술친구가 J였었다. 어쩌면 술을 자제해야 했던 기간 동안 J를 찾지 않았나 보다.

 


 우리가 처음 만났는 건 고2 여름쯤 어느 애니메이션 학원에서였다. J는 그때 중3이었는데 방학이었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아이의 염색한 초록 머리카락은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진작부터 공부보단 그림에 소질이 있다는 걸 부모님은 알고 있었지만 그때까지 미술학원은 다녀본 적이 없었다. 모든 상황이 낯설었다. 새로운 환경에 두려움이 많은 나였기에 극도로 말을 아꼈다.

 그래서 그 당시엔 J와 말을 썩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친해지기 시작한 건 J가 내가 다니는 대학교 후배가 되고 나서였다.



 고등학교 시절 말없고 조용했던 모습과 대학교 시절 나름 열정 가득했던 시기를 모두 알고 있는 J였다. 개똥철학 가득한 허세 담긴 말들로 채웠던 술잔은 셀 수도 없었다. 사람들 앞에서 과묵한 척 말을 줄였지만 J앞에서는 굳이 필요 없는 말들도 봇물처럼 흘러나왔었다.

 같은 과 선배를 같이 좋아했다가 둘 다 보기 좋게 차인적도 있었다. 그렇게 함께 청춘을 공유했었다.

 졸업 후엔 술친구가 필요할 때면 J를 찾았고 시간이 흐를수록 자연스럽게 횟수도 줄었다.

 

 

 오랜만에 만난 J는 여전히 편하고 좋았지만 풋풋한 대학생 시절과는 많이 변한 우리였다. 외적으로도 아마 내적으로도 우리는 나이를 먹어갔다.

 삼십 대 중반의 우리의 대화는 직장 이야기에서 자연스럽게 무슨 건강식품을 챙겨 먹는지까지 흘러갔다.

 그러다 그 이름이 나왔다. J와의 이야기 속에서 빠질 수 없는 한 사람.



S선생님.



 내가 그를 처음 봤을 때의 그의 나이는 지금의 나보다 어렸다. 아마 서른두세 살쯤 되었을까? 애니메이션 학원의 강사였다. 그는 내가 알고 있는 다른 선생님들과 달랐다.   

 일단 말이 많았다. 무슨 말을 했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마치 라디오 듣는 것 같다고 말했던 게 생각난다. 그랬다. 굳이 내가 말하지 않아도 맞장구치거나 대답하지 않아도 여러 가지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라디오 같았다.



 그는 이상주의자였다. J는 그가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키팅 선생님처럼 되고 싶었던 것 같다고 말했고 나도 어느 정도 동의했다.

 그는 물욕이 없었다. 매번 학생들 밥을 사주면서 본인은 구멍 난 옷을 입고 다녔다. 그리고 학생들을 무시하지 않고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했다.

 혼자만의 철학과 고집이 강한 사람이었다. 옛 애인이 어떻게 떠나갔는지 이야기할 때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가난한 그와 결혼할 자신이 없는 여자는 돈 많은 남자와 결혼했지만 사랑 없는 결혼이기에 불행할 거라고 했다. 언젠가 다시 자기에게 찾아올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리고 몇 년 후 그녀가 이혼한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자기에게 연락을 해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그는 자신의 예언이 맞아떨어진 것에 흡족해하면서 으스대는 것처럼 보였는데 어쩌면 씁쓸한 감정도 있었을 거라 생각이 든다.

 이제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아마 가난한 그를 선택했어도 행복하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36년 밖에 안 살았지만 이제껏 봐왔던 사람들 중 그는 단연 최고의 이상주의자였다. 그런 그가 결혼이라는 현실을 해쳐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하지만 18살이었던 나는 그런 이상주의가 좋았다. 그는 다른 어른들처럼 현실이 어떤지 일깨워 주려고 하지 않았다. 꿈을 어떻게 꾸는 것인지 서른이 넘은 그에게 배웠다. 그를 만나기 전에 난 내가 꿈을 꿀 수 있는 사람인지 조차 몰랐다. 수동적이고 소극적이었다. 내 의견은 말하지 않았다. 어차피 수렴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나였다.

 그를 만난 이후로 나는 조금씩 말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숨겨왔던 고집을 점점 드러내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의 말과 생각을 조금 닮아 가기도 했다.

 지금도 아이들 그림을 가르치며 하는 말 중에 그가 했던 말을 그대로 아이들에게 말할 때가 있다. 그는 내 삶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와 연락이 끊어진 지 8년이 넘었다. J와 만날 때마다 그를 함께 만나러 가자고 이야기했지만 이야기만 할 뿐 그의 연락처를 알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사실 두려웠다. 그와 연락을 하지 않았을 무렵부터 나는  이상만 가지고는 살아갈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있었지만 그는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철저히 이상만 좇는 것처럼 보였다. 마지막으로 그를 봤던 게 경제활동도 하지 않고 골방에서 작업만 한다는 모습이었다.

 그런 그가 지금의 나를 보고 무슨 말을 할까? 예상이 가지 않는 게 더 두려웠다. 어쩌면 독설을 퍼부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건 아니겠지.

 이번엔 J와 그를 보러 가자고 약속하지 않았다. 왜인지 그날은 의미 없는 약속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가끔 그가 생각날 때마다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의 눈이 되어 나를 체크해 본다. 현실에 찌들어 이상은 내팽개치지 않았는지. 이상만으로 살 수 없지만 내가 바라는 이상도 없이 살아가긴 싫다.

 고깃집에서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J와 나는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는데 우리의 이야기 속에 그는 나이를 먹지 않는다. 아직 꿈꾸는 청년이다. 그 청년은 문득문득 내 마음을 두드린다. 그리고 묻는다. 아직 꿈꾸는 것이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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