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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변호사 Feb 29. 2024

아내의 크리스마스 선물

오닉스 팔마 6.13인치 이북리더기

아내와 나는 평소 선물을 거의 하지 않는다. 선물이라고 하면, 응당 상대방이 모르게 준비해서 깜짝 놀라게 하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용돈을 따로 받지 않는 나로서는 그런 방식으로 아내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일이나 기념일 전에 평소 갖고 싶었던 것을 말하고, 형식적으로 각자에게 사주는 방식이다. 나쁘지는 않지만, 조금 재미가 없는 선물이 되는 셈이기는 하다.


작년 크리스마스는 조금 달랐다. 이브날 아침에 일어나 거실로 나오니 테이블 위에 예쁘게 포장된 선물이 있었다. 열어보니 오닉스 팔마 6.13인치 이북리더기였다. 어쩐지 전날부터 나를 문구점에 데리고 가서 카드를 고르게 하는 등 아내의 행동이 조금 다르기는 했다. 내가 눈치를 채지 못했을 뿐이었다. 오 이런 게 바로 선물 받는 맛이구나하고 기쁘기도 했고, 나는 미리 준비를 못해서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사실 나는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을 압도적으로 선호한다. 책 때문에 집이 비좁아져도, 먼지로 괴로움을 당해도, 이사 갈 때 힘들어도, 나는 종이책을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다. 책꽂이에 비스듬히 몸을 기대고 서서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 중 아무 책이나 꺼내서 아무 곳이나 펼쳐 읽는 행위, 그 달콤한 행위는, 전자책으로는 도무지 할 수 없는 것이다. 묵직한 종이뭉치가 손아귀에 가득 들어오는 그 충족감, 책장을 넘길 때 나는 소리, 종이의 냄새, 연필이나 색연필을 들고 줄을 긋고 메모를 하면서 책과 이루어지는 완전한 교감. 그야말로 이런 오감만족은 전자책이 결단코 줄 수 없는 즐거움이다. 그래서 나는 여러 개의 이북리더기가 있고, 아이패드가 있음에도 전자책을 거의 읽지 않았다. 


그러나 아내에게 선물 받은 오닉스 팔마 이북리더기는 다른 이북리더기와는 완전히 차원이 달랐다. 우선 속도가 정말 빠르다. 거의 손으로 책을 넘기는 것과 비슷하다. 그동안의 이북리더기는 버퍼링 때문에 잘 쓰지 않게 되었는데, 오닉스 팔마는 속도감이 최고다. 다음으로 크기가 작다. 핸드폰보다 작은 크기라서 양복 재킷 안 주머니에 쏙 들어간다. 지하철을 타는 일이 많기 때문에 항상 가방에 책을 가지고 다니는데, 사람이 많을 때는 사실 책을 보기 어려워 핸드폰을 보면서 시간을 때우곤 했다. 그런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다. 언제 어디서나 책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주 잠깐의 자투리 시간에도 주머니에서 쓱 꺼내서 읽고, 쏙 집어넣으면 되는 것이다. 또 1시간 이상 읽어도 눈이 전혀 피로하지 않다. 그 덕에 벌써 몇 권의 전자책을 읽을 수 있었다.


단점은 글쎄... 딱히 없지만, 화면이 작은 관계로 한 페이지에 (종이책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양의 글이 들어 있어서 생각의 단위가 잘게 쪼개지는 느낌이 있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즉 긴 호흡으로 책을 읽어나가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이건 오닉스 팔마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자책 일반의 문제일 것이다. 그래서 전자책으로 철학책을 읽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건 결국 상대적인 문제일 것이다. 생각의 단위를 확장하고, 사고의 호흡을 길게 가져가는 것은 결국 내 몫이다.


내 오닉스 팔마의 초기 화면에 있는 저분은 플라톤이다. 작년 12월이 되면서 2024년을 계획하다가 "내년은 플라톤이다.", 즉 2024년은 플라톤부터 차근히 철학 공부를 하겠다고 몇 번 외치고 다녔더니, 그걸 기억한 아내가 플라톤을 바탕화면으로 해 준 것이다. 감사하다. 나도 내년 크리스마스에는 아내에게 줄 깜짝 선물을 준비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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