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간 맞이할 나의 마흔에게
오랜 친구의 얼굴에서 문득 주름을 본다. 흰머리도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 마치 거울을 보듯 지긋이 바라본다. 우리도 점점 나이가 들어가는구나.
10대 때부터 함께 한 친구들을 볼 때면 더욱 세월의 흐름이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어릴 때 생각했던 어른의 모습 속에 노화는 포함되지 않았기에 몸의 변화가 당혹스럽기도 하다.
20대 후반부터 새치가 생기기 시작했던 나는 몇 년 전부터 주기적으로 새치 염색을 한다. 처음 새치염색을 입에 올렸던 날 뭔가 김 빠진 맥주가 된 기분이었다.
라디오에서 들었던가 “동안” 보다 “동심”을 더 신경 써보자고 했다. 물론 젊게 사는 마음과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한 필사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아직 30대 중반인 나는 동심 보단 역시 동안 외모가 더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둘 늘어가는 눈밑 주름과 팔자 주름 따위는 남일처럼 생각하고 싶다.
신체의 변화는 비단 외모의 문제만은 아니다. 친구들을 만나면 건강에 대한 이야기는 빠짐없이 나온다. 얼마 전 고등학교 동창이 내시경을 했는데 위염과 식도염이 발견됐다고 했다. 그리고 하나둘씩 자기 경험담을 이야기하며 이야기는 이어졌다.
위장병에 관한 이야기라면 나도 빠질 수 없는 레퍼토리가 있다. 결혼을 하고 1년 정도 지났을 때 위장병으로 엄청나게 고생한 나였다. 동네 내과에 가서 처방을 받았는데 차도가 없어 종합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큰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이유 없이 계속 아팠고 달리 손 쓸 방법이 없는 채로 1년 정도의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당연히 생활의 질은 현저히 떨어졌다. 그러다 인터넷 검색으로 비슷한 증상의 사례를 보고 한의원을 찾게 되었다.
한의원에서 내 증상을 “담적”이라고 불렀다. 이름도 모르는 정체불명의 병이 이름이 생기자 마음속에 있던 알 수 없는 불안감도 사라졌다. 3개월 정도 내원하면서 한약을 먹었더니 점차 나아졌지만 틈만 나면 재발해서 식이 조절이 필요하다.
등산을 하고 나면 무릎이 아프고 어느 날 집안 청소를 열심히 하고 나면 손목이 아프다. 조만간 처음으로 정형외과에 방문해볼 생각이다. 몇 달에 손목에 미묘한 통증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엔 말초성 어지럼증으로 몇 주를 고생했다. 요즘 들어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아 가끔 우울해지기도 한다.
누구나 나이가 들어가지만 그것을 인정하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리는 게 아닐까 싶다. 미쳐 마음이 다 자라나기 전에 몸은 절정을 지나 조금씩 시들어 가는 것을 믿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나 스스로 내 몸의 변화를 인정하지 못하더라도 시간은 흐르고 점점 체력도 떨어지고 노화로 인해 새로운 불편함을 겪게 될 것이다.
인생의 절정을 20대로 생각한다면 나이를 먹어가는 것이 한없이 서럽기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조금 관점을 바꿔 볼까 한다.
요즘 백세시대라는데 100살까지 산다고 가정한다면 인생의 절정은 40~ 50대가 아닌가.
함께 매거진을 쓰고 있는 정희옥 작가님의 글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희옥 님이 매거진 첫 글에 나이를 밝히셨기에 쓰신 글들이 더욱 리얼하게 느껴진다. 아직 내가 살아보지 못한 나이의 이야기들은 앞으로 나의 40대 50대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게 만든다. 함께 매거진을 꾸며 나가게 된 것은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어른이의 성장일기”를 매거진의 제목으로 한건 절정을 지나 시들어가는 몸과는 다르게 아직도 절정에 이르지 못한 마음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그리는 내 모습은 항상 나이에 비해 어리게 그렸는데 그게 아마 마음의 나이가 아니까 싶기도 하다.
언젠가 내 마음이 폭풍 성장하면 내 얼굴의 팔자주름도 남들보다 조금 허약한 몸도 나임을 받아들이고 묵묵히 나에게 주어진 것 들에 감사하며 살아가겠지만 아직은 조금 먼 이야기 같다.
얼마 전부터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몸에서 다시 적신호를 보내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었지만 이참에 꾸준히 운동해 건강과 매끈한 몸매 두 마리 토끼를 잡아 보자는 계획을 세운다. 남편과 친구들은 웃기지 말고 건강이나 챙기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