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인가 싸가지인가
대중적 유명인들의 소란스러운 사건과 그 사건에 대한 대중들의 왈가왈부를 접할 때마다, 나는 저들은 그 사건을 어떻게 알았을까 궁금하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 어떠한 경로를 통해 그 사건의 실체를 접하고, 그 사건에 대해 말을 보태는 것인지가 궁금하다. 내가 그러하듯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대중매체를 통해 어떤 사건을 접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 대중매체에서 전달하는 사건의 내용은 정확한가. 여러 대중매체가 동일한 사건에 대해 다른 내용의 사실관계를 전달하는 경우도 흔한데, 그런 경우에도 대중매체가 전달하는 사건의 내용을 과연 믿을 수 있을까.
손흥민-이강인 사건은 유명한 축구선수들 간의 단순한 다툼으로만 치부하기는 어렵다. 어느 조직에서나 봉착할 수 있는 문제, 더 나아가 세대 간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강인이 예의 없이 형에게 대들었다, 착한 손흥민이 오냐오냐 해 주니까 어린것이 싸가지 없이 행동한 것이다, 손흥민이 불쌍하다, 이강인이 광고하는 상품은 불매하겠다 등등의 반응을 보인다. 누군가는 손흥민이 꼰대다, 식사하고 나서 휴식 시간에 탁구를 칠 수도 있는 것이지 왜 그걸 못하게 하느냐, 더 나아가서는 이강인과 같은 행동이 우리 사회 민주화의 원동력이다라는 말까지도 한다.
조직에는 질서가 필요하다. 보통 그 질서는 위계에 대한 자발적인 복종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런데 모든 조직원이 그 질서에 복종하는 것은 아니다. 그 질서에 모순이나 문제점이 있을 때 누군가는 저항한다. 권위에 대한 저항과 기득권 타파가 민주주의의 핵심인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강인의 태도는 민주주의 정신을 구현한 것인가. 억압적 권위와 잘못된 기존 질서를 혁파하기 위한 저항의 몸짓이었을까. 경기가 잘 풀리지 않는 상황에서 팀원들 간에 다음 경기에 대한 대책과 의견을 나누기 위한 시간을 갖자는 것이 순순히 따르기 어려운 꼰대의 일방적인 명령인가.
선생님들의 권위가 무너지면서 교육현장이 붕괴되는 현실을 보고 있노라면, '자유'와 '인권'을 내세운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방자한 행동이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일제강점기와 군사독재정권을 거치면서 폭력적인 권력이 시민들의 자유와 권리를 심하게 억압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 반작용이 너무 심했다. '왕의 DNA'를 가진 우리 아이 우쭈쭈 해 달라고 하고, 원하는 대로 되지 않자 선생님을 괴롭히는 것이 자유와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온갖 악성 민원을 남발해서 선생님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이 부모의 권리는 아니지 않은가.
저항의 표적을 잘 찾아야 한다. 축구에 관심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축구를 좋아하는 이들의 얘기를 종합하여 보면, 손흥민과 같은 주장은 저항의 대상이 아닐 것으로 생각된다. 졸업식장에서 정당한 의견표명을 했다고 '입틀막'을 하는 무도한 권력이 저항의 대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기심과 방종을 자유와 권리로 착각하는 저 수많은 악성 민원인들이야말로 타도의 대상이지 않을까. 그런데 이런 생각들이 손흥민-이강인 사건과 도무지 관련이 있는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