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내 삶은 아직 찬란할지도
친구와 통화하다가 나도 모르게 말을 꺼냈다.
나: 있잖아, 나 요즘 이상한 감정이 느껴져서 미칠 거 같아.
친구: 응? 무슨 감정?
나: 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아련함' 비슷한 거야. 주로 사람에 대해서. 내가 조금 더 노력했다면 깊이 알 수 있었던 사람들에 대한 아쉬움.
친구: 더 깊이 알았다고 해서 얼마나 영향을 받았겠어.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거야.
친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털어버리라는 뉘앙스로 받았다.
나: 나는 달라졌을 거 같아. 그 깊이에 가면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잖아.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것을 놓친 것 같아서 아쉬운.. 그런 감정이 들어.
친구: 음~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다.
나: 구체적으로 상황을 설명해 볼게! 우리 스무 살 때 거리를 다니면 '리쌍의 발레리노'가 흘러나왔던 거 기억나? 아니면 '에픽하이의 LoveLoveLove' 같은 노래.
친구: 푸하하하
나: 그때 네 옆에 같이 걸었던 애매한 사이의 그 친구 있잖아(누군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런 친구가 궁금해. 어떻게 지낼까? 내가 더 노력했으면 그 친구를 더 깊게 알 수 있었을 텐데.. 요즘 이런 생각에 휩싸여서 괴롭고 죽을 거 같아.
친구: 나도 그 감정 아는데~ 그거 산후 우울증 아니야?ㅋㅋㅋ
나: 그래? 남자도 산후우울증이 오나?ㅎㅎ 나는 이런 감정이 드는 이유가 어설프게 늙어서 그런 거 아닌가 싶어. 노인이 스무 살을 추억했으면 '아~ 옛날이여~' 했겠지, 그런데 16년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우린 아직 청년이고 그 시절이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으니까..
누구에게나 '버튼'이 있을 것이다. 누르면 순식간에 '그때 그 순간'으로 돌아가게 하는 삶의 장치.
나에게 그 버튼은 두 개라서 동시에 눌러야 하는데
여름이라는 계절, 특히 장마가 쏟아져 눅눅한 더위(실내로 들어갈 때 에어컨 바람이 더 시원하게 느껴지는)에 당시 즐겨 들은 노래이다.
스무 살의 나는 커피프린스 1호점(드라마)에 푹 빠져 있었다. 드라마의 OST인 벨에포크(Belle epoque)의 May라는 노래를 들으면 2007년 무더웠던 여름으로 돌아간다.
(이 노래를 들을 때 주의 사항은 배경 음악처럼 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절대 볼륨을 키우면 안 된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세세하게 달라진 점을 찾으면 많은데,
얼핏 보면 그대로인 것 같기도 하다.
삶에 익숙해져서 과거엔 호들갑 떨 일에도 별로 놀라지 않고
반대로, 새롭고 재미있던 것들이 이제는 반복하는 습관 같다.
생기를 잃었다고나 할까? 기운 없고 무표정한 그런 상태는 아니고
비유하자면 애써 고요함을 유지하고 싶은 물 웅덩이 비슷한 거다.
언제나 아이처럼 웃고, 울고, 있는 그대로 반응하고 싶지만
많지도 그렇다고 적지도 않게.. 어설피 경험한 채로 '다 알고 있는 양 무덤덤히' 살아간다
(실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많은 글을 발행하지 않고 브런치 서랍에 고이 간직하는 내가
무슨 일인지 두서도 없는 글을 후다닥 써서 발행해 버렸다ㅋㅋ
새벽도 아닌데 왜 이러지...
(그래도 종종 이런 글을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